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투자은행 5위였던 베어스턴스의 몰락과정을 지금 되돌아보면, 이 불행한 사태를 충분히 예방했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만약 베어스턴스를 선제적 정책으로 살릴 수 있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미국의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파급되는 일도 예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우선, 급박했던 당시의 상황을 [오바마 시대의 세계를 움직이는 10대 파워](우태희 지음)라는 책에 실린 내용을 통해서 살펴보자.

“3월10일(월) 상쾌한 주말을 보낸 뒤 월스트리트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증권브로커들 사이에 베어스턴스가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공교롭게도 오전에 세계적인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에서 베어스턴스의 채권상품 신용을 한 단계 낮추었다. 불암감을 느낀 브로커들은 베어스턴스와 거래를 중단했고 일부 펀드 투자가들은 현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투자가들이 많이 시청하는 CNBC의 정오 간판뉴스인 파워런치(Power Lunch)에서 베어스턴스의 유동성 위기소문이 언급되었다. 오후에 더 많은 예금인출이 일어났고, 베어스턴스의 주식은 주당 63달러로 지난주에 비해 7달러나 떨어졌다.”(227쪽~228쪽) 베어스턴스의 CEO 슈워츠는 캘리포니아 팜비치의 브레이커스 호텔에서 열린 3박4일의 연례 홍보행사에 참석 중이었고, 위와 같은 사태에 특별한 경각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3월11일(화) 베어스턴스에 자금을 빌려주던 은행들마저 모기지 관련 증권을 담보로 인정할 수 없다고 나섰다. 베어스턴스 계좌에서 고객들의 예금인출이 계속되었다.(중략) 계좌인출이 줄을 잇자 슈워츠는(중략) CNBC 저녁 뉴스에 출연해서(중략) ‘앞으로 12개월 동안 채권을 추가발행하지 않아도 될 만큼 베어스턴스의 유동성은 충분하다’고 진화에 나섰다.(중략) (본사가 아닌 캘리포니아에서) TV에 출연한 것이 (너무 안이한 자세라고 여겨져) 오히려 악재가 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슈워츠는 급하게 다음날 아침에 뉴욕으로 돌아왔다.”(228~229쪽)

“3월12일(수) 유동성 위기설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슈워츠는 공식 언론보도를 통해 다시 한 번 ‘베어스턴스가 15억 달러의 현금을 확보해 두고 있어 유동성은 충분하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발언을 듣고 고객들은 물론 헤지펀드들이 뭉칫돈을 빼기 시작하여 이틀 만에 현금이 동이 나고 만다. 몇 달 뒤 현금흐름을 분석해보니 이날 집중적으로 돈을 뺀 곳은 골드만삭스, 크레딧스위스, 도이치방크 등 세 곳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중략) 발을 동동 구르던 슈워츠는 이날 밤 뉴욕연방준비은행의 티머시 가이스너(Thymothy Geithner) 총재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요청했다.”(230쪽)

“3월13일(목) 오전부터 계좌인출과 해지가 늘어나더니 돈을 빌려 채권을 샀던 리포채권(Lepo Loan) 30억 달러가 도래했다는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졌다. 베어스턴스의 생명이 며칠이 아닌 몇 시간 내에 끝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부도를 막기 위해 슈워츠는 이날 오후 6시 반 JP모건의 CEO인 제임스 다이몬에게 SOS를 쳤다(거절당했다). 다이몬은 연방준비은행에 이를 알렸고 연방준비은행은 밤새 베어스턴스의 자금상황을 점검했다.”(230쪽)   

“3월14일(금) 새벽 2시에 연준(FRB)의 금융팀과 연방증권위원회(SEC)의 감사팀이 베어스턴스에 도착해서 실사작업에 들어갔다.(중략) 새벽 5시, 버냉키 의장과 폴슨 (재무)장권은 2시간 동안 전화 회의를 하여 베어스턴스에 130억 달러의 긴급자금을 지원키로 결정했다.(중략) 그러나 이날 베어스턴스의 주가는 전날대비 46%나 폭락하여 주당 32달러를 기록했다. 이날 오후 폴슨 장관은 슈워츠에게 전화해서 ‘JP모건과 딜을 꼭 해서 일요일까지 성사시켜라’며 강압적으로 최후 통첩을 했다.”(230~231쪽) 그 이후 베어스턴스는 주말 내내 인수 의향자들과 회의를 열었으나 실패했다.

