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방 ::
왜 성장만이 아니라 분배가 중요한가? 고서
06-20 21:55


아랫글은 지난 3월 11일과 16일에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책의 독후감의 서문으로 썼던 글이다. 어느 스님께서 바닷물은 도토리껍질만큼만 떠마셔봐도 짜다는 것을 알수 있다고 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부도덕한 이명박정부의 모든 것은 경험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부도덕한자가 할 수 있는 일이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가 취하는 모든 정책은 제 자신과 1% 부자 기업가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만 한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이 둘러대기와 시간벌기임을 명심 또 명심해야만 한다. 게다가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추진하려고 할 것이다. 그가 취하는 정책은 모든 것을 반대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는 망가질 것이 분명하다! 그가 하는 어떤 이야기에도 속지 말아야만 한다!




2008. 6. 20. 21:26





이명박 정부를 탄핵해야만 한다고 힘껏 외치는 고서

김 선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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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염집 여인네가 애지중지하던 골무를 잃고 애통해 하는 이야기가 읽은 기억이 있다. 사소한 골무를 잃은 것이 가까운 가족을 잃은 듯 슬퍼하던지 글을 읽으며 좀 의아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서야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저녁 퇴근길에 애지중지하던 자를 잃어버렸다. 몇 년 동안 평일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함께 했던 자를 잃어버리고는 여간 가슴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짜피 언젠가는 헤어질지도 모르는데 아끼던 것을 잃어버렸다고 슬퍼해서 무엇하랴 싶어서 애써 아쉬움을 떨쳐버리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오늘도 퇴근길에 전철안에서 두리번 거리 내 옆에 앉았던 분이 있지는 않을까 찾아보았다. 혹 내 자를 보지 못했냐고 물어보려고 말이다. 하지만 그 분은 보이지 않았다. ~ 23:29







요즘 아쉬운 것은 자를 잃어버린 일만이 아니다. 삼성의 부정을 고발한 김용철의 용기에 의해 특검조사를 하고 있지만 웬지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숨기려고 하고 있는 듯 하다. 이는 경제를 중시하는 새로운 대통령이 입김이 들어가서는 아닐까 의심이 든다. 양심과 도덕을 지키는 위정자였다면 과연 어떠했을까. ~ 23:33 12:31~







나는 요즘 불행하다.







왜냐하면 시비지심의 마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행복에 관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불행하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불행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앞날이 너무나 암울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지 며칠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추진하는 정책마다 모두 어리석은 생각이 아니면 편파적인 의도를 갖고 있는 옳지 않은(非) 것들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 개인에게만 영향이 미치면 그만이겠지만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일들이기 때문에 그릇된 일이라고 따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인수위를 지휘하던 당선자 시절부터 말썽만 빚더니 대통령 취임한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내 놓는 정책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인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시커먼 도둑놈들이 대놓고 사기를 치고 도둑질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나부터 열가지가 모두 그렇다. 영어 몰입 교육, 정부조직법 개악, 부패내각 조각, 법인세 인하, 기업총수와 핫라인 설치, 7시 30분 국무 회의, 공직자 머슴론, 유류세 인하, 복지예산 삭감, 장관급 월급 대폭 인상, 학원 24시간 개방, 부가세 인상. 내놓는 모든 정책이 부패, 불법, 비리, 사기만 일삼은 1% 부자들만을 위한 것이다. 기가막힐 노릇이 아닌가. 그러니 도둑놈 집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곧 나라가 망하지 않겠는가.







세상에 원칙과 상식이 이렇게도 없을 줄은 정말 몰랐다. 최고 리더가 썩은 사람이니 어찌 깨끗한 사람이 따르겠는가. 장관이나 요직에 앉히는 사람마다 모두 비리와 부정부패를 일삼던 더러운 인간들 뿐이다. 정도를 걸어도 나라가 바로 설지 말진데 이런 더러운 인간들이 이끄는 한국호가 어디로 가겠는가. 패망의 길로 갈 밖에 달리 갈 곳이 없지 않은가.







