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어린이의 차량사고를 막으려던 외국인 부부가 오히려 아이의 가족으로부터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들었지만 경찰이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3일 부산연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후 4시 50분쯤 부산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외국인 A(43)씨 부부와 아이의 조부모인 B(62)씨 가족 간 다툼이 벌어졌다.
A씨가 올린 페이스북 글에 따르면 A씨 부부는 마트에서 쇼핑을 마친 뒤 주차장에 주차된 차쪽으로 걸어가던 중 B씨의 손자가 주차장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아이는 조부모인 B씨 부부, 엄마와 함께 있었다.
잠시 아이의 엄마가 주차된 차로 먼저 다가가 아이를 보지 못한 사이 주차장 입구로 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오르막길로 올라오던 운전자가 앞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한 A씨의 아내는 운전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고, 다행히 운전자는 가까스로 아이 바로 앞에서 차를 멈췄다.
하지만 B씨는 손자에게 고함을 질렀다는 이유로 A씨의 아내에게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기 시작했고 A씨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몸싸움을 하게 됐다.
A씨는 페이스북에서 “당신의 아이도 아닌데 왜 우리 일에 끼어드냐”는 말을 들었고 험한 욕설을 들어야 했다고 썼다. 또 그는 “B씨가 아내를 계속 쏘아보다가 아내에게 접근했다. 내가 막아내는 과정에서 그가 나를 손으로 밀어붙였고 급기야 나를 쓰러뜨리고 내 몸 위에 올라탔다”고 덧붙였다.
A씨의 아내가 몸싸움 장면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기 시작하자 아이의 엄마는 휴대전화를 빼앗아 버렸다. 둘이서 한참 승강이를 벌이고 있을 때쯤 마트 직원이 다가와 싸움을 제지했다. 하지만 B씨의 욕설은 계속됐다.
참다못한 A씨의 아내가 결국 전화로 경찰을 불렀다. 10분 후 경찰이 현장에 나타난 이후에도 B씨는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계속 이어갔지만 경찰은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고 A씨는 주장했다.
B씨는 A씨를 폴란드 출신으로 착각해 “폴란드 XX야”라고 말한 뒤 A씨가 콜롬비아 출신인 것이 확인되자 “폴란드보다 못하는 나라다. 콜롬비아 XX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A씨가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왜 제지하지 않냐며 경찰에 항의했지만 경찰은 웃으며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A씨 부부는 주장했다.
양 측은 현장에서 함께 연행돼 지구대를 거쳐 경찰서에서 조사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A씨 부부가)고함을 질러서 손자가 놀라는 모습에 화가 났다”며 “외국인이 영어로 계속 말을 하니 욕을 하는 줄 알고 욕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B씨 가족 측은 A씨 부부에게 여러 번 사과를 했지만 A씨 부부가 “사과하려는 태도가 아니다”라며 처벌을 원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인종차별적 발언을 제지하지 않은 것에 대해 “8번 정도 제지를 했는데 말로만 제지를 하다보니 외국 경찰에 비해 강도가 약하다고 (A씨 부부가) 느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A씨 부부는 당일 오후 8시쯤 풀려났다.
A씨는 페이스북에 “부산 경찰이 실망스럽다. (한국에선) 앞으로 절대 타인의 삶에 개입하지 말라. 타인을 도와주려고도 하지 말라”라며 외국인들에게 당부했다.
A씨가 사건 발생 후 경찰서장으로부터 사과 전화를 받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A씨 페이스북 캡처
A씨가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이 1700번 넘게 공유되고 2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는 등 사건이 알려지자 부산 연제경찰서장은 A씨 부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에 서장님이 직접 전화를 해 이번 일에 대해 사과했다”며 “서장님은 외국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경찰 교육에 힘쓰겠다고 말했다”고 썼다.
그는 “서장님의 경찰서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노력이 있다면 인종차별적 문제를 겪고 있는 외국인들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더이상 두렵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16년간 생활해온 A씨는 부산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했고 현재는 부산에서 유기동물 보호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