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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은 약사에게... 작전은 장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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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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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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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침공당시만 하여도 히틀러가 독일군부의 작전에 시시콜콜한 간섭까지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제 3제국의 군대 중 상대적으로 약세였던 해군 Kriegsmarine 의 경우는 히틀러조차 워낙 문외한이라 거의 간섭을 하지 않았고, 덕분에 레더나 되니츠같은 제독들이 나찌의 정치적 간섭을 피해서 프로이센이후 이어온 독일 해군의 전통을 지켜 나갈 수 있었습니다.

[ 해군 자체가 약하기도 하였지만 히틀러의 적극적 간섭은 덜 하였습니다 ]
공군 Luftwaffe 의 경우는 정치적으로 심복이 되었던 괴링을 통하여 장악 할 수가 있었으나 괴링의 천부적인 또라이 같은 작전능력으로 공군 내에서 사실상 왕따를 당하였고, 독일 공군 자체가 주로 육군의 공중포대 역할을 수행 하였으므로 영국해협전투 Battle of Britain 정도를 빼고는 히틀러가 세세한 작전까지 간섭할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 공군은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괴링은 군인보다는 정치인 이었습니다 ]
전통적으로 육군강국인 독일은 비록 제 1차대전 종전으로 帝政이 무너졌지만 귀족출신의 핵심 브레인들이 아직까지도 육군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나찌의 집권과정에서 구 귀족층은 자본가들과 함께 주요 지지기반이었던 관계로, 귀족출신들이 지휘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던 육군 Das Heer 에 대해서 집권 초기에는 히틀러조차도 적극적인 간섭은 자제 하였습니다.

[ 처음부터 히틀러가 육군의 작전에 적극 간섭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
하지만 하사관 출신으로 제 1차대전에 참전하여 부상까지 당하였던 히틀러는 내심 이러한 귀족출신 지휘관들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장군들도 사석에서는....미천한 하사관 출신주제에....라고 히틀러의 군부간섭을 폄하하고는 하였습니다.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킬 수는 있었지만 감히 작전에는 관여를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 제 1차대전 당시 하사관 히틀러 ( 우) ]
그런데 제 2차대전 초기 프랑스 전역에서 히틀러가 여러 장군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비주류였던 만슈타인의 작전 안을 손들어 주는 바람에 너무나 쉽게 승리를 이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1차대전 당시 지긋지긋했던 서부전선의 악몽을 일거에 날려 보낸 전광석화같은 승리였습니다.

[ 낫질작전을 승인하여, 대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
하지만 이후부터 너무 기고만장 하였다고 할 까요 ? 이 후 독일이 수행하였던 거의 모든 작전에서 여러 장군들과 의견 대립을 일으키며 사사건건 간섭하는 바람에 화를 자초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독소전부터 이런 간섭이 히스테리로 변하였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 기고만장이 도를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
이러한 히틀러의 지나친 간섭으로 화를 입은 작전 중 결정판이 발지전투 Battle of Bulge 였습니다. 독일의 패망을 6개월 정도 당겼다고 평가를 받았던 나찌의 마지막 몸부림 이었던 전투였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전쟁기간을 그나마 단축하게 해주어 여러 사람의 목숨을 살렸다고 역으로 해석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무의미한 작전을 펼쳐 독일의 패망을 앞당깁니다 ]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해당분야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이런 전문가들이 열심히 일 할 수 있도록 지나친 관섭을 하지 않는 것도 재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천재라도 모든 일을 다 잘 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도에 넘는 간섭을 한다면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을 것 입니다. 약은 약사에게...진료는 의사에게...작전은 장군에게...그런데 부엌일은....?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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