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코스모스펀드 01-04 15:11
이름: 클럽먼데이 2005/10/27(목) 가을엔     가을걷이를 모두 마치면 몸과 마음이 온전한 휴식을 원한다. 헌데 올해는 처삼촌 묘 벌초하듯이 ‘슬슬’ 일을 했더니 기력이 남아돈다. 으라차차!!! 남아도는 기력을 어찌 탕진(?)해야하나 꿍꿍이를 세우는 중, 뜻밖에도 작은 아이의 현장학습에 동행할 기회를 얻었다. 그것도 백제의 후손이기에 본능적으로 흠모의 마음이 솟던 백제의 도읍지 부여를 돌아보는 여행이라니 누구 말대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머니들은 어머니들끼리 각각 차를 타고 맨 처음 방문지인 부여박물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우선 아이부터 찾았더니 이 녀석 엄마를 본체만체한다. 마치 왜 오셨느냐는 듯한 눈빛이 뜨악하기만 하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듯 엄마와 끌어안으며 호들갑떠는 다른 아이들을 보니 서운하기도 하고 은근히 괘씸 하기도하다. 게다가 백제의 혼이 담겨있는 박물관은 의외로 실망스럽다. 다른 박물관에서 본 듯한 고만고만한 유물들이 특색 없이 진열되어 있어서 제대로 관람하는 아이조차 거의 없다.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 아이가 진지하게 전시물을 빼놓지 않고 돌아보기에 기특한 마음이 들어 아이의 어깨를 ‘툭’ 쳤다. 어두운 조명아래서 마치 민속학자라도 된 듯이 꼼꼼히 유물을 살피는 아이의 열기 덕분일까? 아니면 아이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누그러져서일까? 평범하니 시들하던 유물들이 갑자기 달리 보이고 백제인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듯도 하다. 이런 내 마음과 바로 옆에서 내쉬는 아이의 깊은 숨소리 그리고 토기 속에서 들려오는 백제인의 호흡소리와 얼키던 그 순간, 천삼백여 년 전의 흔적만을 담고 있던 박물관은 아이와 천년의 세월을 함께 걸어 온 듯한 찰나의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였을까? 그 긴 여행의 동반자인 아들은 아까의 뜨악한 태도와 견주어서 전혀 반대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박물관에서 길을 잃을까 걱정하며 호위를 하더니 이후 차를 타고 내리는 곳곳마다에서 아이는 마치 보호자처럼 챙기고 살피면서 내가 차에 오른 것을 확인한 후 제 차에 오르는 것이 아닌가.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의 무덤에 도착했을 땐 을씨년스런 날씨만큼이나 스산한, 하루해도 저물녘이었다. 한 왕국의 끝을 하루해가 끝날 무렵 둘러보니 마음이 몹시 착잡하다. 왕국을 무너뜨린 제왕의 한이 천년도 훨씬 더 흐른 지금 저 커다란 무덤 속에 묻혀 맴돌고 있으려나. 아니면 오늘 이름 없는 한 나그네의 시름 속에서 되 살아 나는 것만으로 그 왕국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잃어버린 왕국의 설움과 해 저문 뒤의 쌀쌀한 기온 탓에 온몸을 두 팔로 싸안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어디선가 튀어나온 아이는 다시 호위하여 내가 탈 차에 나를 태운다. 그리고는 뜨거운 자판기 커피 한 잔을 권한다. 나는 또 다시 너무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아이를 쳐다보며 ‘환희’에 차서 모든 상념을 저 땅거미 속으로 날려보낸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여행의 처음과 끝을 돌아본다. 설렘과 분노, 그리고 이해와 배려가 응축된 하루다. 오늘 하루가 담고 있는 무수한 삶의 조각도 귀중하지만 내가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기는 ‘배려’를 아이에게서 발견한 것이 더욱 가슴 벅차다. 온몸 가득히 보석을 안고 있는 기분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표현 할 수없는 묘한 감정이 일렁인다. 내가 아이를 보살피던 시간이 어느덧 아이가 나를 보살피는 시간으로 전환되어가는 ‘시간의 법칙’이 어느 시인의 말을 빌려 말한다면 ‘찬란한 기쁨 속의 슬픔’을 준다 천년의 세월에 비하면 나의 역사는 한낱 순간일 뿐인데 오늘 그런 사실을 일깨움 받다니 이 또한 시간의 배려인가? 겸손하게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