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연이어 무너지고 있다. 위기 초반 금융사에 국한됐던 부실이 점차 제조 현장 기업들로 전이되며 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위기 진원지인 글로벌 금융사들은 진정되기는커녕 오히려 불안감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한때 세계 최고 보험사였던 AIG는 지난 2일(현지시간) 지난해 4분기 손실액이 617억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AIG의 4분기 손실액을 분당 계산해보면 47만달러에 이른다. 총액수로 봤을 때는 전년 동기 손실액인 54억달러의 12배 정도며 2001~2007년 벌어들인 액수보다도 크다. 세계적인 `갑부` 빌 게이츠의 순자산(570억달러)도 넘어서는 액수다.

만약 AIG의 4분기 손실액을 미국 전역에 뿌리면 미국민 1인당 200달러를 거머쥘 수 있다. 한 사람이 매일 100만달러를 쓸 경우 169년을 써야 617억달러가 된다. AIG가 이번 최대 분기 손실액 기록을 세우기 전의 최고 기록은 타임워너가 2002년 4분기에 기록한 450억달러다. 지난해 11월까지 총 1500억달러를 기록했던 AIG에 대한 미국 정부 구제금융은 이날 1800억달러까지 확대됐다.

씨티그룹은 정부가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국유화 방침을 발표했지만 시장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2월 초에 주당 3.65달러를 기록했던 씨티그룹 주가는 2일 현재 1.2달러까지 폭락했다.

미국 최대 생명보험사인 메트라이프도 회사채 투자 관련 손실이 지난해 4분기 140억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3분기 82억달러에서 7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최근 경제 위기로 인해 기업 자금 사정이 어려워져 회사채를 갚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해 이 같은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손실은 회계상에 인식되지 않은 잠재적이라는 것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계뿐만 아니라 유럽 금융사들도 심상치 않다.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은 것으로 알려졌던 유럽 최대 은행 HSBC는 지난해 순익이 70% 이상 감소했다고 밝히면서 임직원 6100명을 무더기 감원 조치했다. 수익이 나지 않는 미국 지점 800여 곳도 폐쇄 조치할 예정이다. 영국 대형 은행인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은 지난해 241억파운드(54조원)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계 보험사 ING는 지난해 4분기 37억유로 가까운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고 스위스 증권사 UBS는 지난 한 해 손실액이 170억달러에 이른 것으로 밝혀졌다.

금융업계와 함께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자동차 기업들도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미국 최대 자동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해 309억달러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최근 2년간 손실폭은 700억달러에 달한다.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는 3일(현지시간) 금융 자회사인 TFS가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에 미국 내 영업을 위해 2000억엔 규모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그만큼 그룹 내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의미다.

유럽 최대 가전회사인 필립스는 지난해 4분기 손실이 19억달러를 기록했다. 직원 6000여 명이 감원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미디어 오락 산업계 선두주자인 타임워너는 지난해 4분기에만 손실액이 160억달러를 보였다. 워런 버핏이 대규모 투자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미국 석유회사 코노코필립스도 지난해 4분기 318억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박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