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꾹꾸우~ 꾹꾹꾸우~
마른 하늘 봇짐처럼 머리에 이고
손발이 닳고 닳아 보리밥 쌀밥이 되도록 땅과 씨름하다
이제는 땅이 되어버린 조상의 피땀을 깎는다

꾹꾹꾸우~ 꾹꾹꾸우~
그해 울며불며 꽃상여 따르다 포옥 고꾸라지던
삼촌 고모 외가 그리고 이웃사촌들
그 눈물햇살 그 눈물바람 그 눈물골짜기를 깎는다
꾹꾹꾸우~ 꾹꾹꾸우~

야트막한 무덤 위에 잡풀로 쑤욱쑥 돋아나다가
마침내 해가 되고 달이 되고 삼라만상이 되어버린
한반도의 사무친 슬픔 되새김질하듯이
꾹꾹꾸우~ 꾹꾹꾸우~

-이소리, '벌초' 일부





해마다 추석을 앞둔 이맘 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상님 산소와 부모님 산소로 벌초를 간다. 하긴, 요즈음에는 벌초라고 해봐야 옛날처럼 그리 힘들지가 않다. 예초기가 있기 때문이다. 예초기는 산소에 무성하게 자라난 잡풀을 깎을 때 돌멩이 같은 딱딱한 것이라도 걸리게 되면 꽤 위험하지만 예전에 시퍼렇게 간 낫을 들고 사람 키보다 더 웃자란 잡풀들을 손으로 일일이 베야하는 어려움에 비하면 매우 쉽다고 할 수 있다.
벌초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벌집과 뱀

어릴 때, 아버지께서는 일가친척들과 벌초를 하러 가는 날이면 이른 새벽에 일어나 숫돌에 조선낫을 쓰윽쓱 갈았다. 그리고 시퍼렇게 날이 선 낫날이 상하거나 주변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낫날에 가느다란 새끼줄을 칭칭 감았다.

일요일 아침, 마루 끝에 노오란 새끼줄이 칭칭 감긴 낫이 몇 자루 놓여 있으면 그날이 곧 종중 산소나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로 벌초를 가는 날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때 벌초를 가는 날에는 소매 긴 옷을 입고 모자를 썼다. 이어 바짓가랑이를 긴 양말에 포개넣은 뒤 무거운 군용 신발을 신었다.

행여 벌초를 하다가 벌이나 모기에 쏘이거나 뱀에 물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특히 산에 사는 모기는 집에 사는 모기보다 훨씬 독했다. 좀 덥더라도 두꺼운 옷을 입지 않으면 옷 위에서도 마구 물었다. 게다가 산모기에 한번 물리면 몹시 간지럽기도 했지만 조금만 간질어도 금새 혹처럼 크게 부풀어올랐다.

벌집도 큰 문제였다. 산소 주변의 풀숲에 있는 벌집은 대부분 몸집이 어른 새끼손가락만할 정도로 큰 말벌이었다. 낫으로 잡풀을 마구 베다가 자칫 말벌집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그날은 끝장이었다. 벌은 손사레질을 하거나 도망을 치면 더욱 떼지어 몰려들어 온몸 구석구석을 말 그대로 벌집으로 만들어놓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뱀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특히 산소 주변에 있는 뱀들은 대부분 살모사여서 한 번 물리면 곧바로 온몸에 독이 퍼지기 때문에 빨리 응급치료를 해서 가까운 병원으로 옮기지 않으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다. 물론 벌에 물려 죽는 사람도 더러 있긴 하지만. 그런 까닭에 아버지께서는 벌초를 하기 전 미리 풀숲 여기저기를 긴 작대기로 조심스레 헤집어 뱀을 쫓았고, 벌집이 있으면 그 자리에 석유를 붓고 태워버리곤 했다.
"말 그대로 쑥대밭이구먼"

"아따! 오늘 날씨 한번 정말 좋네."
"그렇네요. 해마다 부모님 벌초를 할 때면 어김없이 비가 왔었는데, 올해는 7월에 윤달이 끼어 조금 늦어서 그런지 날씨가 정말 화창하네요."
"이번 추석은 연휴가 길어서 외지에서 고향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차 막히는 걱정은 덜겠구먼,"

2006년 9월의 마지막 날 아침. 형님 두 분, 형수님 두 분, 동생 한 명 그리고 큰집 조카 한 명과 함께 남녘 최대의 철새도래지 주남저수지가 있는 창원시 동읍 석산리에 있는 부모님 산소로 벌초를 갔다. 지난 주, 진해시 명동의 그 푸르고 잔잔한 남녘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야트막한 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종중 산소의 벌초에 이어 두 번째다.

그날 아침 10시 30분. 우리 가족들이 김밥과 과일, 오징어, 막걸리 등 먹을거리를 챙겨들고 부모님 산소에 도착했을 때 산소 주변 곳곳에는 잡풀들이 수북히 자라나 있었다. 하지만 지난 해에 비하면 그나마 잡풀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 셈이었다. 근데, 희한하게도 지난 해에 그리 많지 않던 쑥들이, 특히 부모님 묘소에 어른 키만하게 자라나 있었다.

