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쓴이 | 이정덕(전북대 교수, 문화인류학) | [2005년7월호] 조회 : 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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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만 범죄인이냐?
김우중, 그는 한국에 신화를 남기고 무너졌다. 신화란 그저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했다는 의미이다. 그는 31살에 500만원을 가지고 무역상사를 세우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를 거치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대부분 다른 기업을 흡수하고 돈을 빌려 키우는 방식이었다. 자신의 자본과 기술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도 징키스칸과 같은 속도로 세계로 내달렸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함께 나락에 떨어졌다.
19세기말 미국의 카네기나 록펠러 등은 희대의 범죄인이었다. 아니 범죄인이라기보다는 불법과 탈법을 일삼는 기업인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거대 자본으로 성장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지 법이 어떻게 제한하는가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법은 단지 귀찮은 것이기 때문에 무시해도 된다는 그러한 정신이었다.
한국의 재벌들도 대체로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삼성의 이병철로부터 현대의 정주영 그리고 대우의 김우중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업인들이 하도 많은 탈법과 불법을 일삼았기 때문에 김우중을 평가하는 데까지 혼선을 일으킨다. 사기에 가까운 기업흡수와 확장을 세계적인 규모로 시도했기 때문에 성공하였다면 세계적인 기업가로 칭송되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안타깝다. 그렇지만 그가 그러한 과정에 너무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이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김우중을 동정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 다른 기업가들도 하는 방식을 사용했을 뿐인데 김우중만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김우중은 스스로 버틸 수 있었는데 타살당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김대중정권이 타살하였다는 것이다. 별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워낙 한국의 기업가들이 불법과 탈법을 일삼으니 김우중처럼 철저히 불법과 탈법으로 성장해온 기업가도 훌륭한 기업가로 칭송받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그의 부지런함과 담대함만 눈에 들어오고 그가 저지른 범죄행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나보다.
송호근의 이상한 범죄재구성
서울대 송호근교수는 중앙일보 시론에서 내가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김우중과 관련된 범죄를 재구성하고 있다. 그의 말을 길지만 인용해보자.
“1998년과 99년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모든 기업인이 현금을 구하러 천지사방으로 뛰어다닐 때, 국제통화기금(IMF)이 명한 국제결제은행 기준을 맞추려고 은행은 돈을 회수하고 더 이상 풀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지금은 잘나가는 삼성전자의 모 사장이 은행 앞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토로할 정도였을까. 워크아웃과 빅딜이란 명칭의 새로운 방식이 선을 보인 것도 그 무렵이었다. 워크아웃 대상이어도 정치권과 채권단은 공적자금의 원활한 회수를 위해 매각을 선호했을 것이다. 한국 기업의 바겐세일이 그래서 일어났다. 대우자동차는 GM에 헐값으로 넘겨졌다. 투기자본에 넘어간 은행들을 비롯해 헐값에 처분된 알짜 기업이 어디 한둘이랴. 피로 쌓아올린 한국 경제와 투지가 무장해제되는 순간이었다. 외환위기의 삼적(三敵)을 정치권과 관료의 태만, 대기업의 방만한 투자, 금융권의 과잉 차입으로 규정하면, 외풍에 취약할 정도로 부풀려진 대우는 삼적의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외국 투기자본은 맛난 먹이를 낚아채려는 듯이 한반도 상공을 선회했다. 그리고 IMF가 발한 비상계엄하에서 잔칫상이 차려졌던 것이다.
월드 뱅크의 자문역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 하버드대학 제프리 삭스 교수는 IMF의 관리방식이 부적절하고 과도했다고 뒤늦게 비판했다. 그렇다면 이자율 20%에 국민은 과잉 고통을 겪었고, 대기업은 과잉 판매되었으며, 공적자금도 과잉 투입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성공'으로 평가되는 당시의 위기관리전략 속에 혹시 대기업을 도산과 매각으로 몰아간 조급함은 없었을까. 당시의 정치권은 대우가 개척한 '한국 실크로드'를 외국 자본에 넘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긴 쓴 건가? 그것이 반드시 대우가 아니었어도 말이다.
