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같은 반복 펀글 03-07 19:54
똑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미물도 같은 실패는 반복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제정책 당국은 실패를 반복했고 또 반복하려 하고 있다. 즉,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출 증대가 필요하고, 수출 증대를 위해서는 환율상승 정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책당국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실패를 경험했던 정책이다. 2000년 8월 말, 우리 환율은 달러 당 1,108원까지 떨어졌다. 국제수지가 여전히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고,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까지 몰려드는 바람에, 외환보유고가 90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는 914억 달러). 하필이면 이때에 신문언론들이 극단적인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올해는 7%만 성장해도 높이 평가해줄 수 있다’고 연초에 보도했던 어떤 신문은 8%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경계경보’, ‘경제 다시 위기인가’, ‘경제위기 재발 우려’, ‘또 위기국면, 경제가 급하다’, ‘경제 한파에 떠는 국민들’, ‘실물경기 급속 둔화’, ‘제2의 경제위기’ 등의 제목을 신문 1면 머리기사로 올렸다. 결국 국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고, 정책당국은 겁을 집어먹었다. 그래서 정부는 환율을 올려서 수출을 촉진하고, 수출 증대를 통해서 경기를 상승시키려는 정책을 선택했다. 그 결과 환율은 2000년 12월에는 1,265원으로 상승했다. 2001년에 들어선 뒤에는 세계경제를 이끌던 미국에서 경기하강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일까지 벌어졌다. 나스닥 주식시장의 붕괴와 그에 따른 정보통신산업의 시설투자 소멸 등이 결정적이었다. 그러자 정책당국은 환율을 더욱 높게 끌어올렸고 2001년 말에는 1,326원에 이르렀다. 환율이 이렇게 상승했다면, 정책당국이 의도한 바와 같이 수출은 당연히 증가해야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001년 수출은 무려 12.7%나 감소했다. 세계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 2001년 세계 수출이 약 3.8%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우리 수출 감소율은 그보다 세 배 이상 더 크다. 그렇다면 환율상승 정책이 수출을 오히려 줄였다고 해야 한다.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것처럼, 그 이유는 우리 수출품은 과거의 싸구려가 아니라, 세계적인 명품으로 올라서는 중이기 때문이다. 즉, 가격이 떨어지면 품질도 떨어진 것으로 간주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환율을 떨어뜨리자 수출은 오히려 줄었고, 성장률은 3.8%에 불과한 실적을 기록하고 말았다. 만약 수출이 감소하지만 않았더라면, 성장률은 7% 이상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런 처참한 실패를 경험했다면, 이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에 이명박 정권의 경제팀은 환율방어를 국가방위에 비유한 바 있다. 환율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만천하에 선포한 셈이다. 물론 이런 일은 이미 예견되던 일이었다. 외환위기 직전에 환율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이가 재경부 장관에, 2003년부터 2004년까지 환율방어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이가 재경부 차관에 임명되었으니 말이다. 당시에 이들이 얼마나 무모한 짓을 했던가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 먼저, 외환위기 직전, 환율이 오르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당시 정책당국은 달러를 시장에 쏟아 부었다. 환율이 오르면 이미 들여온 외채의 원화 부담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의 우리나라 외채규모는 총 1,370억 달러였다. 1996년 초의 환율은 770원 대였고 연평균 환율도 805원에 불과했는데, 1997년 말에는 1,415원까지 상승했다. 외채의 원화 부담은 90조원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이것은 당시 국내총생산의 20% 가까운 규모다. 이걸 피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환율을 방어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배경에는, 이미 다른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끝내 환율방어는 실패했고, 결국 외환보유고만 고갈시켜 외환위기를 부르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우리 경제는 엄청난 손실을 입어야 했다.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쏟아 부었던 달러들이 모두 사라졌던 것이다. 달러를 비싼 값으로 들여와서 싼값으로 시장에 팔아치운 꼴이었으니, 이처럼 엄청난 손실이 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규모가 최소 3백억 달러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이런 손실만 없었더라도 외환보유고가 고갈되는 극단적인 사태는 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실패에 대해서는 어떤 반성도 없었다. 그래서 이런 실패가 그 뒤로도 다음과 같이 두 차례나 더 반복되었다. 우선, 2000년부터 2001년 사이에는 환율을 1,100원 대에서 1,326원까지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큰 손실을 입었다. 달러를 비싸게 사들였는데, 그 뒤 달러 가격이 떨어지면서 재정적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그 손실이 약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것은 약과였다. 2003년 말부터 2004년 말 사이에 발생한 손실은 그 몇 배에 이른다. 2003년 말 환율은 1,198원이었는데, 이것이 줄기차게 하락하여 2004년 말에는 1,044원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책당국은 무모하게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심지어 도박성이 매우 큰 NDF거래(차액거래)까지 감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환율방어는 성공하지 못했고 큰 손실만 남기고 말았다. 