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퇴장 펀글 03-04 23:09
양지실업은 국내에서는 생소한 봉제완구 수출업체이다. 하지만 이 회사가 기획 디자인 생산해 판매한 인형 '산타베어'는 메이드인코리아는 물론 삼성, 현대도 이름을 알리지 못했던 1980년대에 미국 TV뉴스에 소개됐고 영부인 낸시 레이건이 감사의 편지를 보냈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22년 동안 팔린 인형만 400만개가 넘었다. 정석주 회장은 양지실업을 설립한 창업주이자 흑자기업, 무분규기업을 마감한 종업주(終業主)다. 1939년 함남 안변군에서 태어난 정 회장은 경기도 연세대 상경대를 졸업, 몇몇 업체에서 경험을 쌓다가 1977년 자본금 1000만원의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30년간 무차입 경영과 무분규기업, 흑자경영을 이룩해 낸 뒤 종업을 결정, 현재 회사 정리절차를 밟고 있다. 정 회장은 창업당시 남들처럼 회사를 망하게 하고 직원들 뿔뿔이 흩어 놓은 채 회사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키운 회사를 아름답게 퇴장시키겠다고 결심했고 주위에도 알렸다. 직원들은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해시켰고 평상시사 종업을 발표한 이후에 처우도 섭섭치 않게 해주어 불만이나 반대는 없었다. 평상시에도 직원들 임금과 복지는 최상의 수준으로 해주었다. 650여평의 본사 연면적에 디자인개발실에만 260여평의 충분한 공간을 내주었고 사장실은 3, 4평이면 그만이었다. 조명이나 냉난방은 무조건 최적의 환경을 지켜왔다. 누구나 100년 200년 가는 계속기업(going concern)을 꿈꾸다 실기(失期)하고 실패할 때 30년 흑자경영한 중소수출업체의 종업은 신선했다. 정 회장이나 주위 경영학과 교수들은 경영대학원에서 케이스스터디로 공부할 만한 사례로 생각했다. 정 회장은 1년 3개월 가량 육필(肉筆)로 일일이 작성하고 다듬은 경영학 이론과 사례가 담긴 '흑자경영 30년'을 최근 펴냈다. 정 회장은 중소수출제조업이야 말로 국가경제의 진정한 성장축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수출을 위해 원부자재를 수입하고 일부는 하청을 주고 본사에서는 공장을 가동하고 이렇게 탄생한 제품이 물류를 통해 해외로 수출되는 각 각의 과정에서 고용창출 효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요즘 국내나 중국서 고전중인 중소기업을 보면 안타까움이 많다고 한다.양지실업은 이미 중국 칭다오에 진출했다. 남들은 낮은 임대비용에 현혹돼 20년 30년 장기계약했다가 중도에 청산하다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반면 양지실업은 10년 기존에 2년 단위로 재연장 조건을 붙여 14년을 끝으로 어려움 없이 나올 수 있었다. 정 회장은 우선 "모든 투자는 조심성이 있어야 되는데 사업환경에 대한 예측도 없었고 중국을 너무 믿고 갔다가 낭패본 것"이라고 비판한다.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기업들이 나가기 전에 기업들이 관심이 있는 곳에 대해서는 철저한 사전조사와 대응으로 기업에 미리 정보를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앞서 나간 기업들에게 정보나 얻으려는 안일함에 빠졌던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정 회장은 도시계획을 핑계로 기업들을 내쫓는 등 중국 정부의 교묘한 노림수도 큰 우려라고 보고 있다. 정 회장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이미 중국에 기술전수가 됐다. 쌍용자동차처럼 기술집약적인 산업은 중국이 아예 회사를 통째로 사버린다" 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도 지금 중소기업들의 시련이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닐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중소기업 육성에 대한 국회, 정부의 인식전환을 거듭 촉구했다. 그는 "제조업을 육성을 빼고 고용을 창출할 수 대안은 없다"면서도 "그런데 노사문화 때문에 다 망친 거 누구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 결국 창업 환경을 만들어주고 경영의지를 불태우도록 해야 한다"면서 "그것은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게 아니라 경쟁력을 확보하는 노사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