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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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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 도서관 완전 개가식 서가에는 많고 많은 책들이 꽂혀있다.
이 책들을 누가 다 썼을까.
흠……그 대단한 이들은 ‘누가’가 아니고 ‘누구들’일 것이다.
그 중에서 한 권의 책을 뽑아 든다.
최원현의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이란 책.
어쩌다 그 많은 책 중에 이 책을 집었는지는 모른다.
나에게도 그런 ‘좋은 날’이 하루쯤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까.
그 수필집에 실린 여러 편의 수필 중에「나잇값」이란,
뭔가를 생각하게 하는 수필 한편이 내 눈길을 끌었다.
작가의 글을 조금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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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 '나잇값'이란 말이 있다.
어찌 나이에 값을 매길 수 있으랴 만 이 나잇값이란 말은
참으로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것 같다.
벼가 익으면 이삭의 무게에 의해 수그러드는 것 같이
사람도 나이가 들면 우선 겸손함이 생기는 것 같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쉽게 흔들리는 익지 않은 벼 포기처럼
젊었을 때는 곧곧하게 목을 세우고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좌충우돌하며 쉽게 화를 내고, 쉽게 감동도 하지만
연륜이 깊어지면 참음과 다스림을 배우게 됨이리라.
그런가 하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노련해졌다는 얘기일 것 같다.
어둠 속에서도 정연하게 떡을 썰었다는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자신의 하는 일에 전문가가 되어 어떠한 경우에서건
원만히 처리 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될 수 있음이리라.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할 줄 아는 사람일 것 같다.
무릇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기 마련이지만
죽음은 가장 진실한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어긋나지 않는 자연의 질서요,
이 질서는 참으로 엄숙한 삶의 예식으로
그리고 가장 자연스런 자리 찾기로 우리를 찾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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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잇값」이란 수필은 작가가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듣고 새삼 자신의 서 있는 위치를
확인해 보며 점검도 해 보는 자성적 수필이다.
나이보다 젊게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나이 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젊게 보인다는 말은 아직도 젊은 감각을 유지 하고 있으며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는 세련미가 있다는……그런 말일까.
작가는 그것보다 ‘내가 혹시 나이 값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라는 방향으로 자신을 들여다 본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나는 고개 숙일 만큼 익었는가.
겸손이란 말에 내 자신이 얼마나 어울릴까.
고개 숙인다는 말을 작가는,
곧 다가올 죽음을 예비한다는 뜻으로 서술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며 자신이 떠나고 남은 자리에는
어떤 흔적이 남을 것인가를 숙제처럼 가슴에 안고 독자에게 질문한다.
당신에게는 어떤 삶의 향기가 나는가?
이 땅에 살다가 떠나면서 남기고 싶은 삶의 향기는 어떤 향기인가?
그렇게 묻고 있는 듯 하다.
나로 말하자면, 기실은 그런 향기는 고사하고
의심, 미움, 게으름, 반목, 욕심, 빈정거림, 무관심, 분노, 짜증, 교만……
이런 속물의 악취가 진동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 앞선다.
더구나 죽음에 대한 준비라니……그런 건 생각조차 않고 사는데.
내가 앞으로 살 날이 그 얼마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런 악취를 자꾸 치워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자면 마음을 곱고 곧게 써야 할 텐데,
그게 또 얼마나 어려운가.
들어가지 말아라……속으로 염원하던 동반자의 버디 퍼팅이
기어코 땡그랑~ 하며 들어가면 입으로는 “나이스 버디!” 하는 나.
머리 얹으러 간 여인네들이 퍼팅할 때처럼
들어가라……하고 아무런 사심 없이 응원할 순 없을까.
많지도 않은 내기 돈에 남의 퍼팅을 보는 눈이 그렇게 달라진다.
책을 읽는 중간에 그런 저런 생각이 끼어들어 산만해졌다.
그래서인지 입 속에까지 뭔가 개운찮은 것이 느껴졌다.
며칠 전부터 다니는 치과에 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대출해서 옆구리에 끼고는 치과의원으로 갔다.
첫날, 내 이를 긁어 내며 의사가 위생사와 대화하는 걸 들었다.
내 치아와는 전혀 상관 없는 대화였다.
줄넘기를 사러 갈 예정이다.
그게 얼마냐.