대통령을 탄핵하고 모든 위정자들을 끌어내려야만 한다. 하지만 법치국가에 그럴 수가 있는가. 하지만 가만히 두었다간 나라가 망하게 되는데 보고만 있을 수가 있겠는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고통스럽지 않은가 말이다. 정말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국민들이 어리석어서 그런 것이니 무엇을 탓하겠는가. 하지만 나라가 썩어가고 있는데도 수수방관만은 할 수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의식이 깨어나야만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아주 무서운 정치제도다.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냥 무턱대고 자신의 한 표를 부정직하고 파렴치한 인간에게 던져 버린 것이다. 스스로를 죽음의 길로 몰아넣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 정말 대오각성을 해야만 한다.







이런 모든 생각이 다 나의 시비지심(是非之心)에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안다. 명상을 하고 깨달음의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이런 마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두 헛된 생각이라는 치부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 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은 어쩌란 말인가. 도덕과 양심을 내팽개치고 저만 잘 살아야겠다고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짐승으로 살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이쯤에서 시비지심이 무엇인지 한번 알아보자.







시비지심(是非之心) 조금 무거운 글 / 2006/04/05 07:45



http://blog.naver.com/makara/10003085593



이 포스트를 보낸곳 ()





살아가는 동안 놓고 살기 힘든 것이 ‘是(시)와 非(비)’라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옳음’과 ‘그름’ 또는 ‘Yes’와 ‘No’의 적용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시비(是非)를 분별해야 하는 여건도 문제가 되지만 결국 사고력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고력의 한계는 시비(是非)를 가려 납득할 수 있는 분별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분별을 가리며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是非이외의 길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교육받은 사회적가치를 기반으로 시비(是非)와 분별력은 적극적으로 개발되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시비(是非) 그 자체의 시비(是非)에 대한 고민에 다가설 기회는 거의 없었지 않나 싶습니다.

일상의 경험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시비(是非)는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원인입니다. 시비(是非)의 분별은 보편성과 사회적대세라는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시비(是非)의 검증을 위한 잣대는 보편성으로 포장되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것 입니다. 덕분에 검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합니다. 시비분별은 결국 불만족의 원인이 됩니다. 시비(是非)는 머리로 따져지고,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 조작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시비(是非)의 분별을 만들어 내는 근원을 찾아보고자 하는 노력도 의미가 있습니다.

선(禪)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是와 非를 놓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머리로 생각(思)하여 是非를 가리려 하지말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순간 이미 是非의 순수성은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 입니다. 시비(是非)를 버려야 시비(是非)를 알수 있다고 하는 말은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생각이 만들어 지는 지식, 사리를 통한 판단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라 합니다. 선각(先覺)들은 是속에 非가 있고, 非속에 是가 있음을 깨달으라고 호통칩니다. 시비(是非)는 절대적이지 못하기에 수렴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준임을 깨달으라 합니다. 옳고 그름이라는 단순함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깨달은 이들이 나누는 선문답(禪問答)의 기본 원리는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是와 非의 분별심에서 벗어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는 불교의 대표적인 선문답(禪問答)이 있습니다. ‘불성이 있다.’해도 답이 아니고 ‘불성이 없다’해도 답이 아니라고 합니다. 저는 답을 모릅니다만, 시비(是非)의 분별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유가에서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만큼 인간이 벗어나기 힘든 것이 옳고 그름에 대한 집착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是와 非의 분별에 지나치게 집착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고정된 생각으로부터 나옵니다. 是와 非를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싶습니다. 복잡한 세상사를 바라볼 때 그리고 세상사를 만들어내는 것을 바라볼 때도 말입니다.

