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미소를 간직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은혜롭고 어진사람으로 살으렴“
                 

아들 둘과 함께 산등성이의 단풍이 스러지고
응달에서는 파란 버섯이 솟아나는 가까운 산에 올랐습니다.
그 곳에 오르다 보니 부모와 어린 학생들의 야외수업이 있었는지
풍선이 매달린 야외 학습장에, 여기저기에 사연들이 적힌
울긋불긋한 쪽지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사랑스런 아들아! 아빠다.
건강한 너의 모습을 보면 아빠는 가슴 뿌듯하다.
아빠 부탁은 한 가지다.
제발 떼 좀 쓰지 말아라.
민혁 아빠!“


애들의 글씨는 명함 두 장만한 메모지에 적힌
깨알 같은 부모들의 글과는 달리, 8절 도화지 크기의 종이에
큼직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많이 놀아달라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하나의 글이
눈에 들어옵니다.

“ 아빠, 술 많이 먹지마세요.
나랑 동생 괴롭히지 말고
놀아주고 돈 만이 벌고
많이 놀아주세요.
해영이 아빠 최고!"



“아빠 힘내세요.
아빠 힘네세요“


글을 읽다 보니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좀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일곱 살짜리와 네 살짜리 아들 둘을 데리고
야외학습장을 지나 산을 더 올라가면서 계속 말을 하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참나무가 많은 등산로에서 큰 상수리 하나를 주웠습니다.
아들은 둘인데 상수리는 하나이니 당연히 숲속이 소란해집니다.
“와, 왕도토리네, 이건 내꺼!”
큰 녀석이 냉큼 채갑니다.
둘째는 땅에 드러누울 태세입니다.
“이겸에게는 왕 도토리 보다 큰 황제 상수리를 주워 주어야지.”
“대따 대따 큰 도토리를 주워주세요”
큰 애는 걱정이 되는지,
“아빠, 제 꺼와 같은 걸로 주워주세요. 알았죠?”
“.........”

저는 그 것으로 도토리 분쟁은 끝이 날 줄 알았습니다.

큰애는 저번에 왔을 때 많은 도토리를 주운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금의 도토리가 걱정이 됩니다.
더 큰 도토리를 찾게 될 것 같은데 그 왕 도토리는
하나도 가지지 못한 동생 차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이거 가져”
큰애가 도토리를 동생에게 줍니다.
둘째는 받지 않으려고 피하면서
“아냐 그 건 형 꺼야, 내 꺼는 왕도토리야.”
아직 줍지도 않은, 형 것보다 더 큰 왕도토리를
반드시 가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둘째입니다.
“아냐, 이 것은 이겸이 것,
그 왕도토리는 내 것.“
“아냐, 이 건 형꺼야”
“아냐 이겸이거야”
“아냐, 아냐.”

삼형제 바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반쯤 내려 올 때까지
아직 줍지도 않은 왕도토리를 서로 차지하려는 속셈에
이미 수중에 들어 있는 도토리를 서로 양보하는 것을 보니 재미있습니다.

자신에게 필요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남이 가진 것을 소유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이 왜 쉽게 불행해지는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갖기 위하여 이미 우리 손에 들어 있는
행복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마는 어른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소리 나지 않게 웃었습니다.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데 왕도토리를 찾지 못하자,
“아빠, 왕도토리는 다 어디로 갔어요?”
“다람쥐가 다 물어 갔나보다. 도토리, 밤을 저장해 놓아야
겨울에 먹고 살 수 있거든.”
“다람쥐도 겨울에 추워요?”
“그럼 춥지“
“ 아빠, 우리 식량이 다람쥐보다 더 많아, 그쵸?
그런데 새들은 보이는데 다람쥐들은 왜 안보여요?
다 어디 갔어요?“
“글쎄, 어디로 갔겠지”
“잠자러 갔어요?“
“다람쥐들도 불쌍하단다.
더 큰 짐승이나 매한테 잡혀 먹히니까
도망다니면서 불안하게 생활한단다.“
“나 한테 오면 내가 키워줄텐데.”
“다람쥐에게 네가 얼마나 무섭겠냐.
가방을 허리에 차고 나뭇가지를 휘두르면서
동생하고 늘 싸움을 하면서 탱크 이야기만 하는데...“


얼른 큰 아들에 대한 제 희망사항을 다람쥐 이야기 뒤에 슬쩍 끼워넣습니다.
그러면서  큰애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자신도 느끼는게 있는지 멋적은 웃음을 짓습니다.
“ 난 안 무서운 어린이인데...”


애들과  대화하면서 산행을 하다 보니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대화를 성장기간 내내 중단 없이 계속 이어간다면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통로가 되어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마음 속 깊은 물을 길어내는" 방법을 알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