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지사와 단둘이 걷는 사진 위해 접근 제한
역사에 남은 수많은 사진은 연출 없이 나온 것

박근혜 후보님, 안녕하세요. 한겨레 김외현 기자라고 합니다. 어디 가실 때마다 따라다니는 기자들이 하도 많으니, 기억이나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어제(10일) 경기도청에서 일정을 마치고 차량에 탑승하시기 전에 두어 마디 질문을 드렸던 기자라고 하면 혹여 아실지요. 그때 질문하나는 답변을 주셨습니다. 두번째 질문을 드리던 중 경호하는 분이 후보께 귀엣말로 “기자가 둘밖에 없습니다”고 하자, 후보께선 제 질문을 듣다 말고 “아, 그래요. 나중에 또 엄청난 비난을 듣습니다”라며 자리를 뜨셨죠. 기자가 많지 않은 곳에서 섣불리 말을 꺼냈다간 그곳에 기자를 보내지 않은 언론사들이 난감해 한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후보님 말씀을 듣고 있던 기자가 저를 포함해 6명이었는데, 솔직히 모두 기분이 좀 그랬습니다. “국민이 2명밖에 없어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얘기는 결코 하지 않으실 분인데, 기자가 둘이면 어떻고 여섯이면 어떤가 싶었죠.

기자가 6명밖에 없었던 건 사실 나머지 기자들이 다음 행사장으로 이동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변인실에선 “오늘은 질문 없이 진행하려 했는데, 굳이 질문을 하시려는 분들이 남아서 상도의를 어겼다”고 하더군요. 기자에겐 질문하고 기사 쓰는 게 직업이고 도덕인데, ‘상도의’를 앞세워 앞으로 저와 무슨 거래를 하려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어제 후보께선 유난히 기자들을 멀리하셨습니다. 당과 캠프에선 “기자들은 따라붙지 말기 바란다”라고 신신당부를 했죠. ‘좋은 그림’을 찍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배경에서 김문수 지사와 멋지게 단둘이 걸어오는 사진 말이죠. 지난 경선 때 앙숙처럼 으르렁대던 두 분이었는데, 이젠 마치 화해를 한 것처럼 사이좋게 거니는 사진이었다면 그럴듯했을 겁니다. ‘대통합’이 이런 거구나 싶기도 했겠죠.

하지만 기자들은 얼마나 짓궂습니까. 김 지사와 후보님은 보도 위에서 나란히 걷고, 기자들은 한참 떨어져 차도 위에 주욱 늘어서서 두 분을 따라 걷고 있는 사진 보셨는지요. (관련사진보기:박근혜-김문수 대화)

‘보도 위로 올라오지 말라’는 경호팀의 요구 탓에 생겨난 장면인데, 한 기자가 찍어 보도를 했더군요. 사정을 알고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사진입니다.

굳이 그렇게 의도한 ‘포토제닉’을 꼭 연출하셔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후보께서 휴대전화에 둘러싸인 사진만 자꾸 언론에 등장하는 게 보기 좋지 않다는 캠프 내부 평가도 있던 모양이더군요.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후보님과 말을 나눌 기회가 워낙 적어 기자들이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다만 요즘 기자들이 스마트폰으로 녹음기를 대체하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스마트폰 업계와 후보님 사이 밀약설을 제기하려는 건 아닙니다.)

기자들을 치운다고 얼마나 좋은 사진이 나올까요? 아니, 사진만 나오면 되는 건가요? 얼마 전 용인의 드라마 촬영장에 갔을 때, 한 어린이가 후보께 쫓아와 손을 내밀자 “그래, 손잡고 가자”며 후보께서 그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걸으셨습니다. 따뜻한 웃음도 자아낼 만했던 장면이었습니다만, 갑자기 수행하던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치더군요. “야, 너는 출세한 거야! 영광인 줄 알아!” 그때, 감동이 쏙 들어가버린 건, 후보님 바로 뒤에 서있었던 저뿐이었을까요.

며칠 전 한 고위 당직자와 몇몇 기자들이 ‘살가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어린아이가 머리를 만질 수 있게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허리를 숙여준 장면의 사진을 예로 들었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왜 그런 사진이 없을까?”하는 궁금증이더군요.

그 사진 속 상황은 2009년 5월 백악관을 떠나게 된 한 흑인 직원의 가족이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은 뒤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제이콥이라는 그 집 아이가 자기 머리의 느낌과 같은지 궁금하다며 대통령 머리를 한번 만져보고 싶다고 한 거였죠. 오바마 대통령은 “네가 직접 만져보렴”하고 허리를 숙이곤 “만져봐, 친구!”(Touch it, dude!)라고 했습니다. 만져본 제이콥은 “같은 느낌이에요.”라고 말했죠. 역사에 남은 수많은 사진이 그랬듯, 이 사진에도 연출된 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서민 대통령’, ‘흑인 대통령’, ‘약자의 대통령’ 등 오바마의 정체성을 재확인한 상징으로, ‘오바마다운 모습’이란 평가를 받았지요.

앞으로 두어달 남은 선거기간, 후보께서 뭐라고 하셔도 기자들은 후보님 족적을 뒤따라 다녀야 합니다. 저 같은 기자가 따라다닌다고 딱히 자랑스러우실 일도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그렇게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으면 합니다. 공보단에서 어제 일을 사과한 걸 보면, 후보님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가 앞으로 어떻게 바뀌실지 기대가 됩니다. 곳곳에서, 자주 뵙겠습니다.

김외현 올림.

osc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