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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자살 사례는 예상 외로 광범위하다. 10대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부모, 자기 바람대로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문제다. 실망한 아이의 마음에 ‘괴물’이 자란다. [40호] 2008년 06월 17일 (화) 15:28:46 하지현 (건국대병원 교수·신경정신과)
끔찍하지만 눈여겨볼 만한 자료가 있다. 바로 통계청의 자살 통계. 그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5~24세 자살자 수는 놀랄 만큼 증가했다. 2000년에 그 수가 6460명(10만명당 13.6명. 남 4491명, 여 1969명)이었는데, 2005년에는 1만2047명(10만명당 24.7명, 남 8053명·여 3994명)까지 늘어났다(5~14세 자살자도 41명이나 되었다). 왜 10대와 젊은이들은 쉽게 ‘허공’에 몸을 내맡길까. 예은이를 보호병동 입원실에서 처음 만났다. 당직 전공의에게 간밤에 있었던 응급 입원에 대해 보고받고 병실을 찾았을 때, 그 아이는 한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어떤 얘기도 하려 하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돌렸고 계속 잠든 척했다. 한눈에도 수척하고 지쳐 보였다. 예은이는 여고 1학년이다. 중학교 때도 또래와 어울리기 힘들어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고등학교를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배치받게 되었다. 낯가림이 심했던 예은이는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그 결과 점점 더 학교에 가기 싫었다. 어머니에게 힘들다고 하소연했지만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래”라며, 배부른 고민하지 말라는 듯한 반응만 돌아왔다. 점차 우울감이 심해지던 예은이는 결국 주말에 집에 있던 해열제 T(간독성 의약품)를 다량 복용하고 입원한 것이다. 부모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예은이의 상처는 곪을 대로 곪은 상태였다. 최근 통계를 보면 20대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자살 증가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1위를 달린다. 10대의 자살도 만만치 않다. 예은이 같은 10대 아이는 자기 마음속 고통의 실체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부모 세대는 요즘 아이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서 나약하다’는 생각 때문에 그들의 호소를 그저 ‘투정’으로 치부한다. 10대의 고민, 상상 초월할 만큼 다양 예은이 부모도 딸의 문제를 단순히 학교 친구가 없다는 것 정도로 여겼다. 심지어 “네가 뭐가 모자라서 우울해? 밥을 굶니? 학교를 못 가니?”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어른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에도 많이 힘들어한다. 어른들은 자녀가 자기가 지나온 길을 똑같이 따라올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광화문 촛불시위를 시작한 데서 보았듯이, 요즘 10대는 신인류다. 그러다 보니 386세대 부모가 아무리 개방적이고 이해심이 많다고 해도, 그들의 속내를 낱낱이 알기는 어렵다. 초등학교 때부터 논술을 공부해온 10대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리고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몸의 확장체라 여길 정도로 중요하게 챙긴다. 그러다 보니 정보의 소통과 섭취의 속도와 다양성은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크다. 그러니 고민의 종류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을 수밖에 없다. 논리적인 주장을 하는 데도 익숙하고, 정보를 섭취하는 능력도 가공할 수준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정서의 숙성이 인지 능력의 빠른 숙성을 따라잡지 못했다. 도리어 이전 세대에 비해 여리고, 어리고, 자기중심적인 면이 강하다.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도 약해서 작은 좌절에도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볼품없지만 쉬운 길이 있는데, 폼은 나지만 느리고 어려운 길을 왜 가냐’는 판단을 주저 없이 한다. 여기에서 부모 세대와 10대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부모 세대가 자기 부모와 부딪쳤던 것과 성질이 전혀 다른 갈등과 부딪치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데 실패한다. 이처럼 소통이 막힌 답답한 상태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2차 성징이 발현되는 생물학적 변화가 수반된다. 성호르몬이 솟구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자 아이는 매달 월경을 하면서 미묘한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고, 남자 아이는 마티즈에 소나타 엔진을 단 것처럼 살짝 액셀을 밟았는데도 ‘폭주’를 한다. 10대 이전까지 우울증의 유병률은 남녀가 같다. 그러나 사춘기 이후부터 폐경기까지는 여성이 두세 배 많고, 품행장애와 같은 행동 문제는 남성에게서 더 많이 일어난다. 이같은 몸의 변화도 괴로운데, 부모와 교사는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만 아이들이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10대는 화가 나고, 그 짜증을 감당할 수 없으니 충동적인 일을 저지르게 된다. 여기에 자살의 메커니즘이 있다. 정말 죽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나서 저질렀는데 죽음에 이르는 비극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조용해 보이는 10대의 자살 사고는 예상 외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서로가 쉬쉬하며 피하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부모가 이야기만 잘 들어줘도 자살 줄어 비겁한 어른에 비해 10대는 솔직하다. 어른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나의 경우 “너 자살에 대해 생각해봤니”라고 단도직입으로 물어본다. 그러면 예상 외로 아이들은 순순히 “그렇다”라고 털어놓는다. 심지어 “우리 아파트의 옥상 비상구가 열려 있는 것을 확인했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어른들은 물어봤다가 감당하지 못할까 봐 애써 덮어두려 한다. 이때 충동적인 10대의 마음속에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이지만 분명한 해결책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급기야 아주 뚜렷한 계획안까지 수립하기에 이른다. 누가 이 괴물을 자라게 한 것일까? 아이에게 원래 문제가 있어서?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아이들이 원하는 도움을 주지 못하고, 부모가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 환상 속의 그림을 그리는 동안 실망한 아이 마음속에 ‘괴물’이 자라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과 기대를 포기하고, ‘내 아이가 그럴 리 없어’ 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몸부림을 버리자. 그리고 아이를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고, 솔직하게 아이에게 지금의 감정을 묻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잘 들어주고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자기가 세상이 의미 있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거기에서 ‘세상은 살 만하다’는 것, 자살로 끝내기에는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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