학자들의 실록 독점시대 끝나 코스모스펀드 01-04 16:32
이름: 이기섭 2006/1/28(토) 학자들의 실록 독점시대 끝나     누구든 한문 몰라도 검색 기생 황진이·홍경래 등 왜곡된 부분은 유의해야 지난 연말 ‘조선왕조실록’ 원문과 번역본이 드디어 네티즌에게 공개됐다. 누구든지 실록을 무료 검색할 수 있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누구라도 뭐든 확인할 수 있다. 한문은 몰라도 된다. 실제로 지금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TV사극 ‘대장금’에 대해 직접 검색을 해보았다. 필자도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칠 때 원문 실록을 보았지만 당시에 이런 이름을 접할 기회는 없었기 때문이다. ‘e-실록’검색란에 ‘대장금’ 또는 ‘장금’을 쳐보았다. 대장금은 본래 왕실의 출산을 돌봤다. 의료사고가 발생해 잠시 처벌 대상으로 논의된 적도 있지만, 그녀는 줄곧 많은 공을 세워 여러 번 상을 받았다. 대장금은 수석 의녀로 왕의 간호를 담당했고, 왕의 질환에 대한 처방전 작성에도 참여했다. 드라마 ‘대장금’은 상당한 사실(史實)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지식혁명(革命)의 신호탄이다. 그동안 시청자는 역사의 소비자일 뿐이었다. 그러나 네티즌 시청자들은 역사의 참여자를 넘어 앞으로는 역사의 생산자가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 민주화’다. 조선시대에도 아무나 읽을 수 없었던 텍스트를 이제는 초등학생조차 마음껏 읽을 수 있다니! 역사전공자로서는 만감(萬感)이 교차한다. 때로는 착잡하기도 하다. 그러나 좋건 싫건 이제 역사학자에 의한 실록 독점시대는 끝났다. 21세기 네티즌들은 다양한 기호를 살려 ‘e-실록’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것이다. 이미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저자들이 쓴 실록들이 큰 인기다. 시민들이 역사를 쓰는 시대다. 자기 집안 조상들에 대해서도 네티즌은 객관적 지식을 정리해볼 수 있다. 퇴계 이황이나 충무공 이순신의 경우 실록엔 수백건의 해당 기사가 있어, 크게 참고된다. 관심만 있다면 희귀 동식물에 관한 지식도 확보할 수 있다. 코끼리와 낙타, 인삼 등에 관한 기록이 실록에 많다. 요컨대, 네티즌은 자신의 역사지식을 모아 새 역사를 쓸 수 있다. 다만 네티즌이 역사가가 되는 데 따른 우려나 문제가 없지 않다. 첫째 실록에는 네티즌이 흥미를 느낄 만한 여러 항목이 공백 또는 왜곡된 상태로 남아 있다. 예컨대 실록에는 기생 황진이가 없다. 반항아 홍경래, 김대건 신부, 심지어 실학자 정약용에 관한 내용도 왜곡돼 있다. 둘째 실록의 세계관에 대한 사전 인식이 필수적이다. 실록은 소외계층이나 성리학 이외의 가치들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다. 셋째 실록의 서술 밀도는 시기마다 다르다. 네티즌에게도 능력의 한계가 있다. 무엇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고, 실록의 완고한 평가에서 자유롭기도 어렵다. 결국 모든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 이때 요구되는 것은 비판적인 사고, 성실한 자세 그리고 개성적인 취향이다. 이런 점들에 유의만 한다면 네스토리언 시대의 전망은 밝다. 실록은 분량이 방대하고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면을 망라해, 세계 어디서도 유례가 없다. 그런 역사 기록물인 만큼 새 역사의 토대로 손색이 없다. 새로운 역사를 쓴다는 것은 곧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일이다. (백승종·역사학자·푸른역사연구소장 ) [조선일보   2006-01-28 02:3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