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방 ::
일체(해동선님 글) 펀글
07-03 16:26
바이올린 연주가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꿈의 악기를 들자면 1720 ~ 30 년경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 델 제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고가의 명품 바이올린으로 전세계에 500여대만이 남아있고 한대의 가격이 수십억 원을 호가한다.



스트라디바리우스에 비해 일반인들에게는 덜 알려졌지만 과르네리 델 제수는 현재 150여대만이 세상에 남아있으며,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귀족적 분위기와는 달리 다소 투박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원초적 감동을 주는 소리를 자랑하여 세계 최정상급 연주자들의 사랑을 받는 바이올린으로, 가격은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매년 최고가를 다툴 정도로 막상막하의 자웅을 겨루고 있다.



정경화는 두 바이올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아무리 슬퍼도 너무 고고해서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하는 귀족이라면 과르네리는 울고 싶을 때 땅바닥에 탁 퍼져 앉아서 통곡할 수 있는 솔직하고 겸손한 농부와 같다. 가히 인생의 맛이 묻어있다고나 할까”



필자는 음악의 이론에 대해서는 백치와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음악이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사실만은 잘 알고 있는데, 공자께서는 음악(공자는 하, 은, 주, 세 나라의 유행가 가사를 모아 시경을 편찬했다)을 통해 백성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통해 군왕의 덕을 평가했으며, 음악이 치세에 있어 아주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예(禮)와 악(樂)을 크게 중요시 하였다.



세상에는 유행가라는 것이 있다. 패션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듯 노래도 시대를 따라 유행하는데, 유행가는 그 시대를 반영하고 그 시대 사람들의 정서와 심리를 대변한다. 1980년대 독재 정권 시절에, 애절하면서도 비장한, 그러면서도 그리움이 뚝뚝 묻어나는 조용필의 노래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임을 위한 행진곡’,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와 같은 장엄한 풍의 민중가요가 대학생들의 가슴을 사로잡았던 것은, 그 시대가 비장의 시대였고 좌절의 시대였으며 한으로 얼룩진 시대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며, 이는 시대와 사람과 음악이 서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채원 부사장을 얘기하며 뚱딴지같이 바이올린과 음악을 얘기하는 것은 이채원 부사장과 얘기하면서 마치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같이 예민하고 정교한 고가의 바이올린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채원 부사장은 동원증권 시절 회사 고유계정을 운영하면서 탁월한 운용성과를 통해 그의 실력을 입증하였으며, 이미 한국투자신탁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금융지주에서 그의 투자 스타일을 고려하여 한국밸류자산운용이라는 또 하나의 자산운용사를 만들 정도로 그 색깔과 음색이 뚜렷한 독특한 캐릭터의 펀드매니저다.



실제로 필자가 몇 년 전에 듣기로 그의 연봉이 20억 원에 육박했다 하니 1년 연봉으로 스트라디바리우스 하나를 살 수 있을 정도며, 그를 자산운용업계의 스트라디바리우스로 표현하는 것도 크게 틀리지 않은 비유라는 생각이다.



현재 그는 한국밸류자산운용에서 ‘한국밸류10년투자’주식형, 혼합형 펀드를 중심으로 연금과 퇴직연금, 장기주택마련펀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매 분기마다 워렌 버펫의 ‘주주에게 보내는 편지”와 유사한 장문의 운용실적 보고서를 발표하며, 이것이 공개될 때마다 가치투자 사이트에서는 그가 보유하고 있는 종목, 그가 종목을 매수하고 매도한 이유를 살피기 위해 일대 소란이 일어날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필자 역시 이미 몇 년 전부터 그를 주목하였는데 가치투자 사이트, 혹은 그를 만난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그의 독특한 성격에 대해 궁금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번에 신영투신의 허남권 상무와 더불어 일주일의 간격으로 그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그를 처음 본 느낌은 앞서도 얘기했듯이 아주 예민하고 정교하며, 마치 유리와 같이 쉽게 깨질 것 같아 조심스레 다루지 않으면 안될 명품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대하는 느낌이었다. 가치투자 업계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신영투신의 허남권 상무가 마치 유도선수와 같이 단단하고 안정된 느낌으로 굳이 비유하자면 과르네리와 같은 바이올린이라고 한다면, 이채원 부사장은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같이 여성적이며 고고하고, 연주자의 땀 몇 방울에 의해서도 상처가 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험학한 주식투자의 세계.



폭풍과 눈보라가 몰아치고, 배를 집어삼킬 것과 같은 거대한 파도가 자주 몰아치는 주식시장이라는 바다에서, 과연 이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어떻게 시장을 이겨내고 어떻게 시장의 스타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비결을 물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애기했다.



