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인의 가족 코스모스펀드 01-01 22:25
이름: 미리주고 2004/7/12(월) 어느 여인의 가족   우리집 사랑채 옆에는 도랑이 있었다. (폭이 150센티 깊이 30세티의 정도의 맑은 물이 일년내내 흘렀다) 마을을 가로 질러 가고 있어, 마을사람 대부분이 이 도랑에서 빨래도 하고, 논에 물도 대고 요긴하게 쓰이는 도랑이였다. 도랑을 접하고 있는 사랑채와 도랑 사이에는 3 미터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이 공간은 일자형으로 남향을 향하고 있어, 일년 내내 햇볕이 드는 놀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도랑 옆은 바로 논이고, 논 옆은 읍내로 들어가는 신작로가 있었다. 비포장 도로인 신작로는 아람들이 미루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어 언제나 한결같았다. 신작로를 넘어가면 다시 논이고, 논 뒤에는 뚝방이 있고, 뚝방 너머에는 읍내로 흘러 들어가는 시냇물(폭이 20-30미터)이 있었다. 시냇물 뒤로는 넓은 들녘이 있었다. 사랑채와 도랑 사이의 공간에 앉아 있으면, 바로 앞의 도랑과 계절이 변화를 알 수 있는 논과, 심심하지 않게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차가 있는 신작로와, 소나 염소가 매여 있는 뚝방과, 뚝방 너머의 넓은 들녘과 멀리 보이는 산을 볼 수 있었다. 봄의 따듯한 햇살아래 앉아서 바라보는 새싹이 돋아나는 신작로의 미루나무는 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여름 낮에는 매미소리가 끝이지 않았고, 여름 밤에는 개구리 소리가 끝이지 않았다. 가을에 바라보는 바로 앞 논의 벼는 새색시 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고, 바라보는 이의 마음은 새색시를 얻은 노총각의 첫날 밤 처럼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겨울에 바라보는 눈 온 뒤의 들녘의 모습은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기차처럼 내 눈을 밝게 만들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으로 기억된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듯한 봄볕이 그 사랑채와 도랑 사이의 공간에 비치기 시작할 때쯤 거의 거지나 다름 없는 차림의 한 가족이 마을에 나타났다. 퉁퉁한 몸매에 헝클어진 머리를 가진 사십대 초반의 여인과 고등학생 정도의 거의 각설이 차림이 큰 아들. 밑으로 꾀죄죄한 옷차림의 올망졸망한 동생(4명으로 기억된다)들 누덕누덕 기은 때묻은 몇 개의 이불, 밑이 새까만 찌그러진 양은 냄비 몇 개, 피난 보따리 같이 하나씩 어깨에 메고 나타나 우리집 사랑채와 도랑 사이의 공간에 둥지를 틀었다.   아침이면 검정 고무신에 각설이 차림의 큰 아들이 때가 꼬질꼬질한 큰 바가지를 들고 동네를 돌며 밥과 반찬을 얻었다. 동네 사람들은 불쌍한 그들을 위하여 기꺼이 밥을 주었다. 나와 친구들은 신기한 눈으로 멀찍하니 앉아서 그들을 구경했다. 그 가족들의 그런 우리들의 행동에 익숙한 듯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큰 아들이 얻어온 반찬과 밥을 찌그러진 냄비에 넣고 냄비에 둘러 앉아 맛있게 비벼먹곤 했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따듯한 햇볕 아래에서 그 여인은 아이들의 헝클어진 머리 속을 헤쳐가면 이를 잡았다. 그것으로 거의 그들은 하루를 보냈다. 저녁이 되면 약간 모자른 듯이 보이는 큰 아들은 바가지를 들고 다시 마을을 돌았다. 그들의 얼굴은 밝았고, 슬픈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난 그들을 보면서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동물원의 행복한 원숭이 가족을 생각했다. 그들은 같이 있음으로 정이 생기는 것 같았고, 서로의 모자람을 부둥켜 안음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가족은 그 공간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다 떠났다. 다음해 비슷한 시기에 그 가족이 다시 돌아왔다. 그들의 차림새나 행동, 살림살이는 지난해와 변화가 없었다. 아이들은 키가 좀 자랐다. 그러나 그 여인은 품에 새로운 사내아이를 안고 있었다.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부끄럼 없이 젖을 꺼내어 아이에게 먹이곤 했다. 마을사람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마을 사람들은 어린아이를 불생해 했고, 고아원이나 입양을 이야기 했다. 그 여인은 그런 말에 무척이나 화를 냈고, 듣기 싫어했다. 난 그 여인을 보면서 어떻게 아이를 낳나 무척이나 궁금하였다. 그들은 여전히 행복한 원숭이 가족이였고, 그 어려운 생활을 저렇게도 사는구나 생각했다. 그들 가족은 지난해와 같이 일주일 정도 머물다가 떠났다. 다음해 비슷한 시기에 그 가족은 또 나타났다. 그들의 차림새나 행동, 살림살이는 지난해와 다를 바 없었지만 그러나 아이들이 두 명이 없어졌다. 그 여인의 품에 있던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올망졸망했던 아이들 중 제일 똑똑해 보이던 아이도 보이지 않았다. 그 가족은 힘이 없어 보였다. 옛날의 그 행복한 원숭이 가족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도 지쳐 보였다. 그 여인은 지난해 보다 갑자기 늙어 보였고 하루 종일 뚝방 너머의 먼 산을 멍하니 바라다 보았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삶이 너무나 어려워 갓난 아이는 남에게 주었고,” “똘똘해 보이는 아이는 누가 양자로 데리고 갔고,” “…………………………………..” “시간이 지나 …..보낸 아이들이 너무나 보고 싶은데…” “간 곳을 알 수 없어……볼 수가 없다고…………… “ 그 가족은 그런 슬픈 모습으로 일주일 정도 머물다가 떠났다. 다음해 비슷한 시기에 그 가족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 공간에서 은근히 그 가족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여름이 되기까지 결국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해에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은 자나가는 세월만큼이나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