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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대공황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공황이 1840년대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흔치 않다. 모든 공황이 그렇듯이 1840년대 공황도 경기과열과 잘못된 정책의 혼합에 의해 발생하고 번져나갔다. 미국의 7대 대통령인 앤드루 잭슨이 집권(1829~1837)했던 1830년대 초반 미국경제는 도시의 발달, 인구증가, 초기 산업주의의 태동으로 매우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로인해 잭슨 집권기간을 ‘잭슨 민주주의 시대’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잭슨의 편협한 시각과 잘못된 재정정책은 미국을 심각한 불황에 휩싸이게 한다. 잭슨은 세습특권과 은행, 특히 규모가 크고 기초가 튼튼하며 큰 권력을 휘두르던 은행에 대해 깊은 반감을 갖고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은행을 ‘화폐권력’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혐오했다. 잭슨이 이같은 생각을 갖게된 배경은 가난한 집안출신이라는 점과 후에 땅을 팔고 받은 약속어음이 부도나 이를 수습하는데 무려 15년이나 걸렸던 개인적 경험때문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잭슨은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법률사무소에서 법학을 공부해 1787년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한다. 그 후 테네시주 초대의원에 선출되고 이듬해에는 연방상원 의원으로 재직하게 된다. 1828년 인기없던 전임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를 큰 표차이로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된 잭슨이 백악관에 입성후 재정문제와 관련해 처음으로 취한 조치가 ‘국채청산’이었다. 잭슨이 국채를 청산하고자 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 였다. 첫째는 그가 빚이란 그 자체로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1824년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국채를 ‘국가에 내린 저주’라고 말했다. 그는 “돈을 쥔 귀족들이 정부를 좌지우지 하거나, 나아가 우리나라의 자유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국채를 모두 청산하겠다”고 공약했다. 두 번재는 은행들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은행들은 연방정부의 채권을 자신들이 은행권을 발행하는 보증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지폐를 폐지하고 싶어했던 잭슨은 먼저 은행의 보증 수단인 채권을 없애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미국 국채는 1792년 8000만 달러에서 1811년 4500만 달러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1812년 나폴레옹 전쟁도중 영국의 가혹한 해상조처로 발생한 미영간의 전쟁으로 증가하기 시작해 1815년에는 1억 2500만 달러를 넘어서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정부는 높은 관세로 큰 수입을 올려 정작 잭슨이 대통령에 취임한 시점에는 4856만 5000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 국채가 이렇게 줄어들고 있는 와중에 취해진 ‘국채청산’정책은 한마디로 ‘빚은 나쁘다’는 잭슨의 단순한 관념 때문에 시행된 엉터리 정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잭슨의 ‘화폐귀족’에 대한 반감은 중앙은행 격인 제2 미합중국 은행을 없애려는 의도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연방은행은 은행허가 기간이 있었다. 의회에서는 은행업 허가기간연장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잭슨이 이 법안을 무효화 시키는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이로인해 아직 허가기간이 4년이나 남아있었지만 제2 미합중국 은행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잭슨은 연방정부의 예금을 제2 미합중국 은행에서 인출해 다른 곳으로 옮겨 버렸다. 예금이 빠져나가자 제2 미합중국 은행은 은행권을 발행하거나,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주 차원의 허가장을 받은 다른 은행들을 규제할 힘을 상실하게 되었다. 장기적이고 국가적인 시각을 가진 단일 기구가 맡고 있던 국가 통화공급 조절 임무가 이제 눈앞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한 작은 은행들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통화조절 기능의 상실과 30년대 초반 실물경기 호황은 증권시세를 끌어올렸고 서부지역에서는 땅 투기열풍을 불렀다. 당시 연방정부 토지판매 수입금액은 1832년 250만 달러였으나 36년에는 2500만 달러에 달했고 그해 여름에는 월 판매수입이 500만 달러에 이를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 대해 잭슨 대통령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정책이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두가지, 즉 투기와 지폐를 엄청나게 증가 시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잭슨은 자신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려했다. 토지를 불하할 때 금화나 은화등 소위 정화로만 받도록 하자고 내각에 제안했던 것이다. 관료들은 대통령의 제안에 반대했지만 잭슨은 대통령령으로 이른바 ‘정화 유통령’을 선포해 버린다. 효과는 바로 나타나 투기가 중단되기는 했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부지역에서 정화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동부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던 금과 은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서부의 여러 은행들이 위기를 맞고 대출금을 회수하기 시작하자 채무자들이 파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로인해 은행들까지 줄줄이 파산하는 사태에 까지 이른다. 서부에서 시작된 은행파산은 동부로 번져나갔고, 급기야 영국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영국은행은 외국으로 금 유출을 막기위해 금리를 올리고 미국 증권에 대한 투자와 미국으로 부터의 면화 수입도 줄였다. 미국 경제는 깊은 불황의 늪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면화가격이 50%나 떨어졌고 미국내 공장의 90%가 문을 닫았으며 1837년 연방정부의 세입은 반으로 감소했다. 급기야 뉴욕의 은행들은 정화 지불을 중단했고, 다른 동부의 주요도시 은행들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1837년 앤드루 잭슨이 대통령에서 물러나고 후임자인 마틴 밴 뷰런이 실패한 재정정책의 정치적 결과를 떠안았다. 불황은 1843년 2월에 가서야 회복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잭슨집권기의 공황은 30년대초 경기과열에 ‘국채청산’ ‘정화유통령’등 잘못된 정책혼합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경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는것이 불황을 막는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방법이다. 이미 불황의 초입에 들어섰다면 올바른 경제정책을 시행하는것이 최소한 공황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수 년간의 경기호황과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세계경제는 불황의 초입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올바른 경제정책만 시행된다면 1~2년내의 짧은 침제로 끝나겠지만 잭슨과 같이 자신의 관념이나 이념에 사로잡힌 잘못된 정책이 믹스된다면 공황도 결코 역사적 사건의 얘기만은 아닐것이다. 정부는 무엇보다 현재의 위기 상황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주식시장 불안하다. 부동산시장 매우 심각하다. 국가부채 매년 최고다. 가계부채 마찬가지다. 금리 종잡을 수 없다. 물가 어디까지 오를지 모를 정도로 가파르다. 도대체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하는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선결과제인지를 알아야 한다. 지엽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부분적으로 옳은 것이 전체적으로도 옳은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작은 것과 큰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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