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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이건희의 삼성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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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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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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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2007-01-26 13:11:01]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 87년 만 45세에 그룹 총수 자리에 앉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7년, 외아들인 이재용 전무(39)는 삼성전자 CCO(최고고객전문가)로 경영수업 마지막 코스를 밟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창조한 삼성 신화를 두고 일부에선 무노조와 황제경영의 산물이라며 평가절하하기도 하지만, 글로벌 기업인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칠 만큼 급성장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삼성 신화는 곧바로 한국 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 수출액은 한국 수출의 15.4%를 차지할 만큼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앞으로의 삼성 20년이 어떻게 진척되느냐에 따라 국민소득 3만달러 진입 여부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재용 전무는 향후 삼성 20년에서 과연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지 집중 조명했다.
■ 이건희 회장 20년 어제와 오늘 ■정상을 차지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이건희 회장 취임 당시 삼성그룹은 고 이병철 회장이 50년 가까이 경영을 해오면서 이미 국내 최고 기업의 반열에 들어서 있었다. 이 회장으로선 이런 선친의 업적에 적잖은 부담을 느꼈을 것. 게다가 만 45세 젊은 나이에 그룹 전체를 통솔하기엔 너무 경륜이 짧다는 지적도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며 삼성이라는 그룹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런 성공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 회장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미래를 생각하는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10~20년 뒤에도 먹고 살 수 있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 “잘나간다고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등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이 회장이 내세웠던 경영전략을 토대로 삼성그룹 회장 취임 20년의 어제와 오늘을 되돌아본다. ■ 취임 초기부터 신경영에 이르기까지 ■지난 87년 12월 1일 호암아트홀. 당시 이건희 부회장은 삼성그룹 사장단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회장 취임식을 치렀다. 거대 기업 삼성의 경영권 행사를 위한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 회장은 취임 후 국내 최고라는 자부심에 도취돼 있던 삼성 직원들에게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제2의 창업’을 선포하고 신규사업 진출과 사업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신규사업으로는 88년 삼성BP화학과 삼성종합화학을 설립해 고분자화학 분야로 진출을 꾀했다. 또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따로 떨어져 있던 전자·반도체·통신을 ‘삼성전자’ 하나로 묶었다. 이것이 향후 삼성그룹을 이끄는 성장동력이 됐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취임 후 5년간 그룹 현황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던 이 회장은 93년 프랑크푸르트 신년사에서 “자식과 마누라 빼고는 모두 바꿔라”라는 ‘신경영’ 전략을 화두로 꺼냈다. 기존의 양적 성장에 치우치지 않고 고객 만족을 위해 조직 풍토와 구조를 모두 변화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회장은 먼저 사각형 3개가 맞닿아 있는 형태의 회사 CI(Corporate Identity)를 지금의 회사 CI인 비스듬한 원형으로 교체했다. 질적 성장을 위해 생산 공정에 문제가 생기면 라인을 세워 불량 요인을 파악해서 고친 다음 생산을 시작하는 ‘라인 스톱제’도 도입했다.‘7·4제’로 일컬어지는 7시 출근, 4시 퇴근이라는 조기 출퇴근 제도를 통해 당시 다른 기업의 퇴근시간보다 2시간이나 앞당겼다. 이로 인해 삼성 직원들은 영어학원이나 삼성테크노MBA 과정을 듣는 등 자기개발을 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기아, 효성, 포항제철 등 다른 기업들도 삼성의 조기 출퇴근 제도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과감한 조치들로 인해 90년대 초반 KH신드롬(이건희 신드롬)이 나올 정도로 이 회장의 ‘신경영’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개혁과 변화 통해 삼성문화 바꿔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이건희 회장의 초기 10년간의 성과를 평가해 보자. 우선 이 회장은 삼성조직 내에 개혁과 변화, 즉 현실에 안주하는 자만심 대신 미래지향적인 마인드를 임직원들에게 심어줬다. 그 효과는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삼성물산이 국내 첫 100억달러 수출탑을 받았고, 삼성전자는 93년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드디어 세계 1위에 등극했다. 이후 삼성전자가 만들어내는 반도체는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삼성이 만들면 표준이 된다’는 말도 이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통계에서도 이 회장 업적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96년은 87년에 비해 총매출이나 고용, 세전 이익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증가세를 기록했다. 우선 총매출부터 살펴보면 96년 삼성은 총 76조200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 87년 13조5000억원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세전이익도 87년 1900억원에서 96년 2700억원으로 늘었다. 종업원 수는 87년 16만명에서 96년 26만명으로 10만명 이상 증가해 고용창출에도 큰 기여를 했다.
■ IMF 위기 이후 신성장산업에 주력 ■97년 겨울,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대우, 한보 등 당시 굴지의 대기업들이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삼성도 예외일 순 없었다. 이 회장은 신라호텔에서 사장단 회의를 통해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조직의 30%를 축소하고 임원 급여를 10%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불필요한 사업들을 과감히 정리했다. 우선 삼성중공업의 건설기계부문을 볼보에 매각했다. 이 회장이 큰 애착을 가졌던 삼성자동차도 프랑스 르노자동차에 팔았다. 조직 축소 계획에 따라 종업원 수도 11만명으로 확 줄였고 계열사도 59개에서 45개로 정리했다.
