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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넨베르크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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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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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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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내용은 최고 군사전략가들 사이에서 "인류역사상 3 대 전략작전 중의 하나"로
인정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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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넨베르크의 전설

奉天驛의 이종격투기
1905년 만주의 奉天역 ( 지금의 심양 沈陽 ) 에서 벌어졌던 일입니다. 러일전쟁 ( 1904 ~ 1905 ) 에서 패전한 러시아군이 만주의 요충지들을 일본에게 내주고 본국으로 송환되는 기차에 오르려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코사크 기병사단을 이끌었던 敗將 S는 다른 사단의 敗將 L과 우연히 마주치게 됩니다.
[ 봉천역 ( 현재의 심양역 ) 에서 러시아의 두 패장이 마주칩니다 ]
순간 S는 " 이 Ten Bird ! 너 잘 만났다 ! " 하면서 L의 뺨을 후려칩니다. 그러자 한대 얻어맞은 L은 " 뭐야 ? 이 Dog Baby 가 미쳤나 ? " 하면서 S를 향하여 달려듭니다. 곧 두장군은 부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흙탕 속에서 구르면서 이종격투기를 하는 추태를 보입니다.

[ 두 장군은 곧바로 부하들 앞에서 이종격투기를 벌입니다 ]
S는 삼소노프 Alexander Samsonov 였고, L은 레넨캄프 Paul von Rennenkampf 였습니다. 그 들이 웬수가 된 이유는 Battle of Mukden 이라 불리는 러일전쟁의 최대 격전중의 하나인 奉天대회전 ( 1905년 2월 21일~3월 10일 ) 의 패전 때문이었습니다.
 
[ 삼소노프 ( 左 ) 와 레넨캄프 ]
당시 삼소노프는 코사크 기병사단을 지휘하여 부근 탄광을 지키고 있었고 레넨캄프의 부대는 후위에서 삼소노프부대를 엄호하기로 했는데, 막상 삼소노프군이 일본군에 포위당하자 무슨 이유에서인지 레넨캄프는 지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삼소노프의 부대는 큰 피해를 입게 되었고 이 때문에 분노한 삼소노프가 레넨캄프를 보자 체면도 불구하고 땅바닥에서 뒹굴게 되었던 것입니다.

[ 러시아군의 비참한 패배가 묘사된 봉천전투 기록화 ]
그런데 이런 장면을 러일전쟁 참관 차 그곳에 왔던 독일 무관 막스 호프만 Max Hoffman 대위가 보게 되었습니다. 삼소노프와 레넨캄프의 실황 이종 격투기와 이를 우연히 지켜보았던 젊은 무관 호프만의 존재는 이후 역사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역전에서 벌어진 노상결투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 독일의 무관 호프만 대위는 두 장군의 결투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
10년이 지난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하고 독일의 예상과는 달리 러시아가 독일에 대한 즉각적인 침공을 단행합니다. 비록 전쟁 전 이미 수립된 슐리펜계획에 의거 서부전선에서 프랑스를 제압하는 동안 동부전선은 현전선 유지나 전략적 후퇴까지 고려했던 독일이었지만, 막상 예상보다 빠른 러시아의 침공을 받게 되자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 제1차대전이 개시되자 독일의 예상과 달리 러시아의 즉각적인 공격이 시작 되었습니다 ]
특히 러시아가 초전에 동원한 병력은 약 70개 사단으로 구성된 2개 집단군의 大軍이었으며, 이를 막아야 할 동부전선의 독일군은 1개 야전군 ( 독일 第8軍 ) 의 예하 12개 사단 뿐이었습니다. 비록 러시아군이 허접군대로 명성이 자자하였지만 독일로써는 중과부적의 상태였습니다.

