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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무현이 경제를 망치는줄 알았다. 그런데 경제는 말없이도 잘 돌아가더라. 나는 노무현이 국민을 기만하는줄 알았다. 그런데 국민을 기만하는건 언론이더라. 나는 노무현이 친북인게 싫었다. 그런데 친일에 비할바는 못되더라. 나는 노무현이 모든 일의 원흉인줄 알았다. 그런데 모든 일의 원흉은 따로 있더라. 나는 노무현이 말만 앞서는 사람인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나는 노무현의 5년이 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2개월보다 짧더라. 나는 한때 노무현에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그립다. < 8뉴스 > SBS | 기사입력 2008.05.21 21:27 < 앵커 > 쇠고기 논란에 미국도 본격적으로 끼어 들었습니다. 주한 미 대사가 우리 야당 대표에게 항의 전화를 걸고, 또 미 무역대표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시하는 등 외교마찰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윤창현 기자입니다. < 기자 > 미 무역대표부 대변인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대변인이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 데 대해 한국의 고위 관리에게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20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수입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이동관 대변인의 브리핑을 겨냥한 것입니다. 미 무역대표부는 또 한국이 소의 월령에 관계없이 쇠고기를 수입하도록 돼 있는 한·미 협정문에도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도 오늘 오전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과학적 근거없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과장했다"며 항의성 전화를 걸어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차영/민주당 대변인 : 미국의 대사가 야당 대표에게 이런식으로 야당의 입장이나 정책에 대해서 이런식으로 전화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버시바우 대사는 오히려 사적인 통화내용을 민주당이 공개한 데 대해 유감을 나타냈습니다. [버시바우/주한 미 대사 : 손 대표에게 전화해서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지 않다고 말한 데 대해 실망했다고 한 것 뿐입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외교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미 대사관에 해명을 요구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쇠고기 협상을 둘러싼 국내 논란이 한·미 갈등으로 번질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윤창현 chyun@sbs.co.kr 이명박 정부에 대한 후 주석의 분노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이명박 정부에 불만을 품게 됐을까. 최근 베이징에서 중국의 유력 인사를 만난 국내의 한 전문가는 불신의 벽이 이렇게까지 두꺼울 줄 몰랐다며 당혹감을 토로했다. 한·미 동맹 강화를 외치던 이명박 정부가 최근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 고초를 겪는 모습을 본 중국 측 인사는 ‘미국을 믿다니, 바보’라며 거의 비웃는 듯한 태도 일색이란다. 그러면서 “중국은 쇠고기 문제를 절대 그런 식으로 다루지 않는다. 미국이 광우병 통제가 안 되는 나라라는 걸 몰랐나?”라며 고소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고 한다. 그동안 미·일을 중시하고 중국을 홀대하는 듯한 서울의 태도에 쌓였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지는 듯하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감정이 나빠지는 과정에서도 예외 없이 ‘점층법’이 적용된다.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가졌던 중국 당·정의 고위 관계자나 전문가 중에는, 좋은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놓쳤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인사들이 있다. 이들이 말하는 기회란 바로 후진타오 주석이 박근혜 특사를 만난 그 즈음에 대한 얘기다. 그때 후 주석은 전략적 관계로의 격상 외에도 한·중 관계 미래에 대해 여러 가지로 좋은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후 이명박 당선자 측에서 후 주석의 호의에 대한 답례나 반응은 없이 미·일과의 관계 강화로만 치달았다는 게 중국 측의 인식이다. “이 당선자가 물 밑으로라도, 후 주석에게 한국이 앞으로 친미 일변도로 가지는 않는다고 메시지만 전했더라도 이렇게까지 악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당선자 측에서는 했는지 모르나 적어도 후 주석에게 통하는 라인으로는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라고 앞의 베이징 소식통은 전했다. 그 다음, 이 대통령이 첫 해외 순방지로 미국 다음에 일본을 택함으로써, 후 주석의 자존심을 결정적으로 상하게 만들었다. 