대신 삼성생명, 호텔신라, 삼성전자 등 미래 성장동력인 금융, 서비스, 전자부문에 역량을 집중했다.
이후 삼성은 세계 초일류 기업을 지향하며 본격적인 해외진출에 나섰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삼성의 CI가 걸린 간판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삼성은 90년대 후반부터 글로벌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삼성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는 현재 48개국에 총 90개 거점을 갖추고 있으며 8개의 해외 지역별 총괄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화재와 삼성생명도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 진출했으며 호텔신라는 최근 국내 독자 브랜드 최초로 중국에 체인호텔을 열었다.
외신들도 삼성의 놀라운 성장에 경이로움을 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삼성전자를 ‘글로벌 챔피언’이라고 비유했고, 이웃 일본도 연일 삼성의 성공요인을 집중 조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 ■2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이 회장은 선친인 이병철 회장의 업적을 뛰어넘었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삼성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냈다. 87년 취임 초기 총매출액은 13조5000억원이었지만 지금은 140조원을 넘어섰다.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88년 1조원에서 현재140조원으로 무려 140배나 상승했다.
그중에서도 삼성전자의 발전은 특히 눈부시다. 이 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반도체 산업에 과감한 투자를 계속했다. 그 결과 92년 62메가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세계 D램 시장 1위로 우뚝 올라섰다. 이듬해엔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 1위에 등극했고 지금까지정상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이뿐 아니다. 98년엔 TFT-LCD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2002년엔 휴대전화 브랜드인 ‘애니콜’의 성공으로 노키아, 모토로라에 이은 세계 3위 휴대전화 업체로 부상했다. 삼성전자는 이제 연간 매출액이 60조원에 육박하는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여기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다시 삼성 임직원들에게 새로운 경영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신년사에서 “영원한 1등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창조적 발상과 혁신으로 도전한다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회장은 여전히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변화와 혁신을 삼성 임직원들에게 불어넣고 있다.
【 이건희 회장의 과오 | 삼성차 부채, 경영권 편법증여 등 】이건희 회장 취임 후 20년 동안 삼성그룹은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게 마련. 이 회장 취임 후 삼성그룹이 걸어온 길은 평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이 회장은 90년대 들어 의욕적으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했지만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몇몇 계열사를 정리했다.
그중 삼성자동차 부채 문제는 아직도 명확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 지난 99년 6월 삼성은 삼성자동차의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이 회장은 당시 잘못된 선택의 대가로 2조8000억원 상당에 이르는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주당 70만원으로 계산)를 채권단에 맡겼다.
이는 삼성생명이 상장돼야 해결이 가능한 문제다. 생보사 상장안은 상장자문위에서 최종안이 확정,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생보사 상장이 이뤄질 전망이다. 그렇지만 만약 공모가액이 당초 약속한 70만원을 밑돌면 차액을 채권단에 물어줘야 한다. 현재 연체 이자를 감안하면 총부채만 해도 5조원에 이른다. 그동안 부채문제와 관련, 소송제기 방침을 밝혔던 채권단은 올해 1월 25일 첫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삼성그룹 후계구도와 관련,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의혹 사건은 삼성그룹이 숨기고 싶은 과거다. 이는 지난 96년 11월 에버랜드이사회가 최소 주당 8만5000원인 에버랜드 CB 125만4777주를 주당 7700원에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남매 4명에게 배정한 것을 말한다. 이 전무는 95년 에스원 주식을 처분한 자금으로 CB를 배정받아 주식으로 전환, 에버랜드 최대 주주(25.1%)가 됐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의 핵심 고리다. 에버랜드를 장악하면 사실상 삼성그룹을 지배하게 된다.
이듬해 법학 교수단은 이에 대해 회사에 970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고발장이 접수된 지 3년 만인 2003년 12월 1일 공소시효 만료 하루를 앞두고 CB 발행을 담당했던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현 삼성석유화학 사장), 박노빈 전 상무(현 에버랜드 사장)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이어 2005년 10월 초 검찰은 허 사장과 박 사장에게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었다. 현재 이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1월 18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3월 8일로 연기됐다.
지난 2005년 중순에는 옛 안기부의 X파일 사건이 세상을 흔들었다. 이는 안기부가 지난 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대선자금 지원을 위해 이학수 삼성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나눈 대화를 도청한 것이다. 도청을 통해 삼성의 정관계 로비 혐의가 포착됐다. 이 일은 일파만파로 커져 반삼성 여론을 불러 일으켰고 이듬해 초 이건희 회장은 일가족을 포함, 8000억원에 이르는 사재를 사회공헌기금으로 출연했다.
[특별취재팀 : 이제경 차장(팀장) / 김병수 기자 / 정광재 기자 / 이용현 기자 / 김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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