[ 예상과는 달리 러시아는 2개 집단군으로 즉각 전쟁을 개시하여
북부의 제1집단군이 동프로이센을 남부의 제2집단군이 갈리시아를 공략합니다 ]
2개의 집단군중 러시아의 주공은 독일의 심장부인 東프로이센지역을 공략할 질린스키 Yakov Zhilinski 가 지휘하는 제1집단군 이었으며 제1집단군은 북부의 第1軍와 남부의 第2軍의 2개 야전군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제1군의 지휘관이 레넨캄프였고 제2군의 지휘관이 삼소노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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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만의 직언
러시아군 최고 수뇌부가 레넨캄프와 삼소노프의 소문난 라이벌 의식을 일부러 이용하려 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들은 경쟁심과 시기심에 사로잡혀 서로간의 연락과 연결을 단절한 상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경쟁하듯 독일로 진격을 하였습니다.

[ 러시아의 초기진격은 성공적이었고, 연합군의 선전매체는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 합니다 ]
이 둘이 나누어 지휘하던 제1군과 제2군은 東프로이센 초입 중앙에 위치한 마수리안 Masurian 호수 양편에서 평행선을 그리며 행군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이들이 처음부터 전선을 단절 시키지 않고 작전 협조만 하였다면 압도적으로 우세한 병력으로 독일 제8군을 대 포위 할 수 있는 유리한 국면이었습니다.

[ 마우리안 호수의 남북에서 러시아 제1집단군은 진격하였으나
제1군과 제2군의 비협조로 독일 제8군에 대한 협공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
레넨캄프가 지휘하는 러시아 제1군은 8월 20일에 굼비넨 Gumbinnen 에서 서전을 승리로 장식하지만, 곧바로 프랑코 Hermann von Francois가 지휘하는 독일 제8군 예하 1군단에 의하여 스탈루포넨 Stalluponen 근처에서 격퇴를 당하고 진격을 멈추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전황을 남쪽에서 서서히 진군중인 삼소노프의 제2군에게 알리지 않습니다.

[ 레넨캄프는 요충지 굼비넨을 점령합니다 ]
그런데 이러한 러시아 지휘관사이의 앙숙관계와 협조관계가 이뤄지지 않음을 꾀 뚫고 있는 독일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10년전 봉천역의 대결투를 옆에서 지켜보았던 독일 제8군의 참모 막스 호프만 대령이었습니다. 호프만은 레넨캄프와 삼소노프가 어떤 일이 있어도 협조 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 하지만 독일 제8군 참모가 된 호프만은 승리의 해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
호프만은 무능한 프리트비츠 Maximilian von Prittwitz 대신 동부전선의 새로운 수호자로 임명되어 독일 제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힌덴부르크 Paul von Hindeburg 와 참모장 루덴돌프 Erich Ludendorff 를 설득하여 엄청난 작전을 제안합니다. 그것은 서부전선에서 차출된 6개 군단 규모의 증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기존 전력만을 가지고 러시아 제1군과 제2군 즉, 러시아 제1집단군 전체를 섬멸할 계획이었습니다.

[ 호프만은 신임 제8군 사령관 힌덴부르크 ( 左 ) 와 참모장 루덴돌프 ( 右 ) 를
설득하여 반격작전을 실행에 옮깁니다 ( 中 - 카이저 빌헬름 2세 ) ]
* 東프로이센은 통일 독일제국 ( 제2제국 ) 의 심장과 같은 곳으로 중앙정부의 많은 실력자들이 이곳 출신입니다. 때문에 러시아의 초기 진공 때 군부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서부전선의 일부 병력을 동부로 이동시키도록 압력을 가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슐리펜계획에 따라 진행하려 하였던 전체 전쟁전략의 차질을 불러와 결국 패전의 빌미가 됩니다.

