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는 경제를 고려하지 말라 코스모스펀드 07-18 10:43
특검에서 면죄부를 받았으니 삼성의 경영 쇄신안이 미봉책으로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법은 눈을 감고, 정의는 강 건너 희미하고, 그저 돈이 지배하는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시사인 [33호] 2008년 04월 29일 (화) 11:30:40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이정우 특검에서 면죄부를 받았으니 삼성의 경영 쇄신안이 미봉책으로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법은 눈을 감고, 정의는 강 건너 희미하고, 그저 돈이 지배하는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재벌 총수가 법을 어기면 으레 보는 익숙한 풍경이 있다. 휠체어가 등장하고, 검찰은 총수 봐주기에 나서고, 급기야 사회정의의 최후 보루인 재판부마저 사회봉사 운운하는 온정적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좋게 해석해서 국민 경제에 미칠 영향을 걱정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오히려 사법부가 재벌 총수를 봐주는 바람에 외국에서는 한국 기업의 투명성을 의심하고, 국가 신인도가 더 떨어진다. 사법부가 재벌에게 온정적일수록 경제에 피해를 줄 뿐이다. 도쿄 지검 특수부에는 “검찰은 경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이 있다. 미국은 어떤가? 에너지 기업 엔론의 경우를 보자. 1985년 텍사스에서 설립된 엔론 사는 창업자인 레이 회장이 부시 대통령 부자, 체니 부통령과 가까운 친구인데, 정치 인맥을 활용해서 각종 이권을 얻으며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2001년 이 회사 경영진이 분식회계로 주가를 올리고, 스톡 옵션을 통해서 6억 달러를 챙긴 것이 드러났다. 주가는 폭락했고, 엔론 사는 결국 파산했다. 대한민국에는 기개 있는 검사가 한 명도 없는가 분식회계와 사기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레이 회장과 스킬링 사장은 각각 징역 45년, 185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을 맡았던 폴 맥널티 검찰 차장은 선고가 있던 날 이렇게 말했다. “어느 누구도 법 위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의 사장도 예외가 아닙니다.” 미국 언론은 이 판결을 미국 검찰의 승리라 불렀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기개 있는 검사가 한 명도 없단 말인가. 피천득은 수필 <인연>에서 아니 만남만 못한 만남을 후회하는데, 이번 삼성 특검은 아니함만 못한 씁쓸함을 남겼다. 미국 엔론의 경영진이 챙긴 부당 이익도 삼성 건에 비하면 약과다. 그런데도 특검은 극히 일부 혐의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전원 불구속 기소에 그쳤다. 1000개가 넘는 비자금 의심 차명계좌, 그림 수천 점, 고위층 뇌물 등에 대해서는 피의자 말만 듣고 몽땅 면죄부를 주었다. 그러니 이번 특검의 최대 수혜자는 이건희 일가이고, 최대 피해는 법치의 후퇴다. 힘없는 시민은 배고파 우유 한 통만 훔쳐도 잡혀가는데, 특권층은 법 위에 군림하니 시민은 허탈할 뿐이다. 자라는 아이들이 이걸 보고 법은 지킬 필요가 없으며, 부와 권력을 거머쥐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이다. 삼성은 키우되 범법자는 처벌해야 하거늘… 특검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삼성에서 뇌물을 받았다고 폭로한 검찰 고위층을 한 명도 소환·조사하지 않은 채 모두 혐의 없다고 결론내렸다. 이를 진실이라고 믿을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특검은 검찰 식구를 감싸주는 바람에 검찰의 공신력과 명예를 크게 손상시켰다. 뇌물을 주었다는 사람의 증언 하나만으로 전군표 국세청장을 구속했던 검찰이 정작 제 식구는 철저히 봐줌으로써 검찰 스스로 사회정의를 발로 차버리고 말았다. 앞으로 특검 무용론, 검찰 조롱, 사법 불신, 냉소주의가 팽배하게 생겼다. 특검에서 면죄부를 받았으니 삼성의 경영 쇄신안이 미봉책으로 나오는 건 당연한 결과다. 이건희·이학수·김인주의 퇴진, 전략기획실의 해체는 그동안의 범법과 반칙에 비하면 최소한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범법과 거짓말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 이재용의 승계 포기,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민주화, 노동조합의 인정, 순환출자 청산 그 어느 것도 보이지 않는다. 범법자는 처벌하되 삼성은 살리고 키워가야 하는데, 이번의 미봉책으로는 삼성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법은 눈을 감고, 정의는 강 건너 희미하고, 그저 돈이 지배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런 나라는 희망이 없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