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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근질 펀글
07-01 20:45
신영투신의 허남권 상무는 이젠 국민 펀드가 된 신영마라톤펀드의 운용 책임자다.

펀드의 이름이 마라톤이라 날씬하고 갸름한 몸매를 생각하였으나 의외로 그는 육중한 몸매와 보통 사람의 2배 정도 되는 큰 손을 가진, 마치 유도선수와 같은 느낌을 주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와의 만남은 5월의 아름다운 봄날하고도 어버이날이었던 8일에 있었는데 필자의 게으름과 새로운 회사 창업 준비와 겹치며 무려 50일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글을 올리게 되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인터뷰에 응해주신 허남권 상무께 진심으로 사과의 인사를 올리며, 더불어 5월 13일 인터뷰를 진행한 밸류자산운용의 이채원 부사장께도 아울러 사과의 인사를 올린다.



허남권 상무.



앞서도 말했듯이 그는 건장한 몸매에 우람한 크기의 손을 자랑하여 청년시절 마치 유도선수를 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단단하고 안정된 사람이었다. 혹시나 유도대학을 나온 것이 아닌가 싶어 전공을 물어보았을 때 의외로 그는 행정학을 전공했다고 대답했다.



아뿔싸.



스포츠맨과 같이 단단한 몸에다 영혼이 없다는 공무원들의 학문, 행정학까지 전공했으니.. 일단 오늘의 인터뷰를 어떻게 진행해 갈 것인지 난감한 생각부터 들기 시작했다.



필자의 공식 직업은 주식시장의 투자분석가다. 하지만 워낙 호기심이 많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여 직업과 관계없이 다양한 분야의 수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 다니는 연고로, 필자는 새로운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면 일단 몸 틀과 관상을 통해 대략의 추측을 하고 대화를 풀어나가는 버릇이 있다.



허남권 상무를 처음 보았을 때 ‘이 사람은 웬만한 허튼 소리는 통하지 않을 그런 철벽과 같은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러하기에 질문을 던지고 그의 말에 박자를 맞추면서도 나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필자로서는 인터뷰 내내 상당한 긴장을 유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영마라톤펀드는 오랜 시간 일관된 투자 행태를 통해 안정된 수익률을 올린 검증 받은 국민 펀드이기에 그에게 투자철학이나 투자방법, 펀드운용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과정을 통해 이렇게 단단한 운용책임자가 되었으며, 또 어떤 사람들과 교류하고, 또 어떻게 후배 펀드매니저를 뽑고 키워나가는가 하는 질문들을 던지게 되었다.



우선 인터뷰의 결과를 말하자면, 신영마라톤펀드는 신뢰할만한 펀드고 인간 허남권 역시 투자자들이 믿을만한 운용자라는 것이다. 사람을 처음 보고 이런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 성급하고 경솔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이미 오랜 기간 마라톤펀드가 보여준 일관성과 안정성, 수익성을 고려하고 그의 인생관과 생활방식에 대해 들으며 필자는 이러한 판단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되었다.



예수는 그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보지 말고 나의 열매를 보라. 부실한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으니 나의 열매가 충실하고 탐스럽다면 나 역시 그런 사람이 아니겠는가” 하는 말을 하였다.



그렇다. 부실한 나무에서는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부실한 나무라도 비록 한두 개의 좋은 열매는 우연이 맺을 수도 있겠으나, 열매 모두가 충실한 것은 그 나무가 충실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1 ~ 2년이 아닌 거의 10년에 가까운 오랜 기간 충실한 열매를 맺었고, 거기에 일관성과 안정성, 지속성을 통해 펀드의 철학을 분명히 입증한 신영마라톤펀드이기에, 그 운용 책임자 역시 충실하고 믿을만하고 실력 있다는 것은 굳이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는 일이란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는 주식시장이 활활 타오르며 대 상승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던 1988년 신영증권에 입사했다. 현재 한국 주식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사람 중에 유독 1986 ~ 1988년 입사자 들이 많은데(미래에셋의 박현주 회장이 58년생이고, 에셋플러스의 강방천 회장이 60년 생이며, 신영투신의 허남권 상무가 63년생, 밸류자산운용의 이채원 부사장이 64년생으로 대개가 그 시절 증권계에 입문한 사람들이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주식시장이 워낙 호황이었고 주식시장 종사자들의 인기가 상한가를 치던 시대였기에 유능한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증권업계에 많이 입사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지금 한국 주식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당대 최고의 운용자들은 그런 우수한 인재 풀 중에서도 1990 ~ 1998년의 주식시장 대 혼란기를 넘어 생존 능력을 입증하였으며, 1992년 이후 한국 주식시장의 외국인 개방으로 기업의 가치 분석에 처음으로 눈을 뜬 증권 세대로, 오랜 경험과 탄탄한 실력을 보유하였기에 그런 위치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허남권 상무는 대학 졸업 당시 이미 금융회사에서 사회 생활을 하고 있던 여자 친구(현재의 부인)의 권유로 증권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행정학을 전공하였고 행정학에 매력을 느끼던 허 상무이기에 공무원의 길에 대한 미련이 남기도 하였으나, 다소 권위적이고 자유롭지 못한 위계질서의 공무원보다는 오직 실력에 따라 대우받는 진검 승부의 주식시장이 오히려 그에게 맞을 것이란 조언을 했던 그의 아내 또한 가치 파악에 능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가히 부창부수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1988년 입사이래 그는 지점 영업맨 생활을 6년 정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989년 이후 한국 증권시장은 몇 년간 큰 폭 하락을 하였기에 입사 이후 1년이라는 단기간의 달콤함만을 누린 그는, 이후 몇 년간 지점에서 근무하며 하락하는 주가와 주가하락에 따른 손실로 고생했던 고객들 사이에서 말 그대로 죽을 고생을 했을 것이란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 힘든 시절을 그는 오히려 제대로 주식투자를 배울 수 있었다고 감사해한다. 이 시기는 모든 투자가들이 1986 ~ 89년의 대 상승에 취해 과연 주식시장에 하락이란 것이 있을 것인가를 의심하던 시절이었고, 그러하기에 이후 몇 년간의 대세하락은 증권 투자자뿐만 아니라 증권업 종사자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일들이 주식시장에서 벌어진 시절이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주식시장에서 손실을 보지 않을 것인가? 과연 어떻게 해야 고객들의 손실을 줄이고 투자자들에게 안정적 수익을 거둬줄 수 있을 것인가?’가 당시 그의 고민이었으며, 이 때의 경험과 고민, 그리고 생존을 위해 불가피했던 토요일, 일요일을 잊은 치열한 공부가 오늘의 그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으며, 또한 그 어려운 시절에 인연을 맺은 고객들이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고객으로 남아있다고 그는 웃으며 이야기 한다.