일상과 상황을 시비(是非)의 분별로만 바라보고자 하는 편협함을 이제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시비(是非)를 나누려 하지 않고 시비(是非)를 무시하려고도 하지 않는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속에 섞임으로 숨겨져 있는 중도(中道)의 진정한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싶습니다. 아울러 세상사를 시비(是非)와 그 외의 그 무엇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시비지심(是非之心)의 유혹을 이겨내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유혹을 넘어 바로 섰던 사람들의 뒤를 쫒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회학자인 앤서니 기든스가 사회구성체 논쟁에 제 3의 길을 있음을 주장했던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고, 받아들이고, 변별력을 가지는 것에도 제 3의 길은 있을 것 입니다. 시비(是非)라는 당연성의 수렁에서 자신을 건져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是속에 非가 있고, 非속에 是가 있음’에서 무엇을 낚아내야 할 것지, 그 낚아냄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할 것인지 열심히 참오해야 할 것 같습니다.

Mr.뚱 [출처] 시비지심(是非之心)|작성자 자유인생



내가 왜 이렇게 내 생각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느냐 하면, 행복은 생각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어떤 생각이든 생각은 느낌을 낳는다. 그 느낌이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이면 우리는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기쁘거나 즐겁거나 유쾌한 기분이 되어 행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의 첫째 요소는 생각을 제어하는 것이다.







생각을 제어할 수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







이런 원리를 알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위와 같은 시비지심에 빠지지 않기로 결심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성적인 생각으로 접근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것을 하나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과연 오늘날 이명박 정부의 잘못을 내가 해결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져보면 된다. 사실,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잘 해나가길 기도하면서, 여유를 갖고 지켜보면서, 그들이 제대로 해 나갈 수 있도록 비판과 조언을 하는 장기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는 것이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라면 깨끗하게 잊어버리면 된다.







사실 이런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에 부딪힌다. 가정이나 직장 그리고 이웃에서 사람들과 혹은 환경에서 생각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 사람이든 환경이든 객관적으로 나쁜 것은 거의 없다. 우리가 그렇다고 인식할 뿐이다. 그리고 객관적이라는 것이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어떤 시간대를 갖고 통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변할 수가 있다.







가령 지금의 이런 상황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국가나 국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국민은 어리석은 생각을 갖고 있다. 능력만 있으면 도덕적 혹은 법적인 문제가 있어도 된다고 하는 너무 수준 낮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5년 동안 우리 나라 경제는 나빠지지 않았고 성장을 했다. 문제는 성장의 혜택이 가지지 못한 자들이나 서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서민들마저도 경제가 문제가 있었다고 그릇 인식한 것이다. 물론 그렇게 인식하게 된 데는 부정과 부패를 일삼는 주요언론사들의 왜곡 보도가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국민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모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 흠이 있어도 대통령으로 뽑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국민들 의식수준이 너무 허약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그렇다는 사실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어리석은 위정자로 인하여 고통을 겪어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제서야 제대로 인식하는 힘을 갖게 된다. 그것이 결국은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행복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를 잘 못하는 것도 좋게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려되는 것은 나라가 크게 위험에 빠져 그런 교훈을 얻기도 전에 쓰러져버릴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윗물이 말아야 아랫물이 맑다







어찌 보면 이 속담은 그 속에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다. 오랜 동안 선조들이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진리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매하여 이런 진리를 외면하였던 것이다. 조직이든 사회든 지도자들이 깨끗해야 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하여 고통을 견디자고 요구해도 국민들이 따를 수가 있는 것이다. 지도자가 깨끗해도 밑으로 내려오면서 부정 부패에 물들 수 있는 것이 사회인 것이다. 그런데 그 윗물이 아예 더러운 자라면 밑의 관료나 백성은 부정식과 부패가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나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법으로 철권통치를 한다고 해도 먹히지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법이 무섭다고 하지만 어찌 백성들이 따르겠는가.







나는 이번 선거를 통해서 어른들이라고 하는 노인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놀랬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정치를 잘 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정녕 우리나라에는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노인들이 없는 것이다.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저열한 생각만을 갖고 있는 한 아무리 나이를 드셨어도 어른으로 대접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이 값을 못하는데 공경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오래만 살았다고 대접을 해야 한다면 인간보다도 수명이 긴 동물이 있다면 동물들도 공경을 해야겠는가?







