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방 ::
석유에 대한 에피소드 펀글
07-09 12:43
요즘 석유가격이 200달러까지 간다는 전망이 나왔는데, 실제로도 그렇게 될까? 이런 극단적인 전망이 나올 때마다 자꾸만 옛날 경험이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1981년 말 어느 날인가, 시세는 34달러 선이었는데, 갑자기 60달러까지 간다는 전망이 국제적으로 여기저기에서 쏟아졌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경제는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었는데, 석유가격이 이렇게 폭등한다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국내 언론은 이런 전망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OPEC의 석유 생산량이 1979년 약 3천만 배럴에서 1980년에는 2천7백만 배럴까지 줄어들면서, 우리나라는 공급선을 확고하게 확보하지 못했던 때이기도 했다. 석유 재고량이 며칠 분에 불과했을 정도였으므로, 충분한 공급량 확보가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이런 때에 3백만 배럴짜리 현물 2건의 오퍼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당시 우리나라 석유 소비량은 하루 평균 약 50만 배럴이었으므로, 6일 분에 해당하는 큰 오파였다. 이것만 잡아도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석유 부족난을 해소할 수 있었다. 가격은 36달러였다. 당시 정책당국은 이것을 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당시 현물시세는 장기계약 가격보다 2~3달러 이상 높은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 오파의 가격 차이는 1달러 남짓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 오파가 어느 나라 것인지 알아봤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 종합상사의 오파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석유가격이 60달러까지 간다는 전망도 세계적으로 저명한 일본의 한 신문이 처음 내놓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 오파를 처음 받아서 정책당국에 보고했던 나로서는 강력하게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오파의 이면에는 뭔가 사연이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그러나 정책당국은 무조건 잡으라는 엄명을 내렸다. 다행히 의사결정에 시간이 흘러갔다. 현물시장의 거래는 불과 몇 초 만에 이뤄지곤 하므로, 보고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래는 좀처럼 이뤄지기 어려웠다. 결국 그 오파는 다른 나라가 접수했다.

그 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석유가격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2~3년이 지나자 18달러 대에서 안정을 되찾았다. 만약 그 오파를 잡았더라면 엄청난 손실을 입어야 했고, 나로서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더욱이 당시에는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거의 고갈 직전에 이르렀던 때였고, 실제로 1982년에는 대규모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외환위기를 겪었다.

국제사회란 이런 곳이다. 국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공정성을 생명으로 여겨야 하는 세계적인 언론까지 다분히 의도적인 보도를 내보내곤 한다. 이런 의미에서, 석유가격이 장차 200달러까지 간다는 전망도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충분하다. 석유가격이 한 때 145달러까지 올랐다가 어제는(7월 8일) 136달러까지 폭락하지 않았는가. 물론 이 추세가 장차 어떻게 바뀔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설령 그렇더라도 조금은 더 여유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 너무 조급하면 흔히 무리한 선택을 하지 않던가. 최근 정부의 석유수급 비상대책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적으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경제적으로는 성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자칫 경기하강을 더욱 빠르게 할 것만 같다.

또 하나 다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최근 세계적인 금융회사 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외환시장 개입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했다고 국내 언론이 보도한 바 있다. 그럼 그 금융회사는 자신의 이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에 관여했을까? 자신의 이익을 무엇보다 우선으로 여기는 금융회사가 말이다. 국내 언론은 이 문제를 먼저 심각하게 고려했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국내 일부 언론들은 외환보유고까지 풀어서 환율을 떨어뜨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이고, 유효한 일인지에 대해 줄기차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심지어 외환위기를 걱정하는 보도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그 언론들은 경제전문가를 내세워 보도의 신뢰성을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경제전문가들이나 그 언론들이 지금까지 유효한 전망을 내놓은 적이 있었을까? 내 기억으로는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그들은 틀리지 않았을까? 만약 그들이 지금까지 계속 틀리기만 했다면, 그리고 환율상승이 현재와 같은 물가불안을 불러올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면, 환율을 떨어뜨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고, 외환시장 개입이 훌륭한 성과를 남긴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왜 일부 언론들과 경제전문가들은 외국 금융회사의 이해만 대변하는 것일까?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의 계속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은 외환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느 무엇보다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견이다. 좀 더 공격적으로 개입하여 환율을 지금보다 훨씬 더 떨어뜨리면 좋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 정책노선을 바꿨다는 사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던가. 그걸 인정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던가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강만수 장관의 유임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싶다. 관료사회에서 강만수 장관처럼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은 좀처럼 찾기 어렵더라는 것이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가 그렇게 유연하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었다. 만약 새로운 장관이 들어선다면, 또 얼마나 시행착오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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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유가 200달러가 된다면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해도 채산성이 있다고 합니다.
가령 똥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도 충분히 채산성이 확보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대체에너지 생산에 대한 쓰나미 같은 유행이 몰아치기 전에
석유메이져들이 어리석다고 보지 않습니다.
곧 유가는 꺽인다고 보는 게 맞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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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적인 실패와 그 결과는 정책적인 개입이 없을 경우에는 좀처럼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시장 개입이 시장 개입을 부르기 때문에, 시장 개입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지요. 물가불안이 점점 더 악화되는 상황에서는, 현재의 시장 개입조차 너무 미약하다고 해야 합니다. 물가 불안을 잡기 위해서는 원래 개입했던 강도보다 최소한 2~3배 강도의 반대 개입이 필요한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가불안은 악순환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게 상당한 수준까지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국제적으로 인위적인 환율 조작이 문제로 부상하는 것은 주로 다른 나라에게 손해를 끼칠 때입니다. 즉, 우리나라가 환율을 인상하면 다른 나라의 화폐가치가 올라감으로써 다른 나라의 수출에 지장을 초래할 때에 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가 환율을 떨어뜨리면, 다른 나라들의 수출경쟁력은 높아지므로, 이 문제를 제기할 나라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것이 외환보유고 고갈과 그에 따른 외환위기를 불러올 것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에 대규모로 투자했거나 대출해준 곳은 큰 손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우리나라 외환시장 개입을 문제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지나치게 많은 수준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오히려 외국인 투자나 대출이 환차익을 남길 것이 확실하므로, 적극적으로 환영할 것입니다. 외환시장의 선물에 투자하여 큰 손해를 입을 것이 확실해진 일부 금융회사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끝으로, 미국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어떤 경제정책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에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금리를 인상했습니다. 물가불안은 여러가지 해악을 남기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 약화입니다.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면, 경제는 마냥 쇠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물가불안은 악순환하는 성향이 아주 강합니다. 그래서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물가불안을 먼저 잡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 정책은 경제학적 판단이 아니라 오랜 세월의 쓰라린 직접 경험이 가르쳐준 것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