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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매경이코노미 2007-01-26 13:11:01]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이 관리형 CEO였다면, 이건희 회장은 성격이 정반대인 자율형 CEO에 가깝다. 이 회장이 선대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신화’를 재창조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박용성 전 대한상의 회장은 “이 회장은 현장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큰 전략을 만들어 제시하고, 각 관계사 CEO들은 이 전략을 치밀하게 실행에 옮긴 후 성과에 따른 보상과 책임을 확실히 한다”고 평가한다. 이 회장의 인생 좌우명은 ‘경청(傾聽)’이다. 이병철 회장이 이 회장에게 직접 ‘경청’이라는 휘호를 써서 건네주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 회장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을 무척이나 즐긴다. 엘빈 토플러, 피터 드러커, 잭 웰치, 칼리 피오리나 등 세계유명 석학이나 CEO들을 초빙해 그들의 말을 직접 듣는 것은 물론,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누구든 초청 대상이다. 삼성신화의 주인공이 이건희라면, 이건희를 주인공으로 만든 조력자들은 누가 있을까. 이학수 삼성전략기획실 실장이나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처럼 경영 전면에 등장한 사람도 있고, 김준 삼성그룹 전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돕는 이도 있다. ■ 이학수 삼성전략기획실 실장 - 이 회장과 절대적 교감 ■이학수 삼성전략기획실 실장은 이건희 회장의 ‘분신’으로 통한다. 이 회장이 42년생, 이 실장이 46년생으로 이 회장이 네 살 위.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씨가 삼성전자 전무로 사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 실장을 ‘삼성 2인자’라고 부르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82년부터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한 이 실장은 87년, 이 회장이 취임하면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이 회장을 보좌해 왔다. 주로 자택에서 업무를 챙기는 이 회장과 가장 독대를 많이 하는 사람도 이 실장이다. 태평로 삼성 본관 28층 회장실 바로 옆자리가 이실장 집무실이다. 이 실장은 그냥 2인자가 아니라 ‘실세 2인자’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회장의 뜻까지도 꺾을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만큼 이 회장과 절대적인 교감 및 신뢰가 쌓여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을 도와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키웠고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는 삼성그룹의 구조조정을 도맡아 했다. 또 이 회장을 대신해 법원 재판대에 서기도 했다. 이 실장의 파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하나. 이 실장은 이 회장이 깊은 애착을 보였던 삼성차를 과감히 포기하게 했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삼성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이 회장이 ‘선택과 집중’이라는 화두를 던져 놓은 상황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긴 이가 이 실장이다. 그는 아무도 이 회장에게 삼성차를 포기해야 한다고 얘기하지 못할 때, 총대를 멨다. 만약 삼성차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오늘의 삼성신화는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대기업 간 ‘빅딜’을 추진했을 때도 삼성의 창구는 이 실장이었다. 다른 그룹들은 오너가 직접 협상에 임했지만 삼성은 이 실장이 대신했다. 이런 비상시국을 거치며 이 실장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는 평가다. 그 후 10년 동안 이 실장의 파워는 더 커졌다. 지금은 삼성 계열사 사장단 인사가 이 실장 손에서 좌우된다는 말이 사내외에서 공공연히 나오고 있을 정도다. 삼성그룹 고위 임원출신인 K씨는 “이 회장에게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사내에서는 이 실장밖에 없다. 이건희 신화가 100이라면, 이 실장이 적어도 30은 만들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 전자부문 총괄 지휘 ■삼성신화는 ‘삼성전자의 신화’다. 삼성전자가 삼성그룹 전체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넘는다. 상대적으로 ‘잘 못 나가는’ 계열사 직원들 사이에선 “똑같은 삼성에 다니는 게 아니다”라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CEO가 바로 윤종용 부회장이다. 