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발언이 상황·장소에 따라 엇갈리면서 남북관계 위기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통일부 등 관련 부처들의 움직임도 이 때문에 혼선을 빚었다. 당초 북한의 변화를 전제한 ‘비핵·개방·3000’ 외에 뚜렷한 대북정책 철학과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 10여일 새 대북 ‘유화’ 발언과 장기전을 각오한 듯한 ‘압박’ 사이를 오갔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북한의 육로통행 제한·차단 조치 발표 후 “기다리는 것도 때로는 전략”이라며 대북 강경책 고수 의사를 분명히 했고, 이틀 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면담에서도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을 우리가 공동제안한 상태인 만큼 앞으로 계속 상황을 지켜볼 방침”이라고 재확인했다.

하지만 이는 하루 만인 15일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오바마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직접 만나는 것도 반대하지 않는다”(오바마 당선인 측 면담)는 ‘유화’ 제스처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튿날 워싱턴 특파원 오찬간담회에선 다시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통일하는 것이 최후의 궁극 목표”라고 ‘흡수통일’을 환기시키는 언급을 해, 북한의 반발을 샀다. 사실상 ‘흡수통일’론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22일엔 “대북정책은 진정성과 일관성을 갖고 해 나가야 한다”(한·미 정상회담)고 ‘압박’의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 정부는 지난 13일 북한에 통신 자재·설비 제공을 제안하고, 17일엔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지(삐라) 살포를 막는 법적 방안 검토에 나서는 등 이 대통령의 압박 발언과는 엇갈린 움직임을 보였다.

실상 이 대통령의 이 같은 혼돈스러운 대북 발언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금강산 피격 사건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전면적 대화와 협력에 나서기를 기대한다”(8·15 경축사), “북측의 대남 분열시도가 계속 될 것”(8월18일 을지국무회의)과 같은 엇갈린 발언들이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그 원인으로 ‘비핵·개방·3000’ 전략의 예고된 실패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지난해 대선 후보 당시부터 이에 대해 북핵 전문가들이 “방법론이 없다”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을 감안하면, 지금의 상황은 예고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당 내에서부터 “비핵과 개방은 병렬추진돼야 하는데 지금은 비핵화에 발목이 잡혀 다른 대북정책은 시행하기 어려운 국면”(홍정욱 의원)이라며 ‘비핵·개방·3000’ 재검토 주장이 제기된 것도 그 때문이다. ‘촛불위기’ 이후 보수 지지층 잡기에 초점을 맞춘 국정운영도 한 요인으로 작용 중이다. “대통령은 상생·공존·평화·실용을 말하면서 실제는 이념의 덫에 빠져 있는 것 아닌가 싶다”(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는 것이다.

그 대가는 한반도 위기의 심화다. 실제 지난달 공개된 삼성경제연구소의 ‘한반도 안보지수’는 46.38로 2006년 북한의 핵실험 후 최악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북정책 철학의 부재는 곧 신뢰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향후 남북관계의 장기적 전망과 기반도 침식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