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정보보안 서비스 업체인 `안랩`이 유망합니다. 대선 테마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4일. 한국경제TV가 오후 10시부터 방송하는 `대박파트너스`라는 프로그램에 증권전문가 전 모씨(34)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씨는 안랩을 추천했다. 전씨가 알려주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 본인이 방송 출연 당일 오후 차명계좌 등을 이용해 안랩 주식 7만6000여 주, 약 30억원어치를 미리 매수했다는 점이다.
전씨는 다음날도 안랩을 추천했고 시청자들의 매수로 주가가 급등하자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전량 처분해 10여 일 만에 23억여 원의 차익을 거뒀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증권방송과 주가조작세력`의 공생관계가 검찰 수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주가조작꾼은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방송사 PD에게 뇌물과 향응을 제공했고, 이들은 방송을 통해 `증시전문가` 행세를 했다. 방송을 통해 얻은 영향력을 바탕으로 이들은 주가의 시세조종을 시도했고 방송사는 이들을 적극 활용했다.
검찰 수사로 입건된 자칭 `증시전문가`인 전씨와 라 모씨(52), 황 모씨(44), 돈을 받고 프로그램에 출연시킨 한국경제TV PD 김 모씨(36), 작전세력에 돈을 댄 사채업자 신 모씨(49)는 이들이 연출한 검은 네트워크의 일단을 보여줬다.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이들의 실태는 충격적이다. 이들은 한국경제TV를 `주가조작 도구`로 철저히 이용했다.
한국경제TV에 증권전문가로 출연하던 라씨는 2011년 5월 하이텍팜 등 스몰캡 종목을 미리 사두었다. 라씨는 이 종목을 방송에서 추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김 PD에게 골프장에서 쇼핑백을 건넸다. 쇼핑백 안에는 현금 200만원과 발렌타인 30년산 한 병이 들어 있었다. 라씨는 그 전에 방송 출연 대가로 김 PD에게 현금 3000만원을 건넸다.
이런 작전세력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들의 몫이었다. 증권방송과 작전세력의 공생관계는 더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지금까지 기소한 5명 외에도 전문가와 방송국 관계자 5~6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 중이다. 이들 대부분은 혐의를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증권방송이 인터넷카페 등 다른 매체에 비해 주식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수사를 통해 관련 자료를 많이 축적했다"며 "증권방송이 건전한 투자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계속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철 기자 / 김동은 기자]
라씨는 미리 T사의 종목을 매수해 놓고 방송에서 추격매수를 유도해 시세차익을 얻었다. 라씨는 이 종목을 방송에 소개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으로 따로 김 PD에게 뇌물을 주었다.
검찰이 기소한 자칭 증시전문가들은 모두 제도권에서 주식투자를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로 나타났다. 직업 없이 증권가 주변을 기웃거리던 백수들이 방송 출연을 통해 전문가로 탈바꿈한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먼저 `슈퍼개미`임을 자처하며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투자수익을 과장해 퍼뜨렸다. 개인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인터넷에 카페를 개설하거나 유사투자자문업체를 설립해 대표이사로 활동한다. 입소문이 충분히 퍼졌다 싶으면 방송국을 찾아가 출연을 요구했다.
일단 방송국 출연이 성사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방송국과 `전문가방송계약`을 맺으면 방송국 인터넷 홈페이지 및 ARS망을 이용해 가입 회원들에게 증권정보를 쉽게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거짓 정보를 퍼뜨릴 수단이 늘어나는 것이다.
방송국도 이들의 인터넷카페가 주요한 수입원이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한국경제TV의 인터넷 홈페이지 및 ARS망을 이용해 증권방송 전문가들이 보유한 정보를 불특정 다수에게 일정한 회비를 받고 제공하게 하고 회원들이 납부한 회비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한국경제TV와 전문가가 배분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들 회원 수를 20만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의 수법은 한결같았다. 주식을 미리 사둔 뒤 방송에 출연해 해당 종목을 반복 추천하는 것이다. 물론 회원들에게도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이 같은 정보를 알려준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과 회원들이 해당 주식을 사기 시작하면 보유한 주식을 처분해 차익을 거두고 빠져나온다. 공개된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셈이다.
구속된 전 모씨 등이 범행에 사용한 종목은 안랩을 포함해 S사, T사, J사 등 주로 유통물량이 많지 않고 시가총액이 작아 주가가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코스닥 상장 중소형주들이다.
전씨 등이 이 같은 방법으로 거둔 수익은 검찰이 지금까지 확인한 액수만 40억여 원에 이른다. 이는 2010년 이후의 범행에 대한 수사 결과로 이들이 그 이전부터 한국경제TV의 증권전문가로 활동한 점으로 미루어 드러나지 않은 수익은 이보다 훨씬 클 수 있다.
`증권방송과 작전세력의 공생`이 대표적인 시세조종 모델이 되자 이들에게 돈을 대주는 새로운 작전세력이 등장했다.