[ 독일 제2제국 창건의 주역 프러시아 중에서 東프로이센은 제국의 심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대한 애착으로 인하여 슐리펜계획이 작전초기부터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
그 계획은 다음과 같이 요약 되었습니다. 러시아 제1집단군이 대군이기는 하지만 제1군과 제2군을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전투력이 월등한 독일 제8군이 능히 싸워서 이길 수 있다. 때문에 하나씩 나누어 차례로 각개격파를 하면 결국 러시아 제1집단군을 섬멸 할 수 있다. 단, 어떤 일이 있어도 러시아 제1군과 제2군이 협조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 장거리 원정에 지쳐있는 삼소노프의 제2군이 우선 공략 대상으로 선정됩니다 ]
비록 힌덴부르크와 루덴돌프는 반신반의 하였지만, 어쨌든 러시아의 진공을 멈추기 위해 차출되어 온 이상 호프만의 직언에 따라 작전을 실시하기로 합니다. 우선 굼비넨에서 진공이 멈춰 휴식을 취하며 부대 재편을 하고 있던 레넨캄프의 제1군보다 8월의 무더위에 음습한 늪지로 장거리 진군을 하여와 지쳐있던 삼소노프의 제2군을 먼저 유인하여 공략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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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의 종말
독일은 러시아 제2군을 탄넨베르크 Tannenberg 부근으로 유인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바르샤바의 북쪽에 위치한 삼림과 늪지가 많은 곳이었습니다. 마침 이곳에서 있을 수 있는 장차전에 대해 전쟁 전 많은 연구를 하였던 사람이 독일 사령관 힌덴부르크였습니다. 삼소노프가 지휘하는 러시아 제2군은 포위망안으로 서서히 밀려들어 옵니다.

[ 러시아 제2군이 탄넨베르크의 그물안으로 서서히 밀려 들어왔습니다 ]
독일 제8군 예하 제1기병사단이 굼비넨 일대에서 진격을 멈추고 있던 레넨캄프의 러시아 제1군을 묶어두는 중요한 임무를 맡는 사이 제1예비군단과 제3예비군단이 남하하여 제20군단과 함께 삼소노프가 지휘하는 러시아 제2군을 남쪽에서 포위하고, 제1군단과 제17군단이 이동하여 러시아 제2군을 북에서 감싸는 거대 포위망을 형성합니다.

[ 독일 제8군은 전사에 길이 빛날 기동을 선보이며 포위망을 완성합니다 ]
8월 28일 완성된 포위망 안으로 러시아 제2군이 진입하자 곧바로 무수한 야포가 불을 뿜어 대기 시작합니다. 당황한 러시아군은 탄넨베르크 습지의 안개 속에서 우왕좌왕 거리다 하염없이 쓰려져 갑니다. 짙은 안개와 호수 주변의 진흙탕에 가로막혀 러시아군은 진퇴양난의 상태였고, 결국 완전포위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 무수한 포화가 러시아 제2군의 머리위에 작렬하고 하염없이 쓰러져 갑니다 ]
어쩔 수 없이 삼소노프의 러시아 제2군은 굼비넨에 주둔중인 레넨캄프의 제1군에게 구원을 요청합니다. 사실 이 시점에서 제1군의 도움이 있었다면 더 이상 예비대가 없는 독일의 포위는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오히려 독일 제8군이 러시아 제1군과 제2군 사이에서 역 포위 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독일 제1기병사단 만으로는 18개 사단으로 구성된 러시아 제1군의 이동을 사실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 독일 제1기병사단이 러시아 제1군을 견제하고 있었지만
만일 제2군을 구하기 위해 이동한다면 막기는 곤란하였습니다 ]
그러나 호프만 대령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삼소노프의 제2군이 고립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제1군은, 아니 사령관 레넨캄프는 사적인 감정 때문에 지원을 하지 않습니다. 만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사실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잘못된 사적감정은 결국 스스로의 운명도 재촉하는 지름길이 되었습니다.

[ 호프만의 예상대로 러시아 제1군은 이동하지 않았습니다 ]
탄넨베르크 전투가 끝났을 때 독일군은 1만 명의 손실을 입었지만 러시아군 13만 명 사살과 9만 명을 포로로 잡는 놀라운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다시 말해 삼소노프의 제2군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만큼 괴멸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패장 삼소노프는 권총으로 자결하여 생을 마감합니다. ( 탄넨베르크 전투 )

[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러시아 제2군의 모습을 담은 유명한 사진입니다 ]
이제 다음 차례는 굼비넨에서 제2군의 괴멸을 모른척하고 방관하였던 레넨캄프의 제1군 이었습니다. 독일 제8군은 숨쉴 틈 없이 레넨캄프의 제1군을 마수리안 호수로 밀어붙여 다시 한번 대 포위를 완성합니다. 여기서도 러시아 제1군은 12만의 병력 손실과 6만의 포로, 500문의 대포를 잃는 등의 엄청난 손실을 입고 붕괴 됩니다. 이것으로 러시아 자랑이던 제1집단군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 제1차 마수리안전투 )

