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느 언론인을 만났다. 여러 얘기를 나눴지만, 주요 화제는 역시 환율이었다. 다음은 그 언론인과 문답한 대강의 내용이다.

‘지난 3월초 이래 대체적으로 하락세를 지속했던 환율이 최근에는 다시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실제로 달러 환율은 지난 3월초에 거의 1,600원에 육박했다가 차츰 하락하여 지난 6월 3일에는 1,233원까지 떨어졌다. 그 이후 다시 강세를 보여 6월 25일에는 1,289원까지 상승했다. 7월 2일에는 그보다 다소 떨어져 1,269.5원을 기록했다.

‘외환당국이 그만큼 치열하게 환율 방어를 했기 때문에 환율이 상승했다. 5월 한 달 동안에만 무려 143억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거둬들였다. 이 규모는 과거에 환율방어를 가장 치열하게 했던 때의 1년분과 맞먹는다. 그만큼 환율 방어에 목을 맨 꼴이다. 더욱이 5월 자본수지와 경상수지 흑자는 총 120억 달러였다. 국제수지 흑자보다 23억 달러나 더 사들인 셈이다. 환율이 상승하지 않았으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6월에는 환율이 강세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참고로 6월에는 외환당국이 외환시장에서 약 50억 달러를 거둬들였다. 이것은 5월에 비해서는 크게 줄어든 규모이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예년에는 1년 동안 거둬들인 규모와 맞먹는다.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 현물을 사들인 것으로도 부족하여, 역외시장에서 NDF거래까지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사실은 조만간 통계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NDF 거래는 레버리지가 매우 크므로(가장 적은 것이 20배 정도), 정책 당국이 이 거래를 하는 것은 국가경제를 걸고 도박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은 돈을 들여서 환율방어에는 일시적으로 성공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외환당국의 정책 의지가 그만큼 확실하다면, 환율은 1,250원 대 이상에서 방어되지 않을까?’

‘방어하기 어렵다.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면 달러가 하락하더라도 장부상으로는 손실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NDF거래는 환율이 하락할 경우에 손실로 기록된다. 레버리지가 20배인 경우 환율이 약 40원 하락할 때마다 마진콜을 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레버리지가 200배인 경우에는 4원 하락할 때마다 마진콜을 당한다. 손실로 기록되면 책임을 져야한다’

‘현재의 환율을 유지하는 것은 환율방어 정책으로도 어렵다는 말인가?’

‘그렇다. 비유를 들어보자. 강물이 너무 많이 흘러서 수해를 막기 위해 보를 쌓았다고 치자. 그 보에 물이 찰 동안에는 수량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흐르는 강물이 줄어들지 않으면 곧 물은 넘친다. 그 밑에 또 보를 쌓으면 일시적으로는 수량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 뿐이다. 그 보를 쌓고 유지하는 데에 엄청난 비용이 소요될 뿐, 강물의 수량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외환 상황이 이 지경이다. 매월 국제수지가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환율이 하락하면 우리 경제가 다시 어려움에 봉착하는 것은 아닐까?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이 줄고, 수출이 줄면 경기가 하강으로 돌아서지 않을까?’

‘아니다. 역사적으로 1980년대 이래 우리 수출은 환율이 점진적으로 하락할 때 증가했고, 환율이 상승할 때 오히려 감소했다. 이렇듯 경제는 머릿속으로 추정한 것과 현실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경제문제는 반드시 통계를 통해 현실로 확인하는 버릇을 키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외환당국은 머리만 유능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경제를 악화시키는 짓도 흔히 저지른다.’

‘2003년 이후 외환당국이 환율을 적극적으로 방어한 것도 마찬가지인가?’

‘그렇다. 환율은 방어해도 떨어지고 방어하지 않아도 떨어진다. 당시에도 국제수지가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공연히 소중한 국가재원만 축냈을 따름이다.’

‘외환당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 환율 급락을 적극적으로 방어했기 때문에 경제가 그나마 유지됐다고 믿더라. 그들은 확신범 같더라.’

‘그들의 신념이 옳다면, 현실에서 그것을 증명해야 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당시 국제금융국장이 차관으로 영전하여 외환정책을 총괄했다. 자신의 믿음대로 환율을 끌어올려서 수출을 늘리고, 수출을 늘려서 경기를 살리는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가? 지난해 4/4분기 전기비 성장률이 연률로 -19%에 이를 정도로 경기는 급강하했다. 그 차관은 물러났다.’