만 팔천 원이다.
그거 선수용이냐. 등등
둘째 날, 의사가 내게 한마디 했다.
“목욕하셨네요?”
눈을 감은 나는 내게 하는 말인 줄 몰랐다.
왜냐하면 난 그날 목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더니 의사가 위생사에게 말했다
“보청기를 달아 드려야겠다, 그지.”
슬쩍 눈을 뜬 나는 그 말도 못 들은 척 했다.
농담으로 하는 말일까, 아니면 진담일까.
“보청기 쓰실 연센 아니신 거 같은데요?”
웃으며 말하는 위생사의 치아가 희고 골라서 보기가 좋았다.
셋 째날, 그날은 월요일이었는데 저들끼리 또 이야길 한다.
“그 퍼팅 말이야. 타이거 우즈도 장담 못하는 거리였거든.”
일요일 날 의사가 한 라운드 한 모양이었다.
“그게 들어갔단 말이에요?”
“그렇다니까. 홀 컵을 반 바퀴 돌더니 땡그랑 하는 거야.”
내 눈 앞에서 치과 기구가 허공을 반 바퀴 돈다.
“땡그랑~소리도 나는 거에요?”
“그럼, 홀 컵 밑이 울리게 돼 있으니까.”
“나도 골프 배우고 접다.”
“그러게 내가 진작 하랬잖아.”
더러는 이렇게 골프를 시작 하나 보다.
시작은 쉽지만 골프의 길이란 참으로 만만치 않던데….
갓 백파를 하고 나면 아무데서나 걸핏하면 골프 이야길 하지.
넷째 날, 내가 질문을 했다.
“윗니 뿌리가 닳은 건 어떻게 치료하실 겁니까?”
의사는 “이 정도는 괜찮은데요.” 라고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난 시리단 말이여……아프기도 하고…돌팔아!!’
군대 시절, 나도 돌팔이라고 불렸었지.
DMZ내 GP에 파견 근무 나갔을 때 수색대 병사들은
내가 안 듣는 곳에서는 위생병인 나를 그렇게 불렀었다.
나에게 포경 수술을 받은 몇몇 병사들은 날 잊지 못할 것이다.
동부 전선 비무장지대의 수려한 가을 풍광이 떠오른다.
다섯째 날인 오늘, 여느 날과 달리 환자들이 많았다.
치료용 의자에 올라가 앉으라 해서 올라갔다.
늘 하듯이 익숙한 몸짓으로.
그런데 오늘따라 그 의자가 뒤로 많이 넘어가는 듯 했다.
마음 속으로 짐작하기를,
‘허름해 보이더니 드디어 고장이구나.’
이러다 종내 고개가 거꾸로 쳐 박히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비명 비슷한 소리를 질렀다.
“으……악 !!!!”
그렇게 소리 지르는 순간 탁 하고 의자가 멎었다.
순식간에 치과 의원 안은 웃음 바다가 되었고.
저쪽 얼굴 예쁜 간호사는 배를 잡고 웃느라 얼굴이 빨갛다.
배꼽 빠질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멋쩍어서 씨익 웃었다……-_-)
우헤헤헤헤…
이건 위생사의 웃음 소리이다.
그러다가 옆 눈으로 치과 의사를 보았다.
의사도 마스크를 한 귀에 걸고는 침까지 튀기며 웃고 있다.
기분이 나빠 속으로 욕을 좀 해주었다.
‘이론……우라질!!! 골프도 좋지만, 의자나 좀 바꿔라.’
갑자기 샐쭉한 내 표정 때문인지 의사가 사무적인 질문을 던진다.
“오늘이 치료 마지막 날이지요?”
신뢰감.
내가 그를 믿질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게 아닐까.
믿음이 때로는 커다란 힘이 되는 것인데……이 믿음 약한 자야.
내 주위의 영혼들에게 나는 얼마만큼 믿음을 주고 있는지……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스레 내 자신에게 부끄럽기만 하다.
이렇게……사람 값 하기도 힘든데,
나잇값까지 해야 한다니 산다는 게 갑자기 무겁게 느껴진다.
계절은 어느덧 겨울 초입을 넘어섰고 마음까지 스산하기만 하다.
날마다를 바랄 수 없겠지만 가끔이라도 ‘좋은 날’ 이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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