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으로 녹색 성장? 독일을 보고 배워라 코스모스펀드 09-07 13:17
‘녹색 성장’을 말한 이명박 정부가 다시 원자력발전을 이야기한다. 화석연료의 합리적 대안이 원전이란다. 과연 그럴까. 세계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차세대 에너지 선진국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51호] 2008년 09월 01일 (월) 10:31:27 임성진 (전주대 교수·사회과학부) ⓒEPA 독일은 연간 4000만㎾의 전력을 생산할 세계 최대 태양열 발전소를 2009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위는 독일 발트플렌츠에서 조립한 솔라 모듈. 매년 지구환경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한 결과를 발표해온 미국 월드워치 연구소는 올해 초에 내놓은 보고서 에서 ‘지속가능 경제를 위한 혁신(Inno-vations for a Sustainable Economy)’을 올해의 주제로 채택했다. 인간과 지구 모두에 혜택을 가져다주는 글로벌 경제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녹색 혁신은 더욱 서둘러야 하며, 이를 위해 기존 생산양식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국내에서도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지속가능 혁신이 추구하는 녹색 전환은 21세기로 넘어오면서부터 이미 서구 선진국이 새로운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으로 앞다퉈 추진했던 변화다. 에너지와 산업, 그리고 농업과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생활 전반에 녹색 생산과 소비가 중심이 되고 있음이 수많은 사례를 통해 보고되었으며, 로마클럽 역시 벌써 수년 전에 “미래 시장은 녹색이다”라고 규정했다. 그 중에서 에너지는 산업사회 체제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혁신의 척도인 동시에 중심 동력이다. 각국이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에너지 체제의 녹색 전환에 우선 관심과 투자를 기울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이 부문의 성장속도가 빠른 것도 이 때문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선진국에서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혁명이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진행되었는데, 가장 눈에 띄는 부문은 신·재생 에너지(재생가능에너지와 신에너지)이다. 특히 태양광과 풍력, 그리고 수소에너지 부문에서 독일과 일본, 미국이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인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신·재생 에너지는 꾸준히 연간 15∼30%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 중에서도 태양광은 전력 부문에서 해마다 50∼60%씩의 놀라운 설비용량 증가율을 기록해 지난해까지 발전용량이 7.8GW에 이르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각국이 신·재생 에너지 부문에 투자한 액수는 2005년 430억 유로(약 64조5000억원)에서 2006년 730억 유로(약 109조5000억원)로 크게 증가했으며, 2015년에는 5400억 유로(약 810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10년 만에 7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독일은 단기간에 세계 최대 규모의 풍력과 태양광 설비용량을 지니게 될 만큼 성공적인 혁신 효과를 거두어 각국의 에너지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독일 정부는 당초 2010년까지 전체 전력 공급의 12.5%를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충당하고 그 비중을 2020년까지 20%, 2050년까지 50%로 높일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미 지난해 독일 전력소비량의 14.2%를 신·재생 에너지원이 차지해 기존 목표를 훨씬 웃도는 성과를 거뒀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목표치를 2020년까지 30%, 2050년까지 80%로 상향 조정하는 자신감을 보였다. 계획대로라면 독일은 불과 40년 안에 차세대 에너지 수급체계를 갖춘 국가로 거듭나게 된다. 핵에너지 거부가 독일의 기적 만들었다 그런데 신·재생 에너지의 비약적인 성장에 감탄하면서도 정작 많은 사람이 놓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독일 에너지 혁명이 에너지 절약과 효율의 혁신을 추구하는 시스템 전환의 성과물이며, 신·재생 에너지의 발전도 결국 절약과 고효율 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달성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신기술을 개발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독일 정부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에너지 정책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줄곧 에너지 절약 사회로의 구조 변화를 정책의 중심 목표로 삼아왔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응도 에너지 절약과 고효율이 핵심 수단으로서 온실가스 저감에 절대적으로 기여한다. 이러한 독일의 에너지 혁명에 가장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은 1998년 사민당과 녹색당의 적녹 연정이 들어서면서 이루어진 ‘탈핵 결정’이었다. 원자력에 대한 대안 모색은 공급 중심의 전통적인 에너지 체제를 근본으로 전환하고 원자력에 투입되던 천문학적인 예산을 지속가능한 기술혁신으로 유도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국에 잘 알려진 녹색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의 에너지 혁명이나 주민이 직접 발전소를 사들여 녹색 전기를 공급하는 쇠나우 전력회사의 성공 사례는 모두 시민의 핵에너지 거부와 대안에너지 운동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혁명이었다. ⓒReuters=Newsis 2004년 사민·녹색당 연정을 이끈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오른쪽)와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 사민·녹색 연정은 독일 에너지 혁명을 주도했다. 시민단체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난 8월27일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을 확정지었다. 전통적인 개발 패러다임을 지켜온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 성장이라는 깜짝 카드를 꺼내든 상황에서 발표된 계획이라 다소 기대를 건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서구 선진국의 경우를 통해서 본 에너지 혁명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실망스러운 내용이었다. 현재 한국은 에너지소비량 증가가 가장 빠른 나라 가운데 하나로서 신·재생 에너지 비중이 2%대에 머물고 있어 에너지 혁신을 위한 획기적인 조처가 긴급하게 요구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2030년까지 11%라는 불충분한 신·재생 에너지 공급 목표만을 제시할 뿐 구체적인 이행 프로그램도, 에너지 절약과 고효율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도 제시하지 못했다. 이러다보니 이번 계획으로 얻어질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2030년까지 겨우 9.9%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는 에너지 문제의 해결을 절약과 고효율, 신·재생 에너지 혁명이라는 두 축에서가 아니라 원자력발전의 확대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원전의 확대는 20세기 대량생산 체제가 지속으로 성장한다는 공급 확대의 논리에서 나온 발상이다. 실제로 독일의 사례가 주는 교훈처럼 위험한 핵에너지를 포기할 때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로 더 쉽고 빠르게 전환할 길이 열린다. 해외 개발을 통해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높이려는 계획 역시 이미 부존량이 정점에 다다르는 화석에너지 체제를 어떻게든 연장해보려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녹색 성장이라는 대통령의 야심찬 선언이, 단지 상징의 정치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미래 발전의 길을 찾기 위한 진심 어린 모색임을 보여주는 결단이 뒤따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