‘경기가 급강하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이 아닌가?’

‘아니다. 세계적인 경기하강이 국내 경기에 미치는 직접 경로는 수출이다. 물론 우리 수출은 크게 줄었지만, 그것은 달러 기준이다. 국내 경기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원화로 환산한 수출인데, 이것은 다른 때에 비해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내 경제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그럼 국내 경기가 왜 그처럼 급강하했는가?’

‘환율이 급등하자, 국내 은행이 빌려온 외채가 엄청난 환차손을 입었다. 환율이 930원일 때 1억 달러를 빌려왔다면 930억원이지만, 환율이 1,500원으로 오르면 갚아야 할 돈은 1,500억원이 된다. 570억 원을 손해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내 은행들은 서둘러 외채를 갚았다. 실제로 2008년 상반기 말에 1,273억 달러였던 국내 은행의 외채는 연말에 994억 달러로 줄었다. 무려 280억 달러, 우리 돈으로 40조 원 가까이 줄었다. 국내 은행은 금융시장에서 돈을 끌어 모아 그만큼의 빚을 갚았던 것이다. 국내 금융시장은 당연히 신용경색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신용경색이 경기를 그렇게까지 빠르게 하강시키는 게 가능할까?’

‘세계 역사상 거의 모든 경제난 혹은 경제파국은 금융위기를 동반하여 발생했다. 경제공황도 마찬가지이고, 경기의 장기침체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금융시장은 다른 어느 경제변수보다 실물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신용경색이 환율 급등에 의해서만 나타났을까?’

‘옳게 봤다. 국내 은행은 2008년에만 약 40조 원의 환차손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은행의 경영수지가 그만큼 악화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신용경색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든 게 환율 급등 때문이란 말인가? 외환당국은 지난해 9월 위기설과 같은 우리 경제의 현실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던데, 아닌가?’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지 못한 탓이다. 외환위기설의 원인 제공은 분명히 외환당국이 했다. 환율은 경제 건강성의 가장 중요한 척도 중 하나로서, 이것이 상승하면 국가경제의 건강성이 나빠진 것으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외환당국이 환율을 정책적으로 상승시켜 외환위기설을 스스로 초래한 셈이다. 또한 9월 위기설이 불거졌을 때에는 그것을 제어할 권한과 책임도 외환당국에게 있었다. 그렇지만 외환당국은 외환위기설을 잠재우지 못했다. 우리 국민들만 불필요하게 심각한 경제난을 겪어야 했다’

‘외환위기가 실제로도 심각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외신들은 하나 같이 우리 경제가 위기적 상황이라고 보도하지 않았던가?’

‘비유를 들어보자. 내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의사인데, 당신 체온이 36.5도이므로 죽을병에 걸렸다고 진단했다면, 당신은 믿겠는가? 체온 36.5도는 정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다른 사람의 평균적인 체온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봉착했다면, 다른 나라들의 외환 지표들과 비교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외환지표가 훨씬 나빴던 나라들에서도 위기설은 나타나지 않았다. 외신들은 외국계 금융회사들과 함께 국내 외환시장에서 작전을 펼쳤던 것이고, 그 결과 350억 달러 이상 벌었다.’

우리의 얘기는 그 뒤로도 한 동안 계속됐다. 나중에 그는 확신범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이제야 알겠다고 내게 말했다. 그렇다. 외환당국은 확신범이다. 앞으로도 우리 경제를 난국으로 이끌어갈 가능성이 그만큼 큰 셈이다. 실제로도 환율 방어는 이제 막바지에 이른 것 같다. 오죽 했으면 NDF 거래까지 동원했겠는가!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환율이 짧은 기간에 폭락하는 일이 벌어지면 장차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아직도 늦지 않았다. 환율은 방어해도 떨어지고 방어하지 않아도 떨어진다. 방어하면 할수록 환율 하락의 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외환당국의 논리대로라면 환율이 높아야 수출이 잘 되는데, 이 경우에는 국제수지 흑자도 더 커진다. 그렇다면 환율 하락 압력은 더 커지지 않을 수 없다. 외환당국은 자신의 발목을 도끼로 찍는 일을 스스로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제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환율이 점진적으로 떨어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경제도 비로소 본격적으로 살아나 비교적 장기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