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미국의 북한 접근 가속화, 남한은? 코스모스펀드 07-02 15:29
시진핑 방북 계기로 ‘신조선 전략’ 시동 시진핑 방북 직전 중국은 대북 식량 지원 양을 50만t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북·중 경협을 전면 실행하자고 함으로써, 2004년 말 비밀리에 입안한 ‘중·조 일치 전략’을 실행에 옮기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시사 인[41호] 2008년 06월 23일 (월) 09:59:47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in.co.kr ⓒAP Photo 김정일 위원장이 6월18일 시진핑 부주석 일행이 보낸 선물을 살펴보고 있다. 북한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50만t 대북 식량 지원 카드를 손에 쥔 미국이 한때 승기를 잡는 듯했다. 더구나 미국은 여전히 테러지원국 해제 카드를 쥐고 있고, 중장기적으로는 일본의 대북 수교 문제 역시 미국 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 시진핑 국가 부주석의 평양 방문에 대해 ‘신경이 쓰이긴 하되’ 크게 긴장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초기에는 시진핑의 방북 보따리 역시 눈길을 크게 끌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식량 5만t 직접 지원에 수출 통제 해제를 통한 간접 지원 10만t, 합쳐서 15만t 지원은 평상시라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지만, 미국의 50만t에 비하면 ‘약소’한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시진핑의 방북이 진행되면서 상황이 급전했다. 느긋하던 미국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우선 식량 지원에서부터 말이 달라졌다. 15만t이 아니라 50만t으로 급증한 것이다. 북·중 관계에 정통한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측은 애초 15만t 정도의 지원을 생각했으나 막판에 시진핑 부주석이 “미국이 50만t을 지원하는 마당에 15만t 가지고는 체면이 서지 않는다”라며, 미국 수준에 맞출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고 한다. 거의 같은 시점에 “북한에 대한 지원 양을 미국과 같게 한다는 게 중국 공산당의 방침이다”라는 얘기가 베이징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북한 문제 놓고 미국과 ‘맞장’ 이런 우여곡절 끝에 시진핑 방북 직전, 중국의 대북 식량 지원 양은 미국과 같은 수준인 50만t으로 갑자기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 중 직접 지원 분량은 35만t이다. 나머지 15만t은 수출 통제 해제를 통한 간접 지원 형식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한 지원 시점도 북·중 간 논의를 거쳐서 단계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시진핑 방북을 계기로 식량 지원의 구체적 방법에 대한 논의가 북·중 양국 간에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앞의 정보 소식통은 전했다. 그러나 식량 문제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바로 중국이 미국과 북한 문제에서 ‘맞장’을 뜨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초조해하는 것은 단순히 식량 때문만은 아니다. 더욱 위협적인 움직임이 시진핑 방북을 계기로 드러났다. 바로 북·중 간 전면 경협 움직임이다. 방북 첫날인 6월17일 시진핑 부주석은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에게 “농업과 경공업, 정보 산업, 과학기술, 물류, 변경 지구 기초시설 같은 분야에 대한 경제협력을 강화하자”라고 제안했고, 양형섭 부위원장은 이에 대해 “완전 찬동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북·중 양국은 경제기술 협조협정, 항공 운수협정, 자동차 운수협정 등을 체결하기도 했다(중국 관영 <신화통신>). 시진핑이 이번에 제안한 경협 제안은 형식상으로는 6월4일 류샤오밍 평양 주재 중국 대사가 이용남 북한 무역상에게 제안한 내용을 한층 확대한 것이다. 류샤오밍은 당시 “중국은 상호 무역과 투자를 늘려 기초시설 건설, 광산자원 개발, 광산품 가공, 변경 지구 무역 왕래 4대 분야에서 조선과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2004년 비밀리에 작성한 신조선 전략 그러나 그 근본 발상은 2004년 말 중국공산당 산하 대북 담당 부서와 연구소들이 비밀리에 작성한 ‘신조선 전략’에 뿌리를 둔 것이다. 정보 소식통 사이에서 “수면 아래 있던 신조선 전략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라는 얘기가 돌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신조선 전략은 “북한의 경제 재건을 중국이 사실상 주도함으로써 북한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을 중국과 일치시켜 나가는 ‘중·조 일치 전략’을 핵심 키워드로 한 것”이었다. 중국 측은 당시 이를 위해 40억~50억 달러에 이르는 경협 자금을 북한에 투입할 계획이었고, 당·정·군, 지방도시, 기업 등의 대북 접근을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일사불란하게 집행하기 위해 ‘8대 계획’이라는 실행 계획까지 치밀하게 준비했다. ⓒAP Photo 6월18일 헤리티지 재단에서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대해 연설하는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2005년 한 해는 중국이 신조선 전략에 입각해 김정일 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를 설득하는 기간이었고, 2005년 10월의 후진타오 방북을 통해 중국식 사회주의 발전 경험을 수용할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2006년 1월 중국 남부 순방을 통해 중국 지도부의 요구를 수용할 뜻을 밝혔으나, 그 뒤 스파이 사건 등으로 인해 북·중 관계는 다시 냉각되었다. 그동안 신조선 전략은 물밑으로 가라앉았으나, 중국이 더 이상 주변국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올해 8월 이후, 즉 올림픽이 끝난 시점부터 전면에 다시 등장하리라 예상돼왔다. 미국이 8월 이전에 대북 진출의 교두보를 쌓기 위해 노력해온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주변국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중국이 예상을 깨고 북한에 대한 전면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50만t 식량 지원과 북·일 관계 정상화 움직임 등에 대해 중국도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또 중국으로서는 신조선 전략이 실행될 경우 가장 큰 경쟁 상대가 될 한국이 새 정권 등장 이후 대북 문제에서 죽을 쑤는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시진핑이 이번에 밝힌 ‘농업, 경공업, 정보산업, 과학기술, 물류’ 등은 대부분 한국 기업의 진출 분야와 중복된다. 따라서 중국이 선점해버리면 한국은 나중에 하고 싶어도 하기가 어려워진다. 조선일보조차 사설에서 “쇠고기 협상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대북 정책 실패가 불러올 재앙”이라고 했건만, 눈앞에 그 재앙이 닥쳐오는데도, 이 정부에서는 아무도 걱정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초조하다. 김정일 위원장이 선물에 대한 답례로, 7월 초 부시 방한 때 또는 8월 올림픽 전야제에 중국을 방문해달라는 중국 측 요구에 보조를 맞추기라도 하면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은 다시 중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라이스 방북 얘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