[ 러시아 제2군의 붕괴를 수수방관 하였던 제1군도 곧이어 마수리안에서 같은 운명에 빠져듭니다 ]
충분히 승리 할 수 있었음에도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아군의 도움을 외면하여 결국 전체의 몰락을 가져온 레넨캄프는 군의 명예를 더렵혔다는 이유로 군적을 박탈당하고 숙청 됩니다. 만일 레넨캄프가 삼소노프를 구원하였다면 러시아는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고 전쟁의 장기화를 막았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결국 삼소노프와 레넨캄프의 반목과 아집은 전쟁의 장기화와 이에 따른 러시아 제국의 붕괴 원인중 하나가 됩니다.

[ 지휘관간에 사적으로 너무 친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더군요 ]
삼소노프와 레넨캄프의 라이벌의식은 역사에 길이남는 대망신과 동반 몰락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우리역사를 보면 부대 지휘관간에 사적으로 너무 친해서 나라를 잘못된 길로 이끈 경우가 있었죠. 1979 년 12월 12일 친구의 도움 요청을 받고 전방 요지를 지키고 있던 부대를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불법적으로 서울로 이동시켜 신군부 독재시대의 개막을 성사시킨 경우가 있었습니다. 너무 친해도 탈인가 봅니다.

[ 탄넨베르크 대승 직후의 독일 제8군 사령관 힌덴부르크 ( 左 )와 참모장 루덴돌프
과연 이들의 뛰어난 지휘와 러시아의 두 지휘관의 무능으로 전투가 진행 된 것일까요 ? ]
지금까지 내용은 탄넨베르크전투와 관련하여 많이 알려진 내용입니다. 삼소노프와 레넨캄프의 무능, 이와 반대로 힌덴부르크를 위시한 독일군의 뛰어남 등으로 전투가 이루어진 것으로 대부분의 전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 양측 합쳐 팔십여 만의 군대가 충돌한 이 전투의 결과를 이렇게 알려진 몇몇 사람의 책임으로만 몰아 붙일 수 있는 것일까요 ? 여기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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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책임 ?
탄넨베르크전투와 연이어 있었던 마수리안전투는 2,200년 전 카르타고와 로마사이에 있었던 깐네전투 Battle of Cannae 의 완벽한 재현으로 불릴 만큼, 소수의 아군이 대군인 적의 내부 약점을 간파한 후 기동전으로 포위섬멸하여 격파한 전쟁사의 텍스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전투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탄넨베르크전투는 깐네전투의 재현으로 불릴만한 전쟁사의 교범이 되었습니다 ]
첫째, 러시아의 패전을 삼소노프와 레넨캄프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 것인가 ?
대부분 이 전투와 관련한 글을 보면 못난 두 장군들의 아귀다툼에 대해 예외 없이 언급하였습니다. august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지휘하였던 러시아 제1군과 제2군은 모두 질린스키가 지휘하던 러시아 최강 제1집단군 예하부대였습니다. 그러므로 야전군사이의 작전은 엄밀히 말하여 제1집단군 사령관 질린스키가 조정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 제1차대전 당시 러시아의 최고 전쟁지도부의 모습
이들도 무능하기는 마찬가지 였습니다 ]
레넨캄프는 東프로이센을 석권 할 수 있는 전략 거점인 굼비넨을 점령한 이상 놓치기는 싫었고 단지 삼소노프의 구원요청만으로 애써 점령한 주요거점을 포기하고 부대를 이동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야전군급 이동에 관한 지휘는 질린스키나 그 이상의 러시아 최고 전쟁 지휘부에서 지시하고, 만일 예하부대장이 말을 안들을 경우 문책을 해서라도 부대를 이동시켜야 했으나 이들도 수수방관만 하였습니다.