“저는 운전면허도 없으니 당연히 운전도 하지 못하고, 골프도 못 치며, 테니스도 모르고, 기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알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오직 주식투자뿐입니다. 아마도 주식시장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저는 도무지 쓸데없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평일에 제게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주식뿐이며, 그리고 주말에는 오직 가족만이 존재합니다. ”



이 얘기를 들으며 필자는 그가 ‘주식을 위해 일체를 희생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존경하는 성철스님은 평소 “영원한 진리를 위해 일체를 희생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성철스님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보면, “내가 늘 생각하는 쇠말뚝이 있습니다. 쇠말뚝을 박아 놓고 있는데, 그것이 아직도 꽂혀있습니다. 거기에 패가 하나 붙어있어요. 영원한 진리를 위해 일체를 희생한다는 말입니다.”



성철스님.



그 분은 영원한 진리를 위해 그가 머무르는 암자 둘레에 가시철조망을 쳐 놓고 십년이 넘는 시간을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켰으며, 사랑하는 두 자식이 어린 나이에 죽었을 때도, 두 자식을 먼저 저승으로 보내고 가슴에 피멍이 들어 찾아 온 부인마저도 피눈물을 흘리며 돌려 보냈을 정도로, 그야말로 영원한 진리를 위해 그 모든 것을 희생시킨 비정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을까? 도(道)도 중요하고 부처님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자식이 굶어 죽어나가고 부모와 처가 그렇게 피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며 매달렸음에도 어떻게 인간으로서 그럴 수가 있었을까?



필자는 성철스님이 입적하실 때 남긴 시를 읽으며 그저 눈물만을 흐릴 수 밖에 없었다. 어찌 그에게 부모가 소중하지 않고, 처자식이 눈에 밟히지 않았으랴! 그도 한 사람의 아들이었고, 세 자식의 아버지였으며, 한 여자의 남편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인륜(人倫)이 왜 그에게는 소중하지 않았으랴! 그러나 그에게는 인륜보다 소중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천륜(天倫)이었고, 그 천륜의 도를 깨달아 가족을 넘어서 많은 사람들의 해탈을 위해 스스로를 바치겠다는 굳은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며, 한 마디로 대(大)를 위해 피눈물을 흘려가며 소(小)를 희생시킨 것이다.



부처님도 사랑하는 부모와 처 자식, 그리고 그가 지도해야 할 백성들을 떠나 숲으로 들어갔으며,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 특히 눈물로 그의 죽음을 말리는 여러 마리아들을 뒤로 하고 십자가 죽음의 길을 향해 스스로 나아갔다.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 역시 3년간의 짧은 공생애를 마치고 죽음의 길로 나아갔으며,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 역시 스승과 하늘과 사람들을 위해 죽음의 길을 피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렇듯 ‘영원한 진리를 위해 일체를 희생한다’ 는 것은 인류의 대 스승들이 걸었던 천륜의 길이었으며, 그러하기에 인륜에 따라 사는 우리 인간들로서는 이들이 눈물겹고, 그리고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며, 인간을 넘어서 신으로까지 모시는 마음이 우러나는 것이다.



이채원 부사장은 주식을 위해 일체를 희생하는 그런 사람이다. 세상에 21세기에 운전면허가 없는 가장이 어떻게 있을 수 있으며, 그만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 골프도 안 치고, 성공한 남자들이 즐겨 하는 그 모든 것들을 외면하고 오직 주식에만 빠져 살 수 있을 것인가?



그나마 그가 주말에는 오직 가족을 위해 모든 시간을 투입한다는 얘기를 듣고 안심이 되었다. ‘그래 세상에 일과 가족만큼 소중한 것이 또 어디 있으랴!’ 그러면서도 그의 얘기를 들으며 한편으로는 주중이고 주말이고 할 것 없이 매일 일과 사무실에 처박혀있는 아빠를 기다리는 나의 두 딸이 떠올랐다.



이채원 부사장은 허남권 상무와 같이 1988년 동원증권에 입사해서 만 20년째 같은 그룹에서 일해왔다. 1988년 12월, 공채 13기로 동원증권 서초지점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고등학교 때 일본으로 발령이 난 아버지를 따라 2년간 일본 유학을 한 연유로 이후 그는 동원증권 국제부에서 근무하게 된다.



(고등학교 2년간의 일본 유학은 그에게 다소간의 상처로 다가왔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고등학교 2년 생활을 외국에서 하였기에 한국 고등학교 과정을 거의 이수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었고, 따라서 귀국 후에 이것을 만회하기가 상당히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나 예민한 성격의 그에게는 이것이 큰 상처로 다가왔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국제부 생활을 하며 국제적인 투자감각을 익힐 수 있었고 또 몇 년간 일본 동경사무소에서 해외 영업을 하며 피델리티와 같은 글로벌 투자그룹들의 행태를 지켜보고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 그의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얘기지만 1999년의 IT버블은 그에게 감당하기 힘든 상처였다고 한다. 글로벌 IT주식 상승랠리와 더불어 말도 안 되는 주식들이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급등하며, 이러한 주식을 편입하지 않은 그에게‘왜 저런 잘 나가는 주식들을 편입하지 않느냐’는 고객들의 무차별적인 항의는 그를 거의 죽음 직전상태까지 몰아갔다고 한다.