속칭 `꽃값`을 제공하고 미리 종목에 대한 정보를 받거나 원하는 종목을 방송에서 추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주로 사채업자들이 이런 역할을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검찰 수사에서 구속된 신 모씨(49)가 그렇다. 검찰에 따르면 투자자 신씨는 `꽃값`(종목추천 수고비) 명목으로 한국경제TV 출연자인 라씨에게 돈을 건네고 그가 방송에서 추천할 종목 정보를 미리 빼냈다. 해당 종목을 미리 사둔 뒤 방송 이후 주가가 오르면 차익을 거둔 것이다.
신씨가 전문가들에게 준 돈은 약 3억5000만원. 반면 그가 얻은 수익은 총 83억여 원에 이른다. 엉터리 정보에 속은 개미투자자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신씨는 혼자 20배에 달하는 투자 수익을 거둔 셈이다.
◆ 한국경제TV PD는 작전세력 갑 중의 갑
자칭 증시전문가들이 한국경제TV를 활용해 증시를 휘젓고 있지만 이들도 한국경제TV PD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일 뿐이었다. 생사여탈권을 사실상 PD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TV 출연자인 황 모씨는 2011년 2월 김 PD를 여의도 일식집으로 불러냈다. 황씨는 "계속 방송에 출연시켜 달라"고 부탁하며 고급 양주를 선물했다. 양주박스 안에는 현금 1000만원도 함께 들어 있었다.
두 달 뒤인 2011년 4월 황씨와 김PD는 여의도 고깃집에서 같이 밥을 먹었고, 이번에는 황씨가 고급 영양제를 선물했다. 영양제 박스 안에는 물론 현금 1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김PD는 2011년 5월과 8월에도 황씨에게 돈을 받았다.
황씨는 방송 출연 없이는 시세조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김 PD에게 뇌물을 바친 것이다. 상식적으로 중소형주가 투자위험이 크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게다가 이들이 증권방송에서 추천한 종목들은 실적 등이 뛰어난 종목도 아니었다.
일반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증권방송 전문가들이 선행매매를 하고 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따라서 의심을 받아도 이를 무마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김 PD는 전문가들의 이 같은 약점을 철저히 이용했다. 출연자 선정 권한을 미끼로 이들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제공받은 것이다.
결국 자칭 증권전문가라고 하는 작전세력과 증권방송 PD는 방송을 활용해 일반투자자와 시청자들을 약탈한 셈이다.
검찰도 공소장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이번 사건을 "추천할 주식을 선매수한 후 유료 회원, 무료 회원, 일반 시청자 순으로 매수 추천해 시세차익을 얻은 사건"으로 정의했다. 결국 한국경제TV 시청자들이 봉이었던 셈이다.
[김기철 기자 / 김동은 기자]
방송심의위 "한국경제TV 제재 고려중" - 방송사 자발적 사과해야 지적도
주가 조작 사기꾼을 방송에 출연시켜주고 금품을 받은 한국경제TV 전직 PD가 구속기소됨에 따라 관련 방송을 내보낸 해당 방송사에 대한 어떤 제재 수위가 내려질지 주목된다.
투자자 피해 등을 고려하면 높은 수위의 제재 가능성도 점쳐진다. 아직까지 제재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제재가 이뤄지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민간 독립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방송 내용 등을 심의하고 법규 위반 여부 등을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방송통신심의위는 행정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에 처분요청을 하게 되고 방통위가 최종적으로 행정처분을 내리도록 돼 있다.
현재 방송통신심의위는 이번 사건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 관계자는 "방송에서 유료로 운영하는 증권전문가 홈페이지를 홍보한 정황을 파악하고 모니터링 중"이라며 "조사가 완료되면 심의위원회에 상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중을 따져 해당 방송 중지 수정, 경고, 관계자 징계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방송법상 제재 조치는 △해당 방송프로그램 또는 해당 방송광고의 정정ㆍ수정 또는 중지 △방송편성책임자ㆍ해당 방송프로그램 또는 해당 방송광고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 △주의 또는 경고 등이다.
또 과징금도 병과될 수 있는데 최고 금액은 3000만원이다. 해당 방송사가 이러한 제재 조치를 받게 되면 이 같은 사실을 고지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이전에는 `시청자에 대한 사과`도 있었지만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는 방송통신위가 심의규정을 위반한 방송사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한 바 있다.
방송사업자를 제재하는 조치 중 하나로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한 방송법 제100조 제1항 제1호에 대해 "방송사업자의 인격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헌재는 당시 "방송의 공정 책임을 높이려는 이 조항의 목적은 방송사업자에 대한 `주의` 또는 `경고` 등 기본권을 보다 덜 제한하는 다른 수단에 의해 달성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방송통신위가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강제할 수는 없지만 문제가 있다면 방송사가 이를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사과 방송을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강제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개선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배한철 기자 / 장용승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