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버리고 철저히 준비하고 떠나야" 옮김 04-12 10:33
- [이데일리 피용익기자] 동남아 은퇴이민 열풍이 불고 있다. 월 200만원만 있으면 휴양지에서 황제처럼 살 수 있다는 소문에서다. 설명회와 현지답사에는 인파가 구름처럼 몰리고, 여행업계는 은퇴이민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휴양지에 놀러온 것 같은 느긋한 생활, 이국의 자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골프 등은 은퇴자들의 관심을 동남아로 쏠리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현지 생활은 알려진 것과 달리 그다지 호화롭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특히 친구 하나 없는 곳에서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점은 대표적인 애로사항으로 꼽히고 있다. ◇동남아 은퇴이민 왜 가나? 지난 10일 한국은퇴자협회(KARP)가 주최한 동남아 은퇴이민 설명회에는 300여명의 은퇴자들이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두 손 가득 안내책자를 받아 든 참석자들은 3시간 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은퇴이민에 대한 정보를 꼼꼼히 챙겼다. 은퇴이민은 보다 여유로운 환경과 낮은 생활비를 찾아 제2의 인생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높은 물가와 세금, 낮은 이자 등에서 벗어나 같은 돈이면 좀 더 나은 생활을 하자는 취지다. 일본에서는 이미 90년대부터 `연금이민`이란 이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은퇴이민 대상지는 동남아 국가들이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월 200만원 정도면 중산층 이상의 생활수준에 골프 등 레저를 즐길 수 있다. 서울에 비해 물가와 인건비가 낮기 때문이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은 정부차원에서 은퇴이민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동남아 은퇴이민 설명회에 참석한 수잔 카스트렌스 주한필리핀대사는 "월 150달러만 있으면 필리핀에서 하인을 부리고 골프를 즐기며 황제처럼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온화한 기후도 동남아 생활의 장점으로 꼽힌다. 태국 대사관 관계자는 "한국은 노인들이 겨울에 생활하기엔 너무 춥다"며 "태국에서는 1년 내내 따뜻한 날씨 속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동남아가 은퇴이민 지역으로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와 가까운 거리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관광청 관계자는 "동남아는 비행기로 두세 시간이면 서울을 오갈 수 있다"며 "두 나라를 오가며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현지 한인들이 들려주는 은퇴이민의 현실 동남아 현지의 한인들은 이민을 준비하는 고령자들에게 "환상을 버리라"고 강조했다. 소일거리를 구하기도 힘들고, 날씨가 무더우며, 교통이 불편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 무엇보다도 월 200만원으로 황제처럼 살 수 있다는 소문은 부풀려져도 너무 부풀려졌다는 지적이다. 이영백 필리핀 한인회장은 "필리핀의 경우 아파트, 자동차, 골프회원권을 모두 장만했다는 전제 하에서 200만원으로 생활할 수 있지만, 이는 단지 편안한 생활이지 호화로운 삶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태국 한인회 관계자도 "잠깐 여행 온 경우라면 한 달 정도 황제같은 삶을 살 수 있겠지만, 이민 온 경우하면 생활비 200만원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날씨와 교통도 현지 생활의 불편한 점으로 꼽힌다. 동남아는 주로 우기와 건기 두 계절로 항상 더운 날씨여서 노인들이 생활하기에 결코 편안하지 않다는 것. 또한 한국과 달리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이동에 애로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광선 말레이시아 한인회장은 "한낮의 기온이 32~33도로 365일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반면 자동차 구입비는 한국에 3배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또 서울에 비해 물가가 싸다고 하지만, 현지인들이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거나, 사기를 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주명룡 한국은퇴자협회 회장은 "월 200만원을 쓸 수 있는 은퇴 부부라면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며 "동남아 은퇴이민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철저하게 조사한 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