삼성전자 경영에 관한 한 윤 부회장은 나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97년 삼성전자 총괄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이후 10년 동안 삼성전자의 방향타를 쥐고 있는 셈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이뤄낸 성과가 최근 10년 안에 두드러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윤 부회장의 ‘공적’은 더 커진다. IMF위기 당시 한 달에만 1700억원의 적자를 냈던 삼성전자를 5년도 안 돼 한 해에 10조원 가까운 이익을 내는 회사로 변화시킨 과정에서 윤 부회장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이를 계기로 윤 부회장은 비즈니스위크지가 선정한 ‘세계 최고 경영인 17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윤 부회장은 삼성그룹 권력 실세들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비서실 출신이 아니다. 삼성전자, 삼성전기 등 전자계열사에서만 근무해 온 경력이 그가 실무형 CEO로 꼽히는 이유다. 그러나 그에게는 삼성전자 경영에 관한 한 거의 전적인 힘이 실린다. 반대로 윤 부회장은최고의 실적으로 이 회장에게 보답한다. 윤 부회장이 특히 주목받은 건 삼성전자의 기술력을 몇 단계나 올려놓으면서 삼성전자가 글로벌 IT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있다. 윤 부회장은 85년부터 삼성전자 종합연구소장을 지내며 삼성전자의 R&D 투자를 주도했다. 결과적으로 이때 기술개발을 위해 투자했던 게 90년대 중반 반도체 호황을 누릴 수 있는 힘이 됐고, 반도체 부문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지원해 삼성전자의 지속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다. 박영주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삼성전자의 질적 도약을 이뤄낸 주인공이 바로 윤 부회장”이라고 평가했다. ■ 이기태·황창규 등 테크노 CEO - 준천재급 인재 정평 ■삼성 신화를 계속 좁혀가다 보면, 결국 도달하게 되는 게 반도체 신화와 애니콜 신화다. 반도체 신화의 주인공은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과 황창규 사장이다. 진대제 전 사장과 황 사장은 반도체 사업에 올인하고 있던 이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를 지시해 삼성과 인연을 맺게 됐고, 이들은 보란 듯이 최고의 반도체 회사를 만들어 냈다. 이 회장은 이들에 대해 직접 “준(準) 천재급 인재”라고 평가한 바 있다. 천재 한 사람이 10만명, 20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 회장은 진 전 사장과 황 사장을 예로 들며 준 천재로 평가했다. 아직 천재는 삼성에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고의 찬사였던 셈이다. 칭찬에 무척이나 인색한 이 회장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던 사람들인 만큼 이들은 삼성전자를 최고의 반도체 회사로 키워냈다. 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인공으로 꼽히는 황 사장은 89년 스탠퍼드대 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삼성전자에 합류했다. 당시 황 사장을 잡기 위한 다국적 기업들의 스카우트 전쟁이 치열했지만 ‘일본 전자업체를 꼭 꺾겠다’는 각오로 삼성전자를 택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실제 그는 삼성전자 반도체 개발팀에서 근무하며 94년, 256메가 D램 반도체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삼성전자가 반도체 기술 선도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첫 번째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진 전 사장이 정치권으로 발을 옮긴 이후 황 사장의 역할은 더욱 두드러졌다. 기술 개발 발전 속도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며 ‘황의 법칙’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 정창원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세계 어느 기업도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을 따라잡기 힘들다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 놓은 사람이 바로 황 사장”이라고 평가했다. 황 사장은 실제 이번 인사에서 반도체 총괄사장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며 ‘포스트 윤종용’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는 사내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삼성그룹 인사에서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기태 부회장은 애니콜 신화의 주인공이다. 애니콜은 특히 취약했던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가장 결정적인 공헌을 한 제품군. 이 회장이 “애니콜 같은 브랜드 10개, 20개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룹 경영진을 다그친 일화 역시 유명하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무선통신 기술 개발과 마케팅을 진두지휘하며 애니콜을 프리미엄 휴대전화의 대명사로 인식시켜 놓는 데 성공했다. 