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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와 이데올로기 펀글
06-03 11:21
가치투자와 이데올로기



요즘 가치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사람들이 가치투자에 관심이 많아졌을까? 그것은 기존의 주식투자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차트분석만으로 과연 돈을 벌 수 있을까?



사실 차트분석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차트의 고수가 되는 것도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 업무상 자칭, 타칭 수 많은 차트고수들을 만나 보았지만 저는 차트분석만으로 제대로 돈을 번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차트분석에 관해 정말 좋은 책을 쓰신 분들도 그리 부자인 분이 없는 것을 보면 차트분석만으로 성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그리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경제분석으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경제분석을 잘 하는 사람이 주식투자로 돈을 벌 수 있다면 우리나라 모든 경제학자들은 주식투자를 통해 재벌이 되었을 것이며, 설령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공부를 안 해서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하버드나 예일, 프린스턴의 경제학자들은 모두 주식투자를 해서 거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1800년대의 리카르도나 1900년대의 케인즈 같이 경제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두 사람은 주식투자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하나 그 외 주식투자로 거부가 되었다는 경제학자들은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머튼과 마이런 숄즈라는 사람은 LTCM이라는 거대 헷지펀드가 파멸해나가는 와중에 그 배속에 함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차트로도 안 되고 경제분석으로도 안 되는 일이므로 답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워렌버펫이란 사람이 등장합니다. 어쨋거나 이 사람은 주식으로 전 세계에서 2번째로 큰 부자가 된 사람이기에 그의 투자방법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래서 나름대로 똑똑한 관찰자들이 그의 매매방식을 보니 눈에 띄는 것은 좋은 주식 사서 장기 보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관찰자들은 "좋은 주식을 사는 것과 장기보유"라는 나름대로의 정답을 발견하게 되고 워렌버펫의 스승이 벤저민 그레이엄 이라는 사실을 연상하며, 그의 투자방식을 가치투자라고 이름 붙이게 됩니다.



그런데 이 가치투자라는 것에 대해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것이 벤저민 그레이엄에서 시작되어 워렌버펫에서 꽂을 피운 매매방식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문제는 워렌버펫이 여지 것 한번도 스스로 가치투자라는 것을 정의하고, 책을 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워렌버펫의 매매방식은 딱 이거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버크셔라는 저성장 섬유회사를 장기보유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비싸 보이던 코카콜라에 거의 몰빵을 하기도 하더니, 2000년대에 들어서는 채권투자로 재미를 보기도 하고, 요즘엔 아예 미국달러의 저평가를 예상하며 외국환 거래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워렌버펫에 대해 한국에 번역된 책들의 대부분이 80 ~ 90년대 초반의 워렌버펫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우리는 워렌버펫 하면 무조건 좋은 주식만 사고, 한번 사면 무조건 오래 들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사실 그것이 워렌버펫의 전부는 아닙니다.



워렌버펫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가치투자라는 이데올로기로 한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워렌버펫은 차트분석의 고수이고, 경제분석의 대가이며, 타이밍매매에도 정통한 그야말로 천재적인 투자가이며, 그를 단지 가치투자가라고 한다면 이는 어쩌면 그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저는 워렌버펫이 스스로를 가치투자가라고 한정지어 말했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없으며, 그가 자신은 가치투자로 돈을 벌었다고 책을 썼다는 사실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가치투자..



워렌버펫이 성공한 이유를 단지 그가 가치투자를 해서였다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전도된 말입니다. 워렌버펫이 성공한 이유는 그가 가치투자가여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경제상황과 돈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했으며, 자신이 매수하는 기업의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80 ~ 90년대 장기간 주식을 보유했던 이유는 그 시기 동안 주가가 장기간 상승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지, 그저 주식은 장기간 보유해야 하는 것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충실해서가 아닙니다.



만약 미국증시가 20년간 초 장기 활황을 보인 8~90년대가 아니라, 1929년 ~ 1937년의 시기였다면 과연 워렌버펫이 좋은 주식이라고 무조건 장기간 보유했을까요?



기업의 가치분석..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의 가치를 분석하는 일은 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식투자에서 이익을 주는 것은 그 기업의 과거와 현재가 아니라 미래입니다. 지금 아무리 좋은 주식도 미래에 나쁘다면 결코 그 주식을 통해서 수익을 낼 수 없을 것입니다(70년대만 해도 IBM은 세계에서 제일 좋은 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그런 회사의 하나일 뿐입니다)



따라서 가치투자를 잘 하는 사람은 미래의 경제상황, 미래의 트렌드, 그 기업의 향후 전망에 대한 적절한 분석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전적으로 미래에 다가올 일로서 결국 예측에 관한 문제로 귀착됩니다.