“3월16일(일) 다시 열린 연준(FRB) 긴급 2차회의에서는 JP모건의 베어스턴스 인수를 위해(중략) 최대 300억 달러 자금을 지원하는 데 합의했다.(중략) 결국 JP모건은 부도 직전의 베어스턴스를 시가총액의 1/15의 헐값인 주당 2달러에 인수할 수 있었다.”(231~232쪽) 그 뒤 미국의 금융위기는 잠시 동안 잠잠한 듯 했으나, 6개월 뒤인 9월14일에는 리먼브라더스(미국 투자은행 4위)가 파산신청을 했고, 9월15일에는 초일류 그룹에 속했던 메릴린치(미국 투자은행 3위)마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 당했으며, 9월16일에는 보험업계 세계1위인 AIG가 85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고(10월8일에는 378억 달러 추가지원) 그밖에 중대형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파산하거나 인수당하면서 미국 금융위기는 오늘날처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말았다.

만약 투자금 인출사태가 처음 발생했던 3월10일에 베어스턴스가 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즉각적으로 다른 금융기관의 협조융자를 받거나 FRB와 미국 재무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만약 이때부터 FRB와 재무부가 베어스턴스에 300억 달러(JP모건 인수 당시의 지원금)의 공적자금을 지원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랬더라도 지금처럼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했을까?

잠시 시계바늘을 1987년 10월19일의 블랙먼데이로 돌려보자. 이날 미국의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508포인트가 폭락했다. 하락률이 약 22%에 달해 사상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 대공황의 계기가 되었던 1929년 10월24일의 하락률보다 두 배나 더 높았다. 이날 FRB 의장인 그린스펀은 댈러스의 일정을 전격적으로 취소하고 워싱턴에 돌아왔다. 이 사태를 자문단과 논의한 다음에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다음날 증시가 개장되기 한 시간 전에 저 유명한 짤막한 연설을 한 것이다. 즉, “FRB는 미국의 중앙은행으로서 경제 및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유동성을 공급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에 발맞추어 뉴욕연방준비은행은 유동성을 공급하였다. 이런 즉각적인 대응은 미국의 주식시장을 안정시켰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시 1,738까지 하락했던 주가지수는 줄기차게 상승하여 2001년의 급락까지 이겨내며 한 때 1만4천을 넘겼고, 최근의 금융위기 전까지는 초장기 경제번영을 누리는 결과를 낳았다.

금융시장에 있어서 대형 금융기관의 예금인출 사태는 주식시장의 폭락사태에 못지않게 위험하다. 그 전염력도 엄청나다. 경제전문가들은 이런 사태를 흔히 영화를 상영 중인 어두운 극장에서 ‘불이야’를 외치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만큼 예금인출 사태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베어스턴스에서 예금인출 사태가 처음 벌어졌을 때부터 미국 FRB나 재무부는 즉각적으로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었다. 그랬더라면 리먼브라더스, 메릴린치, AIG 등이 도산하거나 인수당하거나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금융위기도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교훈은 우리나라 작금의 금융시장 상황에도 해당한다. 그렇지만 정책당국의 대응은 너무 미약하고, 근원을 찾아 직접 처방해야 하나 엉뚱한 대책만 양산하고 있다. 고무다리나 긁고 있는 형국이다.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장차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이 지금보다 더 불안해지면,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대통령은 외환보유고를 더 이상 소모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다행히 외환시장의 작전세력과 부회뇌동 세력의 힘이 점점 더 약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