"말 그대로 쑥대밭이구먼."
"거 참! 희한하네. 지난 여름 어머니 기일 때 부모님 묘소에 난 쑥과 묘소 주변의 쑥은 뿌리째 다 뽑았었는데, 어디서 저렇게 많은 쑥이 또 돋아났지?"
"주변에 나무가 너무 많아 햇볕이 잘 들지 않아서 그런가?"
"이만한 게 다행이지. 그나마 우리 가족들이 자주 산소에 들러 정성을 많이 들이니까 이만한 게지."
"하긴, 아마 이대로 2~3년만 그대로 묵혀두면 이곳이 산소인지 쑥대밭인지 분간도 제대로 못할 거야."
일 년에 예닐곱 번씩 찾아도 무성하게 자라나는 잡풀

우리 가족들은 일 년에 예닐곱 번씩 부모님 산소를 찾는다. 설날과 식목일 때 한번, 음력 5월 중순 어머니 기일 때 벌초와 묘소 참배를 위해 각각 한 번, 그리고 벌초 때와 추석 때 찾는다. 게다가 간혹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기거나 슬픈 일이 생길 때도 찾는다. 또한 그때마다 웃자란 잡풀들과 수없이 잘라내도 자꾸만 뿌리를 치는 아카샤 나무 등을 남김없이 벤다.

근데도, 잡풀들은 마치 '날 잡아보라'는 식으로 무성하게 자라난다. 그중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게 부모님 묘소 위에 자라난 쑥이다. 쑥은 그냥 낫으로 베어버리면 또 자라나기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뽑아야 한다. 게다가 쑥을 잘못 뽑으면 봉분을 덮고 있는 진디까지 뽑혀나와, 봉분의 흙이 드러나기 때문에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

이는 아카샤나무도 마찬가지다. 아카샤나무는 뿌리째 뽑으려 해도 뿌리가 서로 엉겨 있어 좀처럼 뿌리째 뽑혀지지 않고 중간에서 툭 끊어진다. 그렇다고 그대로 두면 부모님 봉분에까지 뿌리를 뻗기 때문에 반드시 철저하게 뽑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아카샤 꽃이 피어나는 오월이 되면 주렁주렁 매달린 꽃도 이쁘고 그 향기가 좋기는 하지만 그깟것 하나 때문에 부모님 봉분까지 망치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날, 큰형과 둘째 형은 예초기를 들고 산소 주변의 잡풀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베냈다. 나와 동생, 조카는 낫을 들고 예초기 사용이 어려운 나무 주변과 봉분 주변의 풀을 벴다. 그리고 예초기로 벤 풀들을 갈쿠리로 끌어내면서 산소 곳곳에 자라고 있는 아카샤나무 등 잡목들을 뽑아냈다. 봉분과 봉분 주변에 자라란 쑥을 뽑아내는 것은 형수님 두 분의 몫이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뭇 생명이 곧 자신의 혼백이 아니겠는가

"산소에 벌초하는 것도 아마 우리 세대가 끝일 거야."
"하긴, 제 부모님 산소 벌초하는 것도 남들한테 맡기는 세상인데, 조금 더 지나면 누가 웃대 조상들의 산소에 벌초하러 오겠어. 이제 우리도 장묘문화를 한번쯤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되었어."
"납골묘도 그렇고, 앞으로는 수림장으로 가야 하지 않겠어?"
"요새 수림장도 말이 많더만. 나무 한 그루에 몇 천만원씩 가는 것도 있다는데?"

우리 가족 7명이 산소에 달라붙어 벌초를 다 끝낸 시각은 오후 3시30분. 가족들은 잔디가 곱게 깔린 축구장처럼 말끔해진 부모님 산소를 바라보며 모두 흐뭇해했다. 그리고 부모님 산소에 간단한 제례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올린 뒤 부모님 산소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음식을 나눠 먹으며 저마다 앞으로 새롭게 변할 장묘문화에 대해 한 마디씩 던졌다.

앞으로 우리가 죽으면 매장이 아니라 화장을 해야 한다는 것에는 우리 가족 모두가 뜻을 같이 하는 듯했다. 하지만 장례절차에는 서로 의견이 조금씩 엇갈리는 것 같았다. 가족납골묘를 해야 한다, 수목장을 해야 한다, 수목장을 하더라도 번거롭게 하지 말고 이 선산에 스스로 심은 나무나 스스로 특별히 아끼는 나무가 있으면 그 나무 아래 뼛가루를 묻고 간단한 표식만 남겨야 한다는 것 등.

사실, 나는 그저 살아생전 자신이 몹시 아끼고 좋아했던 나무나 바위, 강, 바다, 계곡 등에 자신의 뼛가루를 뿌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뜻도 없이 그렇게 뿌리기가 조금 아쉽다면 뼛가루를 뿌린 장소에 간단한 표식을 남기면 될 것이 아닌가. 어차피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사람이 아닌가.



- CNBNEWS 이종찬 기자 www.cnbnews.com



이은미 기억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