이후 지점을 떠나 본사로 무대를 옮긴 뒤 회사 고유계정을 운영하다 1996년 신영투신이 세워진 후 신영증권 직원에서 신영투신 펀드매니저로 자리를 옮겨 중소형 Value 섹터를 맡아 펀드를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 허남권 상무와 같이 근무하며 대형주 섹터를 맡았던 이택환 씨는 현재 TSI투자자문 사장을 하고 있고, 중소형성장주 섹터를 맡았던 조영현 씨는 와이즈에셋 대표를 역임하고 KGI증권 전무로 일하는 것을 보면, 당시 이들 매니저들을 발탁해 키운 신영증권, 신영투신 경영진의 안목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신영증권은 경쟁이 치열한 증권업계에서 브로커리지 수수료가 수익의 20%만 차지할 정도로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보유하고 있으며 탄탄한 내실과 자체 운용능력을 확보한 보기 드문 증권사라 할 수 있다. 매출 구조 면으로 본다면 한국에서 가장 앞서가는 투자은행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성장의 원동력은 바로 허남권 상무와 같은 운용능력을 지닌 내부 인재와 이런 인재들을 발굴하여 키울 줄 아는 안목을 지닌 경영진의 능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현재 신영투신에는 14명의 펀드매니저가 근무하고 있는데 허남권 상무는 이들 펀드매니저들을 총괄하여 펀드를 운용하며 또한 이들 후배들을 육성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그는 행정학을 전공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위계질서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유도하고 직원들에게 끊임없는 독서와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강조하며 후배들을 일류 펀드매니저로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옛말에 강한 장수 밑에 약한 병졸 없다는 얘기가 있다. 훌륭한 장수 밑에서 생활하다 보면 약한 병졸이라도 강한 병졸로 변하기 마련이며, 거기에 선배가 후배들을 진심으로 챙기고 도와주려는 마음까지 가지고 있다면 이들 후배들이 선배를 능가하는 청출어람의 펀드매니저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하기에 이직률이 높기로 유명한 증권가에서 신영투신의 이직률이 낮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또한 이러한 사실은 한국 주식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도 감사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신영투신에 관심 있는 예비 펀드매니저들을 위해 허남권 상무가 신입 펀드매니저를 뽑을 때 주목하는 기준에 대해 물어보았다.



1. 주식시장은 인생사가 녹아 있는 곳이다. 따라서 올바른 인생관을 가지고 있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펀드 운용도 잘 할 수 있다.



2. 회사는 인재를 믿고 키워주며 인재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회사가 그에게 준 은혜에 보답할 자세를 갖춰야 한다. 폭 넓은 독서와 다양한 인생 경험. 끊임없이 부딪히며 깨지고 그러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은근과 끈기로 생을 살아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3. 펀드매니저는 시세에 영향을 주며 힘 자랑을 해서는 안 된다. 주식을 편입할 때는 수면 아래에서 장기간 분할 매수하며 시세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4. 투자자는 처음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접한 투자방법을 버리기 힘들다. 그러니 우리와 투자철학이 같은 사람을 좋아하며 가치투자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을 선호한다.





2005년 이후 한국은 본격적으로 펀드 문화가 정착되었다. 비록 지금은 세계 경제가 불투명하여 글로벌 주식시장이 동반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단기간에 걸친 과도한 상승에 따른 후유증이 드러나고 있으며, 고객의 이익보다는 회사의 이익, 혹은 자신의 이익을 앞세운 일부 몰지각한 자산운용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지만, 2003년 이후 장년기 장세에 돌입한 한국 주식시장이 금번 조정 이후 또 다시 상승에 돌입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10여 년간의 운영기간을 통해 펀드의 철학이 분명하고, 안정성과 수익성, 지속 가능성을 이미 검증 받았으며 마치 큰 바위 얼굴과 같이 단단하고 확고한 신념의 허남권 상무가 존재하는 한, 신영마라톤펀드는 시간과 세대를 초월하여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사랑 받는 명품 펀드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이어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