김우중 전 회장은 과연 단독범인가, 아니면 정치적, 정책적 결단에 의해 죄가 생성된 것인가?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으로 되돌아가 범죄를 재구성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 예나 지금이나 정부 정책은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만큼 중대하다.”
그는 범죄를 아주 이상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마치 98-99년에 대우가 죽었고 김우중의 잘못도 있지만 정부정책 때문에 살해당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송호근의 마지막 글은 그러한 쪽으로 분위기를 몰고 가고 있다. 김우중과 관련된 범죄를 한참 잘못된 방향으로 시선을 유도하고 있다.
김우중의 죄는 95-97년 세계에서 어떻게 사기치고 분식해서 세계자본을 빌리고 국내은행이 이를 보증하고 결국 이를 국민의 혈세로 갚게 되었는지를 밝혀야 범죄를 제대로 구성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김우중이 세계적인 규모로 사기치고 분식한 것보다, 98-99년 IMF 후폭풍으로 나타난 대우해체가 마치 범죄의 현장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98-99년에 IMF가 잘못된 대책을 세우고 한국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은 충분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대우와 관련된 범죄는 김우중이 어떻게 사기치고 분식하여 외화를 차입하고 국내은행의 보증을 받아 결국 한국경제를 혼란에 빠지게 하였는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 후 대우를 어떻게 처리했는가는 부수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송호근은 마치 부수적인 문제를 핵심문제로, 핵심문제는 부수적인 것처럼 범죄를 재구성하고 있다. 선후가 잘못된 범죄재구성으로 보인다.
김우중 범죄의 재구성
김우중은 1936년 대구에서 교육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르쳤다. 박정희 집권시절 김우중이 불길처럼 일어난 것은 박정희 전대통령이 봐줘서 그렇다는 설이 파다하다. 그는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1년 한성실업에 입사, 무역 업무를 배웠다. 1967년 31세의 나이에 500만원의 자본금과 5명의 직원으로 대우실업을 설립했다. 창업 1년 만에 국내 수출기업 서열 141위를 차지했던 대우실업은 2년째 36위, 1972년에는 2위, 그리고 1978년에는 1위로 올라섰다.
1970년대 그는 한국기계공업(대우종합기계), 대한보일러공업, 옥포조선(대우조선),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등 부실기업을 인수했다. 부실기업을 인수해 차입금으로 경영하며 키워나가는 방식이었다. 많은 부실기업을 쉽게 인수한 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원이 커다란 힘을 발휘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이후에도 세계적으로 많은 부실기업을 인수하였는데 결정권자나 정치인들에게 로비해서 인수하고 은행의 돈을 빌려서 운영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즉 한국에서 사용하는 방식을 세계에 적용하면 세계의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데 힘을 기울여왔다. 1993년부터는 ‘세계경영’이란 구호를 사용하였는데, 그의 세계적인 자금조달 솜씨는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탁월하다는 의미는 불법과 탈법을 일삼는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이 과정이 모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각종 분식회계와 자전거래 등의 불법과 사기로 대규모로 해외자본을 빌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돈으로 그는 해외공장을 사들였다. 김우중의 세계경영은, 한국에서 부실기업 인수 후 각종 장부조작을 통해 차입금과 부채를 빌려 하던 경영을 세계수준에서 행한 것이었다.
경제논리를 통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에 대한 로비로 기업을 확장해왔고 수익성을 무시한 채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하였다. 차입금을 키워 은행돈을 더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70년대 은행돈을 빌리면 대체로 돈의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빌린 것 자체로 이익이었다. 그래서 은행돈을 빌리면 빌릴수록 이익이었지만 이에 숨겨져 있는 함정을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수출을 위해서라면 원가(原價)도 따지지 않고 물건을 판적도 있다. 저리의 수출금융을 더 빌일 수 있기 때문이다. 회계장부도 거리낌 없이 적자를 흑자로 바꾸었다. 대출을 받기 위해서다. 이러한 분식회계에도 불구하고 대우그룹의 재무구조는 부채비율이 평소 600~900%에 이를 정도로 좋지 않았다. 회계장부를 올바로 작성하였더라면 수천%의 부채비율에 이른 대우계열사도 있었으리라.
