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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펀글
01-07 11:24
세계 경제의 두 축으로 전략적 공존 모색

미국은 달러 하락 막아야 하고 중국은 선진 금융시스템 필요해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통이다.
미국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를 역임한 폴슨 장관의 이력서에는 특이한 내용이 있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를 꼽으면서 그 이유로 자신이 이끈 변화를 제대로 다룰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끈 숨은 주역을 꼽자면 0순위는 아마 주 전 총리일 것이다.

주 전 총리는 상하이(上海) 시장을 거쳐 1991년부터 1998년까지 국무원 부총리를 지냈고, 이후 2003년 은퇴할 때까지 총리로서 중국의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했다. 폴슨 장관은 주 전 총리와 1990년대 초부터 친분을 나누었다.
골드만삭스 시절 폴슨 장관은 중국을 무려 70여차례나 드나들었다. 이 덕분인지는 몰라도 골드만삭스는 1994년 외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달러로 거래하는 상하이 B 주식시장의 주식거래 자격을 취득하기도 했다.


▲ 2008년 완공될 높이 492m,101층짜리 상하이 세계 금융센터 빌딩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폴슨 장관의 이력에는 또 칭화((淸華)대학 경제경영대학원 자문위원장이라는 타이틀도 있다. 주 전 총리는 물론 후진타오 국가주석도 이 대학 출신이다. 칭화대학은 현재 중국을 움직이는 권력 실세의 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콴시(關係ㆍ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은 지난해 7월 폴슨이 재무장관으로 발탁되자 환영하기도 했다.


▲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왼쪽)과 우이 중국 부총리가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국 역대 재무장관은 1960~1970년대는 유럽통이, 1970~1980년대에는 일본통이 각각 등용됐다. 21세기를 맞아 중국통인 폴슨이 재무장관으로 입각한 것은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폴슨 장관은 지난 12월 부시 행정부의 전체 각료 중 거의 절반을 이끌고 베이징을 방문, 중국과 제 1차 ‘경제 전략 대화’를 가졌다. 미국이 이처럼 대규모 중량급 대표단을 외국에 보낸 것은 전례가 없을 정도였다.

미국 대표단에는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라는 말을 듣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까지 포함됐다. 당시 미국과 중국은 위안화 절상, 무역 불균형, 지적재산권 등 양국 현안은 물론 지속 가능한 발전 등 세계 경제가 지향해야 할 방향도 논의했다. 미국이 중국과 경제전략회의를 한 것은 중국을 세계 경제의 한 축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양국이 앞으로 매년 두 차례씩 포괄적 경제현안을 논의하는 회의를 열기로 한 것도 ‘G2시대’가 본격 도래할 것이라는 증거이다.

미국이 중국의 지위를 인정한 것은 물론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중국은 이미 GDP(국내총생산) 기준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다. 현재 위안화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있는 만큼, 이를 조정한다면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가 될 것이다. 또 중국 상무부의 ‘대외무역 형세 보고’에 따르면, 2006년 말까지 중국의 무역규모는 전년보다 20% 증가해 1조7700만달러에 이르고, 새해에는 전년보다 15% 늘어 2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중국이 경제성장과 무역흑자 확대로 새해에는 독일을 추월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무역대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매력을 감안한 GDP는 8조8830억달러로, 미국의 12조3100억달러에 이어 세계 2위다. 중국의 세계 경제성장 기여도는 13%에 이른다. 더욱이 현재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중국은 향후 10여년 뒤면 구매력 기준으로 세계 최대 GDP 국가가 될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과학ㆍ투자부문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연구개발(R&D) 투자는 2006년 1360억달러로, 1300억달러인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로 등극했다. 중국이 더 이상 저부가가치산업에 치중하는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기술 강국으로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다국적기업들의 R&D 본부가 상하이ㆍ베이징 등 대도시로 몰려들고 있는데, 선진국보다 임금이 싸고 유능한 R&D 인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도 2006년 일본을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1조달러를 돌파하면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한 국가의 외환보유고가 1조달러를 넘은 것은 중국이 처음이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전 세계 외환보유고의 21.1%를 차지한다. 인도의 GDP나 아세안(ASEAN) 회원국 10개국의 GDP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또 다우존스 주식 시가 총액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이고, 세계 최대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나 씨티은행, 포드자동차 등을 사들일 수 있는 규모이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2008년 1조5000억달러에 이르고, 2010년에는 2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국이 보유한 외환의 70%는 미국 달러인데, 중국이 달러화 비중을 줄이고 유로화 비중을 높이는 식으로 외환을 다변화할 경우 달러화 가치는 폭락할 수도 있다. 중국은 또 외환보유고 중 약 30%를 미국 재무부가 발행한 국채(國債)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이 위안화의 추가 평가절상을 계속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버티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를 일부 매각할 경우 미국의 금리인상과 경기불황이라는 연쇄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일본의 미국 국채 투자액은 중국보다 훨씬 많지만 미국은 일본과 밀접한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중국은 현재 외환보유고 중 달러화의 비중을 낮추면서 유로화와 금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미국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국제 자본시장을 지배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중국의 위안화는 이미 미국 달러화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위안화를 대만과 홍콩, 마카오 등 중화권의 공통 통화로 유통시킨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앞으로 위안화를 ‘제4의 기축통화’로 만들려는 속셈이다. 중국 경제대국 전략의 핵심은 ‘대중화(大中華ㆍThe Greater China) 경제권’을 구축하는 것이다. 중국과 대만, 홍콩 등 중화권과 아세안, 중앙아시아 등을 묶는 개념이다.

미국 재무부는 2006년 말 발표한 반기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시 행정부의 서슬 퍼렇던 위안화 절상 요구가 양국의 경제전략회의 이후 슬그머니 사라진 것이다. 겉으로 앙숙처럼 보였던 양국 모두 경제적으로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 결과이다. 중국은 성장을 위해 미국의 투자와 소비가 필요하고, 미국은 중국의 시장과 공산품에서 서비스까지 각 분야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중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미국과 중국은 각각 취약점이 있다. 중국은 신뢰할 수 없는 금융시스템과 사회불안 증가 위험성, 성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각종 정치적 요소를 갖고 있다. 미국도 기록적인 경상수지 적자로 달러 가치가 추락할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양국은 상대방의 급소를 알면서 공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양국은 이 같은 공존은 전략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