따라서 위정자들은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절대 부정 부패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나라의 통치를 맡길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얘기를 떠드는 것조차 너무나 구차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집에서 아버지가 나쁜 짓만 하고 돌아다니는데 자식들에게 아무리 잘 하라고 훈계를 한들 제대로 받아들여지겠는가 말이다. 아버지가 계집질이나 하고 사기나 치고 산다면 자식들이 존경할 수가 있겠는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결국은 또 시비지심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몇 년 동안 고통스럽게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것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통을 달갑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한다. 그래야 고통을 딛고 일어서서 행복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제가 나빠지는 것은 대외적인 변수 때문만이 아니다







주식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어느 회사에 투자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가 결국엔 최고 경영자가 어떤 사람이냐는 것이다. 가치투자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경영자가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그것이 오너 경영자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겉만 화려하고 내실이 없는 회사에 누가 오랜 기간 투자하려고 하겠는가. 특히 투자자의 돈이나 울궈먹으려고 하는 사기꾼 같은 경영자를 믿고 투자할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지금 외국인 투자자가 물밀듯이 빠져 나가고 있다. 한국이라는 국가가 투자할만한 메리트가 있다면 잇속이 있다면 불길도 마다하지 않는 투자자들이 왜 빠져나가겠는가. 한국이라는 국가경제가 믿을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워런버핏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투자자를 한 분 알고 있다. 그분의 의견을 한번 살펴보자.



(내용 생략)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이 달라지더라도 진실은 있는 법이다. 그것은 우리는 빵으로만 살 수 없으며 사는 동안 마음 편하게 행복하게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부정부패만 일삼고, 사기만 치고, 제 욕심만 차리는 사람들에 마음의 평화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집이 무엇인가? 마음 편하게 몸을 쉬는 곳이면 그곳이 바로 집이다. 집이 커지면 마음이 더 편해지는가? 큰 집이 있다고 해도 부부가 화목하지 않으면, 자식들이 다투기만 한다면 행복은 물 건너 가는 것이다. 왜 우리는 쓸데 없는 집 욕심을 그렇게 내는가? 집이 정말 인생에서 그리 소중한 것인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부동산이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부동산에 미쳐있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부동산에 돈이 묶이면 기업에 제대로 투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부동산에 투자하면 연구개발이 저절로 이뤄지는가?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도대체 부동산에서 마음의 평화도 얻지 못하고 상품 개발도, 생산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왜 부동산 투자에 혈안이 되어야만 하는가.







돈 욕심 때문이다. 사두면 천정을 찌를 듯 올라가니까 불로소득을 많이 벌어서 펑펑 쓰면서 남보다 더 잘 살아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뿐이다. 그러한 불로소득이 많이 생기면 다른 누군가가 희생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허리띠 졸라매고 안 먹고 안 쓰면서 모은 돈을 부동산에 파묻어 두어야만 우리가 비싸게 사고 팔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좋은가? 우리는 어리석어서 제대로 생각할 줄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제대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투기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살 집으로 투자를 한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항변하겠는가. 그렇다면 평수를 점점 더 늘려가는 것은 함정에 빠지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가? 그런 욕심은 끝이 없는 게 깊이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의 구조라는 것을 아는가? 자, 집을 늘려가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잘 알려주는 글이 있어서 소개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정작 행복이 무엇일까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그것이 곧 행복이라 착각하기도 하지요. 처음 집을 장만했을 때를 기억해 보세요. 이사한 뒤 길어야 한 달 정도 뿌듯할 뿐, 곧 더 큰 평수가 눈에 들어오지 않으셨나요? 집만 장만하면 다른 욕심 안 부리고 만족할 것 같았는데, 그 만족감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때 느낀 감정은 무엇일 까요? 그것은 잠깐의 행복감일 뿐입니다. 행복이 욕망 의 충족에서 오는 것이라 믿는다면, 진정한 행복을 얻 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흔아홉 섬 가진 사람이 한 섬 가진 사람의 것을 마저 뺏으려 한다”라는 속담처럼, 욕심은 한이 없고 충족을 모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자신의 욕망이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 나와 남을 이롭게 하 고자 하는 선한 욕심인지,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결핍 감과 자신감 없음을 상쇄하기 위해, 혹은 남보다 잘나 보이고 싶은 욕망에 휘둘려 성공의 이미지를 갖기 위 한 조바심인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후자의 마음으 로 사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내 면의 충만함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지 못할지도 모릅 니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일시적 행복감은 느끼겠 지만, 내면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글 최영아.주부/ ** 홈페이지)