신상필벌에 누구보다 철저한 이 회장이 이 부회장을 승진시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번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기술총괄을 맡게 돼 명실상부한 삼성전자 CTO 자리를 굳힌 이 부회장 역시 ‘포스트 윤종용’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사업부서에서 물러난 만큼 ‘포스트 윤’ 경쟁에서 밀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기술총괄 부회장의 위상을 고려하면 지나친 억측이라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출신 벤처기업인 K사장은 “기술 개발과 창조경영을 강조해온 이 회장이 이 부회장에게 기술총괄을 맡겼다는 건, 그만큼 거는 기대가 크고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 금융 독주체제 기반 구축 ■삼성그룹의 두 축은 전자와 금융이다. 금융부문에서 삼성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으로 이어지는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들은 시중 대형 은행 못지않은 자산과 수익력을 자랑한다. 삼성금융그룹의 중심은 삼성생명이다. 삼성생명 자산은 2006년 9월 말 현재 무려 104조8000억원. 2005년 매출액만도 23조원에 달한다. 삼성전자에 가려 다소 빛을 못 받았을 뿐 국내 매출로만 보면 오히려 삼성전자보다도 많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은 삼성 금융의 핵, 삼성생명의 역사를 얘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주인공이다. 지금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아직도 이 선에서 이 회장에게 자주 경영 조언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부회장이 전자부문을 대표하는 CEO라면 이 회장은 현재 삼성 금융그룹의 골격을 만들어 놓은 금융부문 대표 CEO였던 셈이다. 이 회장은 65년 삼성그룹 공채 6기로 입사해 13년 만에 제일모직 대표이사로 초고속 승진하는 등 삼성그룹 내 파격 인사의 원조 격이다. 직업이 사장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계열사 경영을 두루 거쳤지만 역시 최고의 성과는 삼성생명에서 이뤄냈다. 이 회장은 삼성생명을 독보적인 생보사 1위로 키워내며 삼성그룹의 든든한 ‘자금줄’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특히 보험 경영에 손익과 효율을 중시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영업소 중심의 경영 문화를 만들어, 확고한 1위로 내달릴 수 있는 기반을 다져줬다는 평가다. 이 회장이 2002년 이후 후배 경영진을 위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도 삼성사회봉사단 조직을 맡겼을 정도로 이 회장의 신임이 두텁다는 후문이다. 삼성그룹에 정통한 한 재계 인사는 “삼성생명을 비롯한 금융부문이 제대로 받쳐주지 못했으면 오늘의 삼성전자도 없었다는 점에서, 삼성 금융부문을 성장시켜 온 이 회장의 역할은 여느 삼성전자 CEO 못지 않다”고 평가했다. 【 이건희 개혁의 숨은 주인공 후쿠다 시게오 & 이와구니 데쓴도 】이건희 회장을 얘기할 때 절대 빠뜨릴 수 없는 게 ‘개혁’이다. 93년 6월, 신경영을 주창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계기로 이 회장은 삼성그룹의 개혁을 거침없이 몰아붙였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는 말로 대표되는 이 회장의 개혁은 삼성의 오늘을 만든 원동력이 됐다. 이건희 개혁은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사람들은 분명 있다. 바로 일본인 후쿠다 시게오와 이와구니 데쓴도다. 89년 교세라 디자인실 경영전략팀에서 근무하다 삼성전자 디자인 고문으로 영입된 후쿠다씨는, 93년 삼성 개혁의 시발점이 된 ‘후쿠다 보고서’를 작성한 인물이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며 실감한 디자인부문의 문제점과 삼성전자 기술 제언, 상품개발 프로세스 제언 등을 포괄한 후쿠다 보고서는 이 회장이 몇 번이나 정독하며 삼성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이와구니 데쓴도는 도쿄대 법대 출신으로 미국 메릴린치사 수석 부사장까지 지낸 국제 금융계의 거물 출신이다. 그러나 정작 이 회장에게 영향을 미친 건 금융인으로서가 아니라 일본의 한 소도시인 이즈모시 시장으로 변신해서다. 이와구니씨는 이즈모시 시장으로 변신한 이후 ‘시골의 저서’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는데,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당시 그는 ‘혁명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행정 혁신을 이끌었다. 자신이 시장으로 있던 이즈모시는 일본 능률협회 선정 ‘베스트 9’에서 소니, 도요타 등 일본 굴지의 기업들을 제치고 1위를 기록하기도 했을 정도. 이 회장은 93년 3월,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이와구니씨와 면담했고, 이날의 대화는 삼성 개혁의 당위성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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