달러를 계속 비싼 값에 사들였는데, 사들인 달러의 값이 계속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매매 과정에서 입은 엄청난 거래손실이었다. 이 규모가 최소로 잡아도 12조 원은 넘을 것으로 추정될 정도이다 (이 문제도 이미 자세하게 다룬 바 있다). 국가부채가 눈덩이 구르듯이 커진 것이나, 통안증권 발행잔액이 커진 것, 그리고 이자부담들이 엄청나게 커진 것 등은 제외하더라도 그런 실정이다. 이렇게 실패만 거듭했던 환율방어를 이명박 정권의 경제수장들이 또 하겠다고 선포하였다. 이것은 얼마나 무모하고 어이없는 짓인가. 만약 소로스가 이런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어떤 일을 벌일까? 소로스는 1992년 영국 정부가 무리하게 파운드화 방어에 나섰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100억 달러의 포지션을 매각하여 무려 1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파운드화는 당연히 20%나 떨어졌다. 이렇게 큰돈을 벌 수 있는데, 국제투기자본 어느 누가 이걸 마다하겠는가? 정부가 이런 국제투기자본과 겨뤄서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인가? 외환위기 직전의 환율방어 때에는 그걸 대행해주고 컨설팅해주던 국제금융회사들이 엄청난 이익을 챙겨갔지 않은가 말이다. 2003년과 2004년 사이에도 그런 금융회사들이 또 엄청난 이익을 챙겨갔지 않은가 말이다.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성장률은 3%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데, 이런 일까지 벌어지면 어쩌란 말인가?! 3월 7일 환율은 한 때 957원을 기록했다. 2월 28일 환율이 936.5 원이었으니까, 불과 1주일 사이에 무려 20원 넘게 오른 셈이다. 2007년 10월 말에는 종가기준으로 900.7원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으므로, 그 때에 비해서는 무려 50원이나 오른 셈이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이래도 국제투기자본이 우리나라 외환시장을 방관할까? 물론 2007년 12월과 2008년 1월에는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했으므로, 환율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2월에 들어선 다음부터는 무역수지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1월의 37억 달러 적자에서 2월에는 8억 달러로 크게 줄었던 것이다. 3월부터는 더욱 개선될 것이 기대된다. 그런데 왜 환율은 이처럼 단기간에 급등하는 것일까? 당연히 환율방어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환율을 방어하는 것일까? 수출을 증대시키고 이를 통해 국내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 수출은 2002년 하반기 이후 줄기차게 두 자리 수의 증가율을 기록 중이다. 2006년과 2007년에도 각각 14.4%와 14.1%의 증가율을 보였다. 올해(2008년) 1월에도 15.4%의 증가율을 보였으며, 2월에는 20.2%의 증가율을 보였다. 환율과는 전혀 상관없이 우리 수출은 그동안 호조를 지속했던 것이다. 그런데 수출을 위해서 환율을 방어한다? 혹시 2001년처럼 환율을 대폭 올려서 오히려 수출증가율을 마이너스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환율방어의 후유증은 수출 감소로 이어지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예금은행은 2007년도에 대규모의 단기 외채를 들여와서 국내에 가계대출을 해줬다. 부동산 투기 바람이 불고, 주식과 펀드 투자가 각광을 받으면서, 예금이 크게 줄어들자, 예금은행들은 가계대출자금을 해외 단기외채 차입으로 조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아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잠시 그 통계를 들여다보자. 예금은행 단기차입은 경기부진을 겪었던 2003년에 2.3억 달러를 기록한 이후, 2004년에는 40억 달러, 2005년에는 57억 달러를 기록했었다. 그런데 2006년에는 그것이 갑자기 407억 달러로 급증했고, 2007년에는 10월까지 323억 달러를 기록함으로써 연간 규모로는 또 400억 달러를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동안 환율이 줄기차게 떨어져 왔기 때문에, 2007년까지는 외채의 도입이 환차익을 남겨줬다. 그러나 2007년 말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2007년 10월 말 900원 선까지 떨어졌던 환율이 급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심각한 환차손을 입을 것이 빤하다. 예금은행의 단기 외채(억 달러) 추이 구 분 2002 2003 2004 2005 2006 07. 10 단기차입 61.6 2.3 40.1 57.3 407.0 322.7 자료 : 한국은행 통계월보 2007. 12 예금은행은 아니지만 산업은행의 경우는 국제선물시장에서 헷징을 충실하게 했으므로 환차손을 피할 수 있겠지만, 일부 예금은행들은 헷징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거액의 환차손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환율이 950원에서 안정된다고 가정할 경우에도, 2006년도와 2007년 10월까지 도입한 단기외채의 환차손은 약 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금액은 예금은행 총 예금의 1%에 해당한다(그 대부분이 엔화자금이기 때문). 환율이 더 오른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만약 2001년처럼 환율이 1,300원 대까지 오르기라도 하면, 망하지 않고 버텨낼 은행은 몇이나 될까? 혹시라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은행들은 경영난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신용경색이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신용경색은 수출의 경기부양 효과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경기를 하강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 빤하다. 정책당국은 이런 사태가 발생해도 좋다는 것일까? 이런 경제 원리를 아는 정책당국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재경부의 강만수 장관이 알까, 아니면 최중경 차관이 알까? 이런 점도 고려하지 않고, 어찌 국가경제를 경영할 것이며, 어찌 경제정책을 적절하게 펼치겠다는 것일까? 나는 경제정책 당국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이명박 정권의 장래를 걱정해주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우리 국민이 당할 경제적 고통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