자신에 속지 말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도 없다. 그래야 진정 행복할 수 있다. 집은 살집으로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하고, 다른 투자 상품에 투자를 해서 자산을 불려나가야만 한다.







어떤 곳에 투자를 해야만 잘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시장경제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그렇다면 당연히 기업에 투자를 하면 된다. 기업들이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해서 소비자들이 필요한 상품들을 잘 공급해서 돈을 벌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기업들이 돈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연구 개발, 생산 자동화, 물류 혁신, 판매망 확충 등 모든 기업활동에 자금이 필요한데 그런 데로 돈이 몰려야 경제가 발전하고 국부도 늘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 투자는 규제를 해야만 마땅하다. 기업에의 투자를 장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시장경제의 진실이다. 백년, 천년, 만년이 흘러가도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한 진실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원칙과 상식에 따라서 나라가 돌아가지 않으니까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에 매력이 없다고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원리와 원칙을 강조하고 기업들이 정직하게 투자하고 생산하고 판매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인 것이다. 세금만 낮춰준다고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정직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국가, 기업, 국민 모두가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만 한다. 그럴 때야만 서로 믿고 경제활동에 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는 한 다른 모든 정책은 미봉책이 되고 말 것이다.







삼성의 기업비리를 보면 놀랍다. 대한민국 모든 관료들을 매수해서 자신들의 하수인으로 삼은 것이다. 검찰이 그들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으니 법치가 서겠는가 말이다. 그 더러운 손의 치밀한 관리는 온 나라를 검게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누가 법을 지키고 제도를 따를 것인가. 이제 우리는 죽을 각오를 하고 반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이 정직하게 상행위를 해야만 존경을 받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더러운 나라에서 더 이상 투자할 수 없다고 빠져나가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우리 국민 모두는 이러한 이면의 진실을 모르고 있다.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 회개하고 뉘우쳐야만 한다.











