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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기형아 1만명 출산 ‘탈리도마이드의 재앙’과 겹친다 코스모스펀드
05-19 13:26
[라포르시안] 원인 미상의 폐질환으로 임산부와 영유아 143명이 목숨을 잃었고, 1200여 명이 피해를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알고 봤더니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2011년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원인 미상 폐손상 환자 사례가 지속적으로 보고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아산병원 홍수종 교수는 앞서부터 소아에서 원인 미상의 급성 간질성 폐렴이 잇따라 발생하는 것에 주목하고 '2006년 초에 유행한 소아 급성 간질성폐렴'이란 논문을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 이후에도 봄이면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급성 간질성 폐렴의 발병률이 위험 수위여서 적극적인 관리와 대책이 시급하다는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2011년 4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급성호흡부전을 주증상으로 하는 중증폐렴 임산부 환자의 입원이 증가하고 있다는 신고와 조사 요청이 질병관리본부에 접수되면서 마침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실체에 본격적으로 접근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이 사건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와 동물에게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 노출시키는 실험을 통해 마침내 가습기 살균제와 원인미상 폐손상의 인관관계를 실증적으로 규명할 수 있었다.

최근 뒤늦게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가해 기업을 대상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소비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기업의 비윤리적인 돈벌이 경영 실태가 드러났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가급기 살균제 제품 판매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가 살균제의 유해성을 조사하기 위한 동물실험 보고서를 조작하고, 연구자들에게 부적절한 돈을 건넨 정황도 드러났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많은 산모와 영유아가 목숨을 잃는 과정에서 정부의 안일한 대응과 관리 부실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질병관리본부는 2014년 말 발간한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사건 백서'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건강피해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살생물제(殺生物劑, biocide) 사건이다. 미생물이나 해충을 죽이려고 사용한 제품이 외려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이라며 "기업의 안이함과 정책∙제도적 미비가 빚어낸 생활환경제품 재앙"이라고 규정했다.

정부가 보건의료 투자활성화하는 명분으로 의약품 임상시험의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탈리도마이드나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재앙과 유사한 바이오사이드가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탈리도마이드 피해자들, 50년 넘게 고통 속에 살아가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발생부터 원인이 규명되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인류 최악의 '바이오사이드(biocide)'로 꼽히는 한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전세계에서 1만명이 넘는 기형아 출산이라는 비극적인 부작용을 초래한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사건'이다.

1957년 독일의 '그루넨탈'이란 제약사가 임산부들의 입덧 방지용으로 개발한 탈리도마이드는 1962년 판매가 중지 될 때까지 세계 46개국에 공급돼 1만명이 넘는 기형아 출산이란 끔찍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탈리도마이드는 판매 초기에 부작용이 거의 없고(제약사가 개발단계에서 실시한 동물실험을 근거로) 임산부의 입덧방지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의사 처방전 없이 임산부 등에게 자유롭게 판매됐다.

이 약이 발매된 이듬해부터 팔과 다리가 짧거나 없는 기형아 출산이 급증했고, 일부 소아과 의사들에 의해서 부작용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돈벌이에 눈이 먼 제약사는 임신한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를 근거로 이를 무시하고 판매를 지속했다.

그러는 사이 사지가 없거나 짧은 기형아 출산이 계속 이어졌고 그 수가 1만명을 넘어선 1962년, 일본을 끝으로 전세계 각국에서 탈리도마이드 판매가 중지됐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탈리도마이드가 쥐, 고양이, 개 등을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일부 품종의 토끼와 원숭이에서는 인간에게 나타난 것과 동일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라포르시안

임산부의 탈리도마이드 복용으로 인해 사지기형으로 태어난 아이의 모습.

탈리도마이드 사건의 피해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고통받고 있으며, 이 약을 개발한 그루넨탈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루넨탈사가 탈리도마이드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은 판매금지 조치가 내려지고 50년이 지난 2012년이었다.

영리추구에만 눈 먼 기업, 의약품의 안전성 문제를 소홀하게 다룬 국가에 의해서 발생한 바이오사이드란 점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겹쳐진다.

한편 미국에서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으로부터 국민을 지켜 낸 '영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 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의 프랜시스 올덤 켈시(Frances Oldham Kelsey) 박사다.

1960년부터 FDA에서 신약 허가 신청서를 평가하는 업무를 맡았던 캘시 박사가 탈리도마이드의 미국내 시판 허가 신청을 끝까지 거부함으로써 기형아 출산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막아냈다. 의약품 승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인 '안전성 검증'을 지켰기 때문이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