1996-97년부터 그는 은행차입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인수한 부실기업들이 기대한 만큼 이익을 창출하지 못해 내부 자본축적이 이루어지지 않아 부채비율이 턱없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더욱 대규모로 분식회계를 일삼고 사기대출을 일삼기 시작하였다. 기업투명성과 전혀 거리가 먼, 마음대로 회사장부를 전횡할 수 있는 일인독재회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천억 적자를 본 회사를 천억 이익을 본 회사로 둔갑시켰다. 없는 수출을 했다고 하고 없는 사업을 했다고 써넣었다. 이러한 분식회계와 이를 기초로 한 사기대출은 1997년 12월 IMF가 시작하면서 더욱 극심해졌다.
그의 세계적인 규모의 사기대출은 한국의 경제를 매우 취약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한국의 외화빚이 많자, 환전투끼꾼들은 쉽게 한국을 공격목표로 삼았다. 이들은 이 당시 동남아 경제가 취약한 점을 이용해 동남아 국가들을 파산에 가깝게 공격하고 나서 다음 목표로 한국을 공격하였다. 한국은 이를 충분히 방어할 능력이 없었다. 한국 내 외화가 적었고 외화 빚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영삼 집권기간 무역적자가 누적되었지만 이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채 환율정책을 꾸려온 관료들의 잘못도 크지만, 한국의 외화빚을 키우거나 외화를 유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김우중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대학이 기부금을 요청하면 수백억원씩 희사했고, 아예 직접 대학을 세웠고, 정치권에 로비하면서 수천억원을 정치권에 뿌렸고, 수천억원의 정치자금을 가지고 직접 대통령에 출마하거나 또는 대통령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이 돈은 김우중 개인의 재산이 아니었다. 자기 마음대로 분식회계과 사기대출을 일삼았지만 회사는 주주들의 회사였다. 돈은 회사돈이거나 은행돈을 빌린 것이었다. 세계적인 규모로 분식회계, 사기대출, 정경유착을 일삼다 보니 장부와 달리 대우의 곳간은 텅텅 비어 있었다. 쉽게 이야기해서 분식회계로 40조원 사기쳤고, 사기로 10조원을 대출받았고, 불법으로 200억 달러 외환을 유출시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들은 혈세 15조원을 날렸다.
그가 분식과 사기를 일삼지 않고 제대로 내실경영을 했더라면 대우그룹의 수만명의 주주들, 수만명의 직원들, 그리고 국민들이 이만큼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한국경제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잘못된 방향으로의 욕심이 자신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였고 또한 수만명의 주주와 직원들 그리고 한국민들에게 용서할 수 없는 커다란 고통을 주었다. 김우중 때문에 자살하고 병나고 가정이 깨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김우중 때문에 불면의 나날을 보냈을 수만명을 생각해보라. 그의 죄는, 명백하며, 용서하기 힘든 것이다.
김우중이 할 일
김우중은 대우에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누구에 책임이 얼마나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스스로 아는 모든 내용을 밝혀야 한다. 또 얼마나 정치권과 유착하였는지도 스스로 밝혀야 한다. 1997년 한국외환위기에 그가 어떻게 기여했는지 또는 IMF나 정부의 대책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도 그의 발언내용을 통해 철저히 분석되어야 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미국의 최대 기업들도 19세기 말 분식과 사기를 일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보다 투명하고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로 미국이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엔론처럼 분식회계와 정경유착이 미국에서 행해지고 있지만 19세기에 비하면 엄청나게 깨끗해졌다.
대우뿐만 아니라 삼성이나 다른 재벌들도 분식회계와 정경유착을 일삼아 왔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대우가 그 중 가장 심한 기업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우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김우중이 이러한 모든 잘못된 관행을 밝힘으로서 한국기업들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청산하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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