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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것과 배운것은 반쪽 진실이거나 사실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아래기사는 그 점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기사라고 생각되어 옮겼습니다. [취재노트] 中 역사왜곡의 진의 중국인들이 그토록 숭배하는 마오쩌둥. 현대 중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오쩌둥의 개인사는 많은 부분에서 윤색되고 왜곡됐다. 마오쩌둥이 무한권력을 행사하던 1950년대 후반 중국에는 대기근이 몰아닥쳤다. 무려 3800만명이 굶어죽었다. 웬만한 규모의 한 나라 국민 전체가 굶어 죽은 셈이다. 얼마 전 유럽 연구자들이 공개한 옛 소련의 비밀문서에서는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고 한다. 당시 중국 지도부는 기근을 면할 만한 식량을 비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3800만명이 굶어 죽을 동안 마오쩌둥은 왜 식량창고를 열지 않았을까. 후세에 사가들은 마오쩌둥이 옛 소련과 맺은 기술-식량 상호 원조협정이 기근의 원인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마오쩌둥에게는 무기가 필요했고 옛 소련은 식량이 필요했다. 결국 자신의 야망을 이루는 데 필수적인 신식 무기를 얻기 위해 국민 3800만명을 굶어죽인 것이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가 왜곡된 역사적 사건들을 추적해 쓴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책은 마오쩌둥의 비밀 몇 가지를 예리하게 파헤친다. 마오쩌둥의 왜곡된 개인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마오쩌둥이 중국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른 계기가 된 대장정에도 이면이 있었다. 중국의 국공내전 초기 마오쩌둥의 홍군(紅軍)은 병력, 전술, 무기 등 모든 면에서 장제스의 군대에 대적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당시 홍군이 전멸 위기에 처한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마오쩌둥은 퇴각을 명령했고 그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홍군은 완벽하게 고립된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는 홍군의 퇴로를 열어준다. 기사회생한 홍군은 결국 시간이 흘러 중국 대륙의 주인이 된다. 왜 장제스는 홍군의 퇴로를 열어주었을까. 이유가 있었다. 당시 장제스의 아들인 장징궈는 모스크바에 인질로 붙잡혀 있었다. 같은 정치노선을 가진 홍군이 고립되자 옛 소련은 장제스에게 아들을 석방해주는 조건으로 홍군의 퇴로를 열어줄 것을 제안했고, 장제스가 이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결국 홍군의 승리는 마오쩌둥의 탁월한 지도력이나 전술운용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운이 좋았던 것이다. 당연히 중국 현대사에는 이 같은 내용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마오쩌둥은 참 운이 좋은 남자였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운의 밑바탕에는 상황논리라는 비겁한 자양분이 깔려 있다. 어쨌든 이 같은 근ㆍ현대사를 바탕으로 지금의 거대중국이 탄생했다. 중국인들은 때에 따라 변하는 상황논리에 능하다. 그들의 역사 자체가 고유의 정치철학이나 뚜렷한 일관성 아래 면면히 이어진 것이 아니라 상황이나 권력지형 변화에 따라 유난히 복잡하게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삼국지나 초한지에서 알 수 있듯 중국은 오랜 세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나라와 민족이 뒤엉켜 싸워온 나라다. 다수인 한족이 아닌 다른 민족이 중국의 중앙을 차지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처럼 복잡한 역사에서 진실은 개인이나 집단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같은 역사적 학습 때문에 중국에는 유난히 상황논리와 관계논리가 많다. 요즈음 한국을 흥분하게 하는 동북공정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 북방에 존재했던 정권들을 싸잡아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는 건 사실 90년대 이전까지는 중국 내에서 찾기 힘든 논리였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 학자들은 "수나라의 양재와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했다"고 기술했다. `침략`이라는 단어를 쓴 건 고구려를 독립국가로 인정했다는 방증이다. 그들이 왜 갑자기 90년대 들어 논리를 바꾸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상황 때문이다. 동북지역의 문화재를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시켜 관광객을 끌어들여 경제적 이득을 얻고, 조선족의 코리안 드림이 퍼지면서 동요하기 시작한 동북지역 소수민족들을 통제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중국의 상황논리는 이처럼 섬뜩하고 두렵다. 흥분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힘을 키우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권위와 능력을 상실한 정부도, 연일 정권에 저주 섞인 욕설을 퍼부어대는 언론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목청만 높이는 국민도 모두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오늘도 분명 언젠가는 역사의 하루가 되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허연 문화부 차장 praha@mk.co.kr] 토스카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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