[ 개전 초기 전략거점 굼비넨을 점령하였던 러시아 제1군
이들은 어렵게 차지한 이곳을 포기하기 힘들었습니다 ]
러시아 최고 지도부가 수수방관한 이유는 당시 독일의 전력이 제8군만의 병력이었는지 아니면 후위에 더 많은 예비가 있었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부족한 정보력만으로 대군을 함부로 이동시키는 것은 힘든 일이었고, 더구나 포위된 러시아 제2군의 전력이 이들을 포위한 독일 제8군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즉, 단독으로 충분히 저항 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부대를 이동하는데 주저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러시아는 독일의 대응태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하였습니다 ]
그런데 러시아의 생각과는 달리 제2군이 초전에 밀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제1군이 전략거점 굼비넨을 포기하더라도 탄넨베르크에 고립된 제2군을 구원하는 것이 독일 제8군을 괴멸시키고 전체 전선을 승리로 이끌 필승해법이었지만 이런 전황을 러시아의 전쟁 지도부는 전투기간 내내 직시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반면 러시아는 급박한 전쟁 상황에서도 平文이나 독일이 이미 해독할 수 있는 구식 암호를 이용하여 통신을 하는 한심함을 보였고 이런 이유로 독일은 러시아와는 달리 러시아군의 동태를 눈금 보듯이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를 독일은 적절히 이용하여 작전을 펼치고 부대를 배치할 수 있었습니다.

[ 이에 반하여 독일은 러시아군의 동태를 훤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
거기에다가 러시아군의 자질에도 커다란 문제가 있었습니다. 러시아가 병력면에서 대군이기는 하였지만 훈련강도나 전투력에 문제가 많은 군대였습니다. 사전에 착실한 전쟁준비를 하였던 독일에 비한다면 러시아군은 밭을 갈다가 갑자기 총 한번 제대로 만져보지 못하고 전쟁터로 내 몰린 농민군 수준의 능력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력이 얼추 비슷한 독일 제8군에 러시아 제2군이 포위되자 저항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 더구나 러시아군은 대군이기는 하지만 전투력이 절대 부족하였습니다 ]
러일전쟁 패전의 경험이 있었는데도 절치부심하여 군을 정예화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동원 가능한 병력 수만 과신하여 러시아는 허장허세를 부렸던 것입니다. 만일 대외적으로 뻥을 치더라도 그들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여야 했는데, 3국협상이라는 명분에만 급급하여 준비도 되지 않은 군대를 서둘러 전쟁터로 몰아넣은 것은 러시아의 권력 핵심부였습니다.

[ 스탈린그라드의 패전을 파울루스에게만 물을 수 없는 것처럼
탄넨베르크전투의 결과를 레넨캄프와 삼소노프에게만 전가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스탈린그라드의 패전을 파울루스에게만 물을 수 없는 것처럼, 책임은 주인이 지는 것이지 짖을 때는 딴짓하고 있다가 막상 일터지고 나서 애꿎게 개만 탓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일이 터지니까 러시아의 지휘부는 삼소노프와 레넨캄프의 반목을 핑계대고 그동안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은 아닐지 모르겠고 또한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요 ? 우리 역사에 패전의 치욕을 책임지고 자결한 장군이 몇 명이나 됩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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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승리자는 ?
앞글에서 삼소노프와 레넨캄프의 사적인 문제가 아닌 러시아군의 전체적인 무능이라는 관점에서 탄넨베르크전투를 분석하였습니다. 그러면 승자였던 독일 측에게는 문제가 없었을 까요 ? 승리라는 결과를 얻었지만 독일군도 작전 중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의 주체는 다름 아닌 독일 제8군 사령관 힌덴부르크였습니다.