과거와 현재를 통한 미래 예측의 부 정확성..



이는 차트분석의 근원적 결함과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겠다는 논리를 가진 차트분석.. 그런데 기업의 가치를 분석하는 작업 역시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한다면 차트분석과 다를 것이 없는 셈이 됩니다.



(단 차트분석은 너무나 자주 부 정확성이 노출되지만, 기업분석의 경우 과거와 현재의 추세가 상당기간 지속되는 경향이 높으므로 차트분석에 비해선 단기적으로 실수할 가능성이 적은 편입니다. 그러나 결국 기업의 가치분석 역시 미래에 대한 예측의 문제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다시 워렌버펫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과연 워렌버펫은 그저 좋은 주식을 장기간 보유하여 돈을 번 것일까? 과연 좋은 주식, 장기간 보유라는 투자방식이 워렌버펫을 부자로 만든 것인가, 아니면 그 시대가 그런 매매방법이 필요했기에 워렌버펫이 그랬었던 것일까?


만약 미국증시가 20년간 초 장기 활황을 보인 80~90년대가 아니라, 1929년 ~ 1937년의 시기에 워렌버펫이 주식투자를 했더라도 좋은 주식이라고 장기간 보유했을 것인가? 만약 그랬다면 왜 밀레니엄 버블이 터진 21세기에 들어서 워렌버펫이 채권투자에 관심을 갖고, 왜 지금은 저평가된 주식을 찾기가 힘들다며 외국환 매입에 관심을 쏟는 것일까?



이제 워렌버펫과 가치투자에 대해 저의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워렌버펫은 단지 좋은 주식을 장기간 보유하는 사람으로 한정 지어서는 안 된다.



2. 그는 그 시대의 경제동향, 향후 몇 년 간의 경제예측에 정통한 사람이며 따라서 그 시기에 어떠한 매매방식이 필요하고, 무엇을 사야 하는지를 아는 천재적인 인물이다(물론 가끔씩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실수하는 확률보다는 성공한 확률이 높습니다)



3. 그는 기업분석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미래가치 분석에 뛰어난 사람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틀릴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언제나 인정하며 실수할 확률이 적은 기업을 매수할 정도로 주도 면밀한 사람이다.



(80년대 중반 코카콜라를 결코 싸지 않은 가격에 매수할 수 있었던 것, 최근 들어 제너럴리 라는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재보험사를 매수할 수 있었던 것은 미래예측에 대한 그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며, 캔디회사, 가구회사, 보석판매회사, 신문사 등 기업의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기업을 선호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틀릴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주도 면밀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4. 8~90년대 워렌버펫이 좋은 주식, 장기투자라는 소위 우리가 말하는 "가치투자"로 돈을 번 것은 그러한 투자방법이 그 시대에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지, 그가 가치투자라는 이데올로기에 빠진 사람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5. 미래에 대한 올바른 예측, 그 시대에 대한 정확한 판단, 기업의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는 이데올로기로써 가치투자를 하는 또 하나의 맹목적 투자자일 뿐이며, 이는 맹목적 차트 매매자와 크게 보아 다를 것이 없다. 워렌버펫이 위대한 것은 이데올로기로서의 가치투자를 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적절한 투자방법이 가치투자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6. 가치투자를 한다는 것은 무슨 훈장이나 자신의 뛰어남을 입증하는 보증서가 아니다. 가치투자를 한다는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얼마나 많은 능력과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를 인식해야만 하며 가치투자라는 명제의 무거움 앞에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가치투자는 워렌버펫 혹은 버펫촌 사람들 정도의 능력이 되어야 가능한 투자방법일지도 모른다.



7. 따라서 누구나 가치투자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일지도 모른다.가치투자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에는 두 가지 부류가 존재한다. 하나는 그 시대의 경제상황과 자금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안목, 미래에 다가올 일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예측 능력을 갖춘 탁월한 능력의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의 맹목적 추종자들이다.



슬픈 얘기지만 그 외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가치투자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이데올로기로써 가치투자를 말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데올로기의 무거움으로 인해 더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