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변명과 거짓말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155명의 목숨을 구해낸 '허드슨강의 영웅' 체슬리 설렌버거 기장과 비극적인 '용산 참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24일(현지시간) 자신의 고향인 샌프란시스코 외곽 덴빌시에 금의환향(錦衣還鄕)한 설렌버거는 3천여명의 주민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설렌버거는 짧은 인사말과 겸손함으로 감사를 표시했을 뿐이다. "저와 승무원들은 평소 훈련 받았던대로 했을 뿐입니다"라고.

반면 6명의 희생자를 낸 '용산 참사'와 관련해 경찰 특공대 진입여부를 놓고 이뤄진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국회 답변은 그야말로 한 편의 블랙 코미디를 방불케 했다.

"보고를 받았을 뿐이다"에서 "승인했다"로, 다시 "지시했다"로 바뀌는 그의 지리한 답변에서 '책임감'은 커녕 '의연함'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책임있는 공직자의 말과 행동은 사건의 본질과는 별개로 국민들로부터 공감(共感)을 이끌어 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공분(公憤)을 자아내기도 한다.

불길을 피해 옥상 난간에 매달렸던 철거민들이 이내 힘이 빠져 바닥에 떨어지고 마는 장면을 목도한 많은 국민들은 김 청장 내정자의 "보고를 받았을 뿐이다"라는 말에 실망을 넘어 분노했을 것이다.

적어도 김 청장 내정자가 '책임감'을 느꼈다고 한다면 자신의 거취나 정치적 파장을 고려하기에 앞서 자성의 고개 숙임이 당연했다고 본다.

요즘 미국에서는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의 취임사가 연일 화제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사를 통해 '책임감'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새삼 '책임'과 '봉사'의 의미가 중요시되고 있다.

오바마는 '책임감'이야말로 도전과 위기를 극복하고 미국을 재건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변화와 희망의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대통령으로서의 책임, 공직자로서의 책임, 국민으로서의 책임, 나아가 세계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강조했다.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지를 물어보라"는 존 F. 케네디 취임 연설의 새로운 버전인 셈이다.

오바마는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백악관 고위 공직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로비스트와의 접촉을 금지하는 윤리강령을 만들었다.백악관부터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호소하기 위한 차원이다.

그는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는 설렌버거 기장의 사례를 들며 책임감의 가치를 역설했다. 설렌버거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엔진이 고장난 비행기를 뉴욕 허드슨강에 비상착륙시켜 155명의 목숨을 구해낸 장본인이다.

그는 비행기가 강물 아래로 가라앉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아 승객들이 모두 구출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기내를 두 번씩 오가는 책임감을 몸소 실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설렌버거는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설렌버거처럼 일한다면 아름답고 훌륭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출범 2년째를 앞둔 이명박 정부도 '용산 참사'의 파문을 책임감 있게 수습하고 2기 내각의 산뜻한 출발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슬픔과 비극의 상처를 빨리 아물도록 치유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국론 분열로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권에서는 청와대의 시간끌기라며 정치적 '꼼수'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여권에서는 야당의 정치적 공세를 경계하면서 동시에 설 연휴 민심을 살피겠다는 태세다. 그러나 '용산 참사'가 지리한 정치적 논란거리로 변질될 수는 없다.

정체절명의 위기에서도 결단력과 용기, 책임감으로 155명의 목숨을 구해낸 설렌버거 기장과 같은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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