중국 측은 이 대통령이 첫 순방지로 미국을 택하는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두 번째는 당연히 중국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국 대신 일본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서, 이 대통령에게 ‘역시나’ 했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곧 ‘친중은 안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때부터 베이징에서는 후 주석이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 극언을 했다는 얘기가 유력 인사 사이에 떠돌았다. 즉 “한국이 지금, 미국·일본만 있고 중국은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내가 이 자리 있는 동안 한국은 나한테는 없는 거야. 두고 봐라.” 지난해 10월15일 제17차 공산당 대회를 통해 집권 2기에 들어선 후 주석의 임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와 정확하게 겹친다. 따라서 자기가 최고 책임자로 있는 앞으로 5년간 한국과의 관계는 없다는 얘기가 중국 최고 지도자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갑갑할 노릇인데, 아쉽게도 ‘점층법’의 끝은 여기가 아니다. 그 다음이 더 껄끄럽다. 이명박 대통령 방미 과정에서 있었던 한·미 간 협의 내용에 대해 중국이 어떻게 인식해왔고, 그 결론이 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적대 정책의 앞잡이가 되었다’, ‘한국이 중국을 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방미 전까지만 해도 중국 측이 긴가민가했는데, 방미 과정에 대한 나름대로의 면밀한 정보 수집과 분석을 통해 ‘확증을 잡았다’고 한다. 한국이 중국을 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베이징 측이 그 유력한 근거로 제시한 게 바로 MD(미사일 방어) 문제다. 한국 정부는 대통령 방미 기간 중 MD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했지만, 중국 측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미 미국에 MD 가입을 약속했다고 단정한다. MD 외에 다른 군사 요구 사항에 대해서도 거의 대부분 들어주기로 했다는 게 중국 측 내부 판단이라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중국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사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고민해온 아주 민감한 문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안보 현안에 밝은 전문가에 따르면, 2005년 1월 경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상기됐던 것도 바로 이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중국을 한·미 공동의 전략 대상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그러면 일본도 넣자고 응수했다. 부시 대통령이 ‘일본은 왜?’라고 묻자 노 대통령은 ‘우리는 일본으로부터도 위협을 느낀다’고 답했다. 부시가 난색을 표하자 노 대통령은 ‘일본을 넣지 않겠다면 중국도 빼자’며 몰아붙였다. 당시 미국 측은 노 대통령에 대해 서운해하긴 했지만, ‘국익을 위한 행동이다. 일리가 있다’며, 나름대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와 연동된 또 하나의 현안이 바로 ‘작계 5029’ 문제다. 북한에서 내우외환의 급변 사태가 벌어졌을 때 한국과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작계 5029에 대해 미국은 한미 연합사의 공동 대응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 경우 주권 침해 문제가 발생한다며 더 이상 논의를 중단했다. 그러나 내밀한 이유는 한미연합사가 출동할 경우 1950년의 한국전쟁 때처럼 중국군이 맞대응해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노무현 정부는 중국을 적으로 규정하는 한·미 간 협의에 대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작계 5029에 대한 재논의 분위기가 한·미 간에 감돈다. 또 방미 기간 중에는 한·미 동맹을 21세기 전략동맹으로 격상하자고 거듭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 측은 전략동맹의 내용에 대해 ‘가치동맹, 신뢰동맹, 평화구축 동맹’ 등 비군사 분야 협력을 강조했지만, 중국이 볼 때는 공동의 적으로 중국을 설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할 소지가 있다. 중국이 오해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런 것인지는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 정권 주변의 이른바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그동안 무분별하게 쏟아냈던 한·미 동맹 강화, MD·PSI 가입, 작계 5029 재검토 따위 말들이 이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미국과는 광우병 파동, 중국과는 ‘후진타오의 분노.’ 그리고 그 다음은? 불길한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단 두어 달 만에 10년의 외교안보 성과가 이렇게까지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출처 : 시사인(http://www.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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