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된다 싶으니, 제대로 해보고 싶은 욕심이 났다. 좀더 큰 자취방이 필요했다. 그 무렵 학교 선배가 ‘바로 300만원을 빌릴 수 있다’며 대출업체를 소개해줬다. 폰뱅킹으로 하루 4만원씩 90일 동안 갚으면 된다고 했다. 이씨가 2007년 7월 ㅇ대부업체에 300만원 대출 신청을 하니, 선수수료를 빼고 265만원이 즉시 입금됐다. 이 돈 300만원 때문에 그의 삶이 파멸에 이를 것이라고는 당시 누구도 알지 못했다.

대출 뒤 35일이 지나자 일수가 밀리기 시작했다. 대부업체 ‘김 과장’은 “이자가 계속 밀리는 것보다 다시 대출을 받아 남은 빚을 갚으라”고 했다. 5만원씩 96일간 갚기로 하고 400만원을 다시 빌렸다.

하지만 빚은 되레 커져만 갔다. ㅇ대부업체는 “ㅎ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아 빚을 모두 갚으라”고 윽박질렀다. 어쩔 수 없이 그해 11월 ㅎ업체에서 300만원을 대출받았다. 일수는 다시 밀렸고, 두 번째 업체는 세 번째 업체를 소개해줬다. 일수 빚 하나를 막기 위해 일수 빚 둘을 빌려야 하는 생활이 반년쯤 이어졌다. 결국, 이씨는 8개 대부업체와 일수 계약을 맺어야 했고, 매일 갚아야 할 일수 빚도 55만원으로 늘어났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사채업자들의 협박이 시작됐다. 그들은 “예전에 나체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 일도 있다”고 위협했다. 계약할 때 “형식적인 절차”라며 적어줬던 가족과 친구의 전화번호도 협박의 수단이 됐다. 사채업자들은 매일 이씨의 자취방을 찾아와 욕설을 퍼부었다.

돈을 받지 못한 대부업자들은 성매매를 ‘방법’으로 제시했다. 서울 강남의 룸살롱을 소개해주겠다는 것이다. 빚 독촉에 견디지 못한 이씨는 지난해 3월부터 친구와 함께 룸살롱 일을 시작했다. 이씨는 “아빠 같은 손님들을 만나니 너무 무섭고 수치스러워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협박만 심해질 뿐이었다.

사채업자들은 ‘도망가지 말라’며 강남 논현동의 한 원룸(이른바 ‘일수방’)을 얻어 생활하게 했다. ‘룸살롱 2차’에 나가도 대출금을 갚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견디다 못한 이씨는 11월 아버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빚이 7000만원으로 늘어난 뒤였다. 사업차 외국에 나가 있던 아버지는 그때야 맏딸의 사정을 처음 들었다.

아버지는 백방으로 뛰었다. 그런데 사채업자들은 “7000만원을 갚는다고 끝이 아니다. 다른 빚에 대한 보증이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업자들한테 대출을 받으며 친구의 보증을 받았고, 다른 친구의 보증을 서줬다. 보증이 서로 얽혀, 홀로 빠져나온다는 건 불가능했다. 아버지는 사채업자들한테 “돈을 다 갚을 테니 보증서를 폐기해 달라”고 빌었지만, 8개 업체 가운데 3곳은 “보증서를 내줄 수 없다”고 고집했다.

11월25일 아버지는 딸의 원룸에 찾아갔다. 아버지는 딸의 목을 졸랐고, 이틀 뒤 자신의 집 근처에서 목을 맸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9일, 숨진 여대생 이씨 등 200여명에게 돈을 빌려주고 최고 연 680%의 부당한 이자를 받아 챙긴 혐의(대부업법 위반)로 김아무개(31)씨 등 대부업자 4명을 구속하고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현행 대부업법은 연 49% 이상의 이자율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씨가 다닌 룸살롱의 마담 최아무개(41)씨도 성매매 알선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은 “이씨가 숨진 뒤에도 사채업자들은 이씨 친구들에게 ‘죽은 애는 죽은 애고, 네가 이씨 보증을 섰으니 그 돈도 갚아야 한다’고 협박했다”고 전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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