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이 부른 禍 코스모스펀드 09-07 18:18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별명은 ‘강고집’이다. 고집은 국어사전에 ‘자신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티는 것, 또는 그렇게 버티는 성미’라고 뜻풀이가 돼 있다. 고집이란 단어에 강 장관의 이미지를 대입하니 비슷하게 들어맞는 듯도 싶다. 역설적이게도 강 장관을 키운 것은 8할이 ‘고집’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행시 8회 출신으로 재무부 국제금융국장, 세제실장, 통상산업부 차관 등 엘리트 코스를 거친 강 장관은 부가가치세를 신설하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하는데 기여했다. 당시 동료들은 그를 ‘고집도 있고, 뚝심도 있는 공무원’으로 기억한다. 그가 재무부 이재국장 때 장관의 지시를 거부하다 인사상 불이익을 당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1997년 외환위기의 책임을 지고 재정경제원 차관에서 물러난 이후 강장관은 ‘야인(野人)’ 생활을 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그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그의 야인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해준 이가 소망교회를 같이 다닌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시절인 2005년 강 장관을 시정개발연구원장에 임명했다. 그 때부터 강 장관은 ‘7·4·7 공약’에 매달렸다. 그래서일까. 그는 재정부 장관 취임이후 성장률 7% 달성을 고집했다. 그러나 국내외 경기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정도로 급락했다. 참여정부 말기인 올 1월 재정경제부가 ‘2008년 경제운용 계획’을 통해 제시한 성장률은 4.8%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를 폐기하고, 6% 성장률 달성이란 실현불가능한 목표치를 제시했다. 우리 경제의 불행이 이 때부터 시작됐다는 지적이 많다. 시장의 반란 초래한 ‘姜고집’ 강 장관은 지난 7월 언론사 경제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참여정부 때 만든 ‘경제운용계획’을 폐기한 데 대해 “정권이 바뀌었는데 이전 정권에서 만든 경제운용 계획을 채택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성장률 전망치 4.8%가 합리적 근거를 갖고 있더라도 정권이 교체돼 성장률 전망치도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다. 성장률 집착증에 빠진 강만수 경제팀은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끌어올렸다. 수출 대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시장의 반란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인위적인 환율 끌어올리기는 물가폭등을 불러 서민들의 생활고를 가중시켰다. 환헤지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은 1조5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입고 비명을 질렀다. 이처럼 경제부처 수장의 ‘고집’이 부른 화(禍)는 크고도 심각하다. 강 장관의 ‘고집’은 세제개편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아예 작심한 듯 대기업과 부유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세제개편을 단행했다. 강 장관은 세제개편안을 발표하기 전 언론사 경제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현 정부를 상위 2%만을 위한 정부, ‘강부자’ 내각이라고 비난하는데 지금까지 제대로 된 ‘강부자’ 위한 정책을 편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쯤되면 고집을 넘어선 배짱 수준이다. 뿐만 아니다. 부유층을 위한 세제개편이란 비판이 쏟아지자 강 장관은 “부자와 서민이 똑같이 재산을 나눠 먹자는 것인데 소련이 그렇게 해서 망했다”고 했다. 옛 소련이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서민들에게 나눠줘 망했던가. 해괴한 역사인식이다. 서울 강남에 공시가격 21억원 짜리 아파트를 갖고 있어 종합부동세 납부 대상자인 강 장관은 종부세의 골격마저 허물 태세다. 그는 국회에 나와 “(현행 종부세 과세 체계는) 재산을 몰수하는 것과 같고, 100년, 200년 지속하면 개인 재산을 몰수하고, 나라 경제가 없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야당은 ‘망언’이라고 질타했지만 강 장관 입장에서는 ‘망언’이 아닌 ‘확신’일 수도 있다. ‘환란의 추억’ 다시 떠올려 현재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경제지표들은 ‘환란의 추억’마저 떠올리게 할 정도다. ‘9월 위기설’은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채권 만기가 9월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 하나로 불거진 것만은 아니다. 강만수 경제팀에 대한 금융시장의 신뢰가 무너진 탓이 크다. 경제부처 수장의 고집 때문에 경제가 나락에 빠지고, 서민들의 삶이 더 팍팍해진다면 찾아야 할 답은 뻔하지 않을까. 고장난 차로 인해 출근 길 정체가 가중된다면 고장난 차를 빼야 할 지, 마냥 기다려야 할 지에 대한 해결책 찾기와도 같은 이치다. 경향신문 [아침을 열며]기사전송 2008-09-07 17:59 <박구재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