[ 전투 후 동부전선 총 사령관으로 영전한 힌덴부르크 ]
둘째, 힌덴부르크는 과연 용장이었나 ?
대부분 이 전투와 관련한 글을 보면 러시아의 못난 두 장군들과는 달리 독일의 승장 힌덴부르크에 대한 찬사는 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전투의 엄청난 후광은 그를 독일군 참모총장까지 오르게 만들었고 전후에는 독일의 정계에 진출시켜 대통령이 되어 생을 마치게 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승리의 후광으로 힌덴부르크는 전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국장으로 치루어진 힌덴부르크의 장례모습 ( 下 ) ]
물론 힌덴부르크가 최고 지휘관으로서 작전을 펼쳤고 전쟁 전 해당지역에서 있을 수 있는 장차전에 대한 연구를 하였었을 정도로 준비를 하였기 때문에 탄넨베르크의 영광이 있었겠지만, 솔직히 탄넨베르크의 승리는 전황을 올바르게 판단하였던 호프만을 비롯한 제8군의 유능한 참모들과 때로는 명령에 항명하였던 독일 제8군 예하부대 지휘관들의 망설임 없는 정확한 결단 때문에 이룬 성과였습니다.

[ 탄넨베르크전투 승전 10주년 기념식에 모인 제8군 지휘부 ]
무능하였던 프리트비츠를 대신하여 급파된 힌덴부르크가 제8군에 도착하기 전 호프만을 비롯한 참모진들과 예하 부대장들은 탄넨베르크전투에 대한 작전 계획을 이미 수립하여 놓았던 상태였습니다. 힌덴부르크는 참모들의 진언을 수용하여 단지 이미 수립된 계획을 행사하였을 뿐입니다. 오히려 힌덴부르크는 서부전선에서 이동중인 6개 군단의 재배치가 완료된 후 소극적인 방어 작전을 펼치려 하였습니다.

[ 참모진들과 예하 부대장들은 이미 작전에 대한 세부계획까지 세워놓고 있었습니다 ]
더구나 삼소노프의 제2군을 8월 25일 탄넨베르크에서 포위하여 공격하기 시작하였을 때, 속전속결로 제2군을 괴멸할 생각을 하지 않고 소심한 힌덴부르크는 러시아 제1군의 지원 가능성을 항상 염려하고 주저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나중에 잘못된 정보로 밝혀진 항공정찰보고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러시아 제1군이 남하한다고 오판하였습니다.

[ 힌덴부르크는 러시아 제1군의 이동 가능성에 대해 소심할 정도로 염려 하였습니다 ]
힌덴부르크는 이때 삼소노프의 북쪽을 포위하는 중이던 프랑코의 제1군단을 철수시켜 남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러시아 제1군을 견제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8군 참모진들은 레넨캄프와 삼소노프의 불화 등 여러 이유 때문에 러시아 제1군과 제2군이 협력관계를 유지하지 않을 것임을 역설하여 힌덴부르크의 제1군단 철수 명령을 제지시켜 버립니다.

[ 힌덴부르크는 몇번에 걸쳐 제1군단의 철수를 지시하였을 정도였습니다 ]
28일 포위망이 완성되어 러시아 제2군이 궤멸 직전에 놓인 상황에서 힌덴부르크는 또다시 러시아 제1군을 겁내 독일 제1군단을 북쪽으로 이동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지막 일격을 가하면 승리를 앞당길 것으로 확신한 제1군단장 프랑코가 힌덴부르크의 명령에 불복하고 제17군단과 합류하여 30일 러시아 제2군을 완벽히 격파하였습니다.
![]()
[ 계급장을 떼일 각오로 프랑코는 정확한 판단에 의거 소신 것 부대를 지휘하였습니다.
그런데 계급장 떼고 할말 다하겠다고 국민에게는 약속해 놓고
막상 결정적인 자리에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사람이 우리사회에 많습니다 ]
만일 힌덴부르크의 소심함 때문에 독일 제1군단이 북쪽으로 이동하였다면 오히려 굼비넨에서 세월을 죽 때리고 있었던 러시아 제1군의 이동을 촉발 시켰을 것이고 포위망이 완성되어가던 탄넨베르크의 러시아 제2군에게 탈출로를 열어주어 공략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 승전직후 제8군을 방문한 카이저 빌헬름2세 ]
사실 힌덴부르크 또한 전임자 프리트비츠처럼 지나치게 겁쟁이처럼 행동하였습니다. 참모들과 야전 지휘관들이 정확한 판단을 하여 수립된 작전에 따라 일격을 날리려 할 때 오히려 머뭇거리며 망설였던 것이 힌덴부르크였습니다. 만일 힌덴부르크가 똥고집이 있어 참모진의 설득에 굴하지 않고 프랑코의 항명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다면 독일군의 완벽한 승리는 없었을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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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은 인간이 만든다
흔히 제1차대전은 참호를 사이에 두고 장기간의 지리한 대치과정 중 총탄이 난무하고 포탄이 불을 토하는 구덩이로 인간들을 마구 몰아넣었던 지옥으로만 많이들 연상하고 있습니다. 제1차대전을 상징하는 솜므, 베르덩, 마른, 이프르 같은 제1차대전의 주요 전투가 대부분 이런 형태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 관련글 참조 )