더 이상 돈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많은 연구 결과가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돈이 더 많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는다는 것을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소득이 늘어나도 선진국의 행복지수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행복을 찾을지를 고민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우리는 경제 논리에만 빠져서 살고 있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수준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나라는 과연 부의 수준에서 세계 몇 위에 속하는가. 경제규모로만 보면 10위권에 해당한다. 2006년도 자료를 보면, 국민소득은 17,690$로 49위고, 국내총생산은 8,565억$로 12위다. 만족할만한 수치는 아니지만 그렇게 나쁘다고만 볼 수가 없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1$에 1,000원, 3인 가족이나 4인 가족으로 계산해 보면 가구당 연소득이 5,000만원 ~ 7,000만원이다. 이 정도 수입이면 어떤가? 적은가 아니면 많은가? 절대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금액일 것이다. 더 많은 부자들은 논외로 하고, 5000만원 정도의 연 소득이라면 적지 않은 돈이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정도 소득이면 부자국가와 비교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질 높은 삶을 꾸려나갈 수가 있다. 그래서 돈이 행복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비교가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특히 주위 사람들과 비교를 많이 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정한 수입인데도 불구하고 적다고 생각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개인적인 행복을 살펴볼 때도 빠지는 불행의 함정인 것이다.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절대 만족할 수 없고, 언제나 더 높은 것과 비교하면서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더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비교에 민감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정작 추진해야 하는 정책은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모른 채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아무런 생각없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빈부의 격차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 미국과 같이 자유시장경제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선진국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경제가 발전할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양극화의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해지고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경제가 중요하게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통계적으로만 보면 가구당 수입이 평균은 5,000만원이 되지만 중.하류층 서민들은 실제 그것보다 훨씬 적은 수입밖에 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과 비교해서 더 상대적 빈곤감,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돈 때문에 불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생활 자체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없을 때는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돈인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실이 이렇기 때문에 성장보다는 부의 분배가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다. 균형 발전과 부의 분배로 다 잘 살게 만들어야만 하는 당위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회복지 정책은 필요하고도 적절한 정책인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를 발전시키면 부의 분배가 균형되게 이루어져 서민들의 소득이 늘어나게 될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부가 편중이 심화되는 경제적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잘 살 수 있다는 착각으로 가난한 서민들도 수입을 늘릴 수 있도록 경제를 살려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했지만 이제 우리 나라는 국가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도 그 과실이 서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기업들의 배만 불리고, 투자자들의 소득만 늘어날 뿐이다. 오히려 그들은 더 가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웃기는 노릇인가.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어리석게도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줄 정책만 취할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자승자박이 아닐 수가 없다. 747이라는 허황된 공약에 멋지게 속아넘어간 것이다. 그들이 이미 서민들을 살리는 것과 반대되는 정책만 취하고 있다.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 시킨다고 법인세를 인하한다고 했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노릇이다. 법인세를 인하하면 그에 해당하는 세금은 어디에서 걷을 것인가. 먼저 정부 예산을 줄이거나, 충당할 다른 세목을 검토한 후에 법인세를 인하해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떤 예산을 줄일 것인지 검토하고 토의하고 합의를 했는가. 세수가 줄어들면 다른 세금으로 충당을 해야만 한다. 법인세는 직접세이다. 수입을 많은 법인만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다. 하지만 부가세와 간접세는 같은 것은 무차별하게 세금을 부과하는 세금이다. 수입이 10만원인 사람이다 10억인 사람이나 라면 한 개에 똑 같은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다. 법인세를 줄이면 반드시 예산을 깎던지 다른 세금을 더 걷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과연 어떻게 할까? 뻔하다, 불필요하다고 하는 예산을 줄이던지, 국민들에게 세금을 더 걷을 것이다. ㅎㅎ







이러한 나의 주장은 나만의 주장이 아닐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이 국민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은 행복의 공식이라는 책이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그것도 과학적인 조사방법을 통해서 연구를 했다고 한다. 분명 우리 정부가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양극화를 해소하고 소득의 균형된 분배 정책을 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필요한 예산의 낭비를 감시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없는 서민들이 세금을 덜 내게 되어 경제적 궁핍을 덜 겪을 것이니깐 말이다.







국민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지에서 깨어나야만 한다. 경제가 어떻게 정확하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가 있다. 어떻게 무턱대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수가 있겠는가. 보라, 이명박 정부는 결코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고혈을 짜내는 정책만 취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1%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될 것이니깐 말이다. 그들의 생각에는 균형된 부의 분배란 안중에도 없다. 자기들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후안무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못했다고 비판을 해도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결코 반성하지 않는다. 절대 반성하지 않는다. 그들의 뇌에는 그런 개념의 뇌세포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바로 후한무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자공부 좀 해보자. (http://cafe.naver.com/chinainstitute/884에서 펌)







세상 사람들이 예의염치에 따라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이 예의와 의리 그리고 체면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지니고 산다면 시시비비로 아옹다옹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예의와 의리는 말할 것도 없고, 체면 불구하고 앙앙불락하는 데 문제가 있다.