고객들의 항의가 너무 견디기 힘들어 2주 동안 배변에 피가 섞여 나왔으며, 손이 떨리고 뇌출혈 증상이 나타났으며, 더 이상 이렇게 살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하여 사표를 쓸 결심을 하였다고 한다. 사표를 내기 전 연차, 월차, 여름휴가까지 모두 더해 23일간 휴가를 내고 병원에 입원하여 요양한 후 회사로 돌아와 사표를 내려 하였으나, 그의 가치와 능력을 익히 잘 알고 있는 회사의 만류와 배려로 펀드운용을 그만두고 동원증권 고유계정을 운영하는 보직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동원증권 자체 자금을 운영하다 보니 고객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회사는 단기간의 실적에 관계없이 그를 믿고 맡겨주었기에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투자를 할 수 있었으며, 이후 매년 종합주가지수 상승률을 초과하는 큰 수익을 회사에 안겨주게 된다. 이후 2006년 2월, 이채원 부사장 고유의 철학과 색깔에 맞는 자산운용사 설립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한국금융지주는 한국밸류자산운용이라는 새로운 자산운용사를 만들었으며, 이채원 부사장은 운용 책임역으로 이 회사를 이끌게 되었다.



한국밸류 10년투자 펀드.



이 펀드는 무려 10년을 투자하는 펀드다. 이러한 장기 펀드는 펀드 운용자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성공하기 힘들며, 고객과 펀드운용자와 회사간에 완벽한 믿음과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한 형태의 펀드다. 그런데 2006년 설립된 이 펀드는 2007년 여름 주식형펀드 수익률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짧은 기간에 시장의 메이저 펀드로 자리를 잡았으며, 끊임없이 투자 방법이 진화하는 이채원 부사장과 더불어 새로운 펀드 역사를 써 가고 있는 중이다.



시중에 한국밸류자산운용의 펀드수수료가 비싸다는 얘기가 있어 이에 대해 이채원 부사장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저희 자산운용사에는 14명의 펀드매니저가 있고, 펀드 수는 2 ~ 3개에 불과하여 상품 수에 비해 상당히 고비용이 소요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운용사에 비해 수수료가 다소 높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펀드 수에 비해 많은 인력들이 이 펀드의 좋은 성과를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으며, 사실은 저희 펀드의 매매 회전율이 낮기에 자주 주식을 사고 파는 다른 운용사에 비해서는 오히려 수수료가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치투자는 꼭 장기투자여야 하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저는 장기투자를 싫어합니다. 매수하고 바로 올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오랜 기간 주식투자를 해 보니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매수한 뒤 바로 올라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기에 장기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주식시장의 역사를 보면 주가란 것은 오랜 기간 일정 부분씩 꾸준히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횡보하다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그 나머지 기간 모두를 포함하는 그런 큰 상승이 일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짧은 대상승 타이밍을 찾아낸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그러하기에 우리는 저평가된 좋은 주식을 매수하고 그 주식이 올라갈 때까지 꾸준히 기다리며 장기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가 갖고 있는 종목들이 테마주에 포함되거나 일시적인 호재가 나오며 몇 년치 상승을 단 며칠 만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런 현상이 발생할 때 우리는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이들 주식을 매도하곤 합니다. 주식은 절대 단기투자적 관점으로 접근해선 승리하기 힘듭니다. 장기적 관점으로 주식을 매수할 때 승산이 높아지며, 테마주나 어떤 다른 이유로 단기간 주가가 급등하는 것은 그런 꾸준한 장기투자자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보너스라는 생각입니다.



보너스는 보너스로 만족해야 합니다. 보너스를 월급으로 생각하고 매번 그러한 것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결국 확률 통계의 법칙에 따라 이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펀드에서 매수했다고 막연히 추격 매수하지 마시고 주식을 편입할 때는 항상 펀더멘탈을 따지고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도록 노력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채원 부사장에게 향후 계획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저는 한국밸류10년 펀드를 통해 저희를 믿는 투자자들의 자금을 10년간 관리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저의 가장 큰 계획은 이 10년 동안 저희를 믿고 자금을 맡겨준 고객들에게 최고의 수익률과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10년 뒤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이름을 걸고, 좀 더 좋은 종목에 집중하며, 고객의 이익과 아픔에 밀착될 수 있는 그러한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 때가 과연 언제가 될 것인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좀 더 가족과 많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고객들에게 좀 더 높은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라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 그것을 이뤄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