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한 현실, 주류언론의 침묵 코스모스펀드 10-28 09:26
[미디어오늘 2007-10-28 00:00:10] [미디어오늘]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민주주의>를 쓴 저명한 미국인 저널리스트 그렉 팰리스트(Greg Palast)는 지난 2000년 미국 대선에서 고어 대신 부시를 당선시킨 플로리다주 선거 부정에 침묵하는 미국의 주류 언론의 태도를 ‘양들의 침묵’에 비유하며 이렇게 꼬집었다. “대선을 비롯한 여러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좀 더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의 소위 웃기지도 않은 ‘언론문화’에 있다고 할 것이다. 세계적인 루퍼트 머독과 같은 사람들을 ‘새로운 세계질서’를 이끄는 목자라고 비유한다면 이러한 성공을 얻어낼 수 있었던 요인은 이들이 얌전한 양떼들을 길러낸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얌전한 양떼들이란 편집자와 기자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은 편안하게 누워 정부와 기업의 홍보담당관들이 던져주는 보도 자료와 소식 등을 받아먹고 이를 단순히 종이에 기사로 옮겨 놓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팰리스트의 저서 <돈으로…>와 마이클 무어의 영화 ‘화씨 9/11’은 플로리다 선거 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서두에서 압축적으로 다뤄졌지만, 더 자세한 내막이 궁금하다면 팰리스트의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팰리스트가 “오직 나는 문서만을 보여줄 것이다”라고 공언한 대로, 플로리다 선거 부정은 수많은 공식 문서와 기록에 의해 이미 확인된 사실이니까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 때문에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툭하면 가처분 신청으로 표현의 자유를 틀어막으려는 꼴사나운 작태가 횡행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현직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한 이 신랄한 블랙코미디가 그것도 미국 극장가에서 버젓이 상영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마이클 무어가 대체 누군가? 언론인으로서의 경력이란 대학신문 편집장이 전부인 이 다큐멘터리 감독이 영화 ‘화씨 9/11’에서 보여주는 ‘민주주의 국가, 미국’의 현실은 한마디로 처참하다. 영화 ‘화씨 9/11’ 포스터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자유니 평화니 하는 낱말들이 가진 자들의 권력놀음 앞에서 얼마나 처참하게 더럽혀지고 유린되어 왔는지를 이 다큐멘터리는 생생하게 보여준다. 인간 세계의 고결한 가치들이 이렇듯 허망하게 짓밟히는 와중에도, 그렉 팰리스트와 마이클 무어가 신랄하게 비판했듯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그저 팔짱 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여기서 거듭 확인하게 되는 것은 ‘바른 말’하는 경우란 언제나 ‘주류가 아닌 소수’라는 점이다. 미국인 저널리스트 그렉 팰리스트의 기사를 받아준 곳은 영국의 가디언과 BBC였다. 팰리스트는 ‘바른 말’을 하기 위해 조국을 떠나야만 했다. 마이클 무어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것은 깐느의 프랑스였다. 미국 주류언론들의 한결 같은 침묵이 ‘국익’이라는 미명 아래 정당화되는 현실. 과연 우리라고 사정이 크게 다를까. 오죽했으면 <미디어렌즈>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디어는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보여주는 창에 페인트를 칠하는 존재”라고. Copyrights ⓒ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