요즘 뉴스나 지상을 통해 거명되는 면면들 중에는 예의염치를 불구하고 산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 사람들을 보노라면 청나라 말기 후흑학(厚黑學)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이종오(李宗吾, 1879~1944)의 처세비법 육자요책(六字要策- 본래의 중문은 做官六字眞言임)이 생각이 난다.



종오는 사람이 출세를 할려면 후안무치(厚顔無恥)해야 한다면서 후흑학의 대가로 세태를 꼬집었다.



두꺼운 얼굴가죽(面厚)과 숯뎅이 같은 마음(心黑)을 지녀야 한다면서 관리들의 처세비법 육자요책이란 것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른바 육자요책이란 공공붕흉농롱(空恭繃兇聾弄) 여섯 자를 말한다.



여섯 자의 뜻은 우선 공(空): 실무처리나 기안서 등을 허술하게 처리함으로써 언제든지 도망갈 길을 열어둔다는 것이다. 공(恭): 먼저 머리 숙여 아첨하거나 상대를 높이는 것으로 여기는 직접법과 간접법이 있는데, 상사를 향해서는 직접법을, 상사의 인척, 친구, 비서에 대해서는 자기를 비하하는 간접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붕(繃): 공(恭)과 반대로 부하나 일반 대중에게는 엄한 모습으로 큰 경륜을 갖춘 것처럼 위풍당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흉(兇):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은 죽든 말든 남의 희생을 개의치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쁜 인상을 주면 상대방의 원한을 살 우려가 있으니 겉으로는 인의도덕을 갖춘 인물로 철저하게 위장해야 한다. 농(聾): 귀먹어리처럼 불리한 대목에서는 남이 웃든 욕하든 상관치 말라는 것이다. 마지막인 롱(弄):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지리 말고 금품공세와 물품공세를 펼쳐야 하지만 사단에 따라 대소공세의 차이를 둔다.







이제 곧 권력의 대 이동이 일어날 것이다.



이는 5년에 한 번 오는 절호의 기회이다.



혹여나 처세비법을 몰라 실기하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참고하시라고 해서 여기 옮겨 실었다.



그러나 본래의 의도는 조감(藻鑑)을 지닌 인선자라고 해도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데 있다.







그른 것은 바로 잡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다. 사회가 썩고 병들면 누구도 살 수 없다. 둑에 구멍이 나면 작을 때 빨리 막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둑이 터지고 물난리가 나 마을은 홍수가 나고 모든 집이 떠내려가고 말 것이다.







나눌 때 행복이 배가된다







콩 한쪽이라도 나누라고 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 서로가 행복할 수가 있다. 이 세상은 물질의 풍요를 누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자식이라도 못 본체하고 제 잇속만 차리겠는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죽고 없어지면 혼자 살아남는다면 무슨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겠는가.







우리는 지금 짐승처럼 살고 있다. 저만 잘 살겠다고 경쟁하고 싸우고 타투고 있다. 우리는 정신의 산물인데도 동물처럼 살아가고 있다. 인간을 경제적 동물이라며 즐겨 인용하고 있다. 우리 인간이 정말 돈밖에 모르는 동물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아는 게 힘이다







정말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알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이 어울려 사는 한, 사회 관계 속에서 행복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한 국가에서 구성원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 같이 잘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 이상과 같이 밝혀졌다. 모두가 잘 살기 위해 베풀고 양보해야만 한다. 그리고 국가 정책적으로 부의 균형된 분배가 이뤄지도록 정치를 해야만 한다. 그것이 위정자들의 책임이자 의무인 것이다. 온 국민이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살아야만 할 것이다. 모른다면 배우야만 한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인간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그 동안 나는 수 많은 행복에 관한 책을 읽고 고민을 하고 연구를 해 왔다. 우리는 행복을 내적 행복과 외적 행복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 행복은 외적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이나 지위 등 외적 행복 요소가 과연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까. 90%일까, 아니면 50%? 놀라지 마라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진정한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어디서 우리의 행복을 찾을 수 있고,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배워보자. 아는 게 힘이라고 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