[ 제1차대전의 대부분은 지리한 참호전으로 일관하였습니다 ]
이와 비교한다면 탄넨베르크전투는 제1차대전답지 않은 신속하고도 승자와 패자와 확실하게 결정된 보기 드문 전투였습니다. 전투기간도 짧았고 그 결과도 서부전선의 여타전투와 달리 확실하게 나왔습니다. 마치 제2차대전 당시 독일의 전격전과 같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깔끔한 (?) 전투였던 것입니다.

[ 그에 비해 탄넨베르크전투는 제1차대전 답지않은 (? ) 전투 였습니다 ]
하지만 탄넨베르크전투가 戰史에 기록된 수많은 기념비적 전투와 비교해서도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소수가 다수를 완벽하게 섬멸하였다는 점입니다. 통상적으로 대부분의 승리는 승자가 압도적으로 전력이 우세하였거나 아니면 작전이 뛰어나서 이긴 경우라도 전력은 비슷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 이 전투가 길이 기억되는 것은 소수가 다수를 압도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
이런 이유로 세계적으로도 소수가 다수를 압도한 이러한 대승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탄넨베르크에서 재현되었다는 깐네전투,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정도 ( 우리 장군님들 만쉐이 ! ~ ^^ ) 만 august 도 생각이 날 정도입니다. 흔히 이런 경우의 전투 결과는 기적 또는 전설이 되어 그 찬란한 명성을 후세에 전하고 있습니다.

[ 명량해전도 전설이 되어버린 위대한 전투였습니다 ]
그만큼 탄넨베르크 전투 결과는 전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물론 러시아 입장에서는 치욕스러운 전투였습니다. 15세기에 탄넨베르크에서 게르만 군대가 슬라브 군대에게 패배한 것을 깨끗이 설욕한 것을 기념하여, 호프만대령은 이 위대하였던 전투를 탄넨베르크전투라고 명명할 것을 건의합니다. ( 러시아에서는 졸다우전투라고 함 )

[ 15세기 독일 기사단의 패배를 깨끗이 설욕한 것을 기리기 위해 탄넨베르크전투라고 명명합니다 ]
흔히 전사에는 삼소노프와 레넨캄프의 이기적인 무능, 힌덴부르크의 영도력 등을 언급하지만 앞에서 몇 번에 걸쳐 살펴보았던 것처럼 이 전투가 전설로 남는 결과가 나오게 된 데에는 드러나지 않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행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결과에 의해 기적은 일어났고 결국 전설로 전해지게 됩니다.

[ 결국 기적이나 전설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것 뿐입니다 ]
하지만 인구에 회자되는 기적이나 전설은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특히 다수지만 무능한 집단과 소수여도 유능한 집단과의 충돌에서 생긴 소수의 승리는 기적이나 전설로 자리매김하는데, 이것은 철저히 준비된 자의 노력에 의한 것입니다. 하지만 대중은 결과만 보고 기적이니 전설이니 하고 부러워만 합니다.

[ 요행으로 기적만 바라신다면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
기적이나 전설은 결국 끓임 없는 고단한 준비를 하였던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영광입니다. 재수가 좋아서, 운이 좋아서 운운하며 남의 성공을 시샘하는 자들은 사실 기적이나 전설을 만들어 볼 준비조차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노력한다고 모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도 안 해보고 요행으로 기적만 바라는 사람이 많다면 생각을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 까요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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