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와 곡물과 금속 등의 현물과 선물이 거래되는 국제 상품거래소의 거래량은 주식시장의 약 10배에 달한다. 파생상품을 포함한 외환시장의 거래량은 국제상품거래소 거래량의 약 10배에 달하고 세계무역 거래액의 약 80배에 달한다. 그만큼 외환시장은 중요하다.

∘ 외환시장 거래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환율변동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눈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환율변동의 메커니즘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해해야 믿을 수 있고, 믿어야 비로소 행동에 옮길 수 있다. 그런데 이해하는 것과 믿는 것이 다르고, 믿는 것과 행동에 옮기는 것은 더 많이 다르다. 믿는 바도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 외환시장 거래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환율변동의 메커니즘을 스스로 읽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스스로 읽어낸 것은 쉽게 믿어지고, 그렇게 믿어진 것은 흔히 행동에 옮겨지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신을 가장 믿고, 자신에 대해서는 강한 자부심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 환율변동의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환율변동을 완벽하게 읽어낼 필요는 없다. 시장의 변동보다 혹은 다른 외환시장 참여자들보다 반 발짝만 더 빨리 읽어내도, 한 치만 더 넓고 깊게 읽어내도 외환거래에서 성공할 수 있다. 오히려 시장변동을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멀리 내다보거나, 너무 광범위하고 너무 깊게 읽어내는 것은 가끔 손실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럼 국내 외환전문가들이 환율변동을 이해하는 수준과 그것을 읽어내는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일반적으로 어느 조직에서나 외환전문가는 최고 엘리트의 대접을 받는다. 그들의 실력이나 거래에 대해서는 누구도 쉽게 시비를 걸지 못할 정도이다. 특히 정책당국과 은행의 외환전문가는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로 대접받는다. 스스로도 그렇게 자부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외환거래 실적은 성공적일까? 최근의 실적을 중심으로 그것을 한 번 따져보자.

외환위기 이후 환율이 안정적으로 하락추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이지만, 국내 외환전문가들이 그것을 일반적인 추세로 파악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3년이나 뒤늦은 2005년부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때부터 외채의 도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5년부터 2008년 상반기 사이에 순도입한 외채는 국내 은행이 689억 달러, 일반정부(정부산하기관 제외)가 244억 달러, 통화당국이 231억 달러에 달한다. 환율이 하락할 때에 외채를 도입하면 환차익을 누릴 수 있으므로 이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그 손익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국내은행과 일반정부는 환율이 폭등했던 2008년 하반기부터 외채를 대대적으로 상환했다. 싼 값으로 들여왔던 외채를 비싼 값으로 되갚아서 큰 손해를 봤던 셈이다. 실제로 2008년 하반기부터 2009년 1/4분기 사이에 상환한 외채는 아래 표에서 보듯이 국내은행은 353억 달러, 일반정부는 139억 달러였다. 이 손실은 과연 얼마로 나타났을까? 만약 2006년부터 2008년 상반기 사이에 도입한 외채를 상환했다면, 즉 당시의 평균 환율인 951원으로 도입했던 외채를 상환했다면 그 손실액은 다음 표에서 비교적 쉽게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기관별 외채 순증가액(억 달러) 및 평균 환율(원/달러) 추이

구분	2006	2007	08 상반기	08 3/4	08 4/4	09 1/4
국내은행	237.3	268.5	183.5	-38.3	-240.8	-74.1
일반정부	18.1	215.1	11.5	-86.5	-31.0	-21.0
통화당국	25.4	122.6	82.7	-15.5	14.6	37.3
평균 환율	955.6	929.3	986.7	1,063.2	1,362.5	1,417.6

자료 : 한국은행 통계시스템

국내 은행은 위 기간 동안에 우리 돈으로 약 47.4조 원을 상환했는데, 도입할 때의 원화 환산액은 약 33.6조원이므로 약 13.8조 원의 손실을 입은 셈이다. 물론 이것의 대부분은 은행의 손실로 기록되지는 않았다. 외채를 들여와 국내 기업들에게 외화대출을 해줬으므로, 그 대부분은 국내 기업들의 손실로 나타났고 국제경쟁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이 책임의 상당 부분은 국내 은행이 져야 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일반정부의 경우에는 약 16.4조 원을 상환했는데, 도입할 때의 원화 환산액은 약 13.2조 원이므로 약 3.2조 원의 손실을 입은 셈이다. 이 손실은 당연히 국민들의 혈세로 메워진다. 더욱이, 일반정부는 외환위기 당시와 그 직후 환율이 높았던 때에 들여왔던 외채를 환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1999년부터 상환하기 시작하여 2005년까지 약 108억 달러를 줄기차게 상환한 바 있다. 이때의 손실액을 감안하면 그 손실 규모는 약 두 배 정도로 커진다. 국민들의 세금부담도 그만큼 커진 셈이다. 한편, 통화당국은 자금여유가 충분하여 외채를 상환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외채상환에 따른 손실은 나타나지 않았다.

위와 같은 국내은행과 일반정부의 손실은 누구의 반사 이익으로 나타났을까? 당연히 그 이익은 외국계 금융회사 등 외국인 투자자의 몫이었다. 국내 외환시장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경제상황을 외국인 투자자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그리고 더 광범위하고 더 깊게 파악할 수 있었던 국내 은행과 정책당국은 과연 무엇을 했더란 말인가? 우리나라 최고의 외환전문가를 자처하는 국내은행과 일반정부가 외환시장에서 위와 같이 엄청난 손실을 입은 사실을 우리 민초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은행과 정책당국의 외환전문가의 엘리트 의식과 자부심은 여전히 하늘을 찌를 듯 높으니 이 일은 또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 기회에, 얼치기 외환전문가들에게 한 마디 남겨두지 않을 수 없다. 외환시장이나 환율변동을 정확하게 읽어낼 능력이 없다면, 그리고 그런 실적을 남기지 못했다면, 제발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네들의 엉터리 분석이나 전망이 국내 주요 언론을 통해 국내 외환시장 참여자들에게 전달됨으로써 엄청난 손실과 국부유출을 불렀지 않은가 말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환율이 변동하는 메커니즘을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외환시장 참여자들도 이 기회에 각성할 일이 하나 있다. 명성이나 직위만을 내세우는 외환전문가는 백해무익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한 마디로, 그들이 과거에 어떤 분석과 어떤 전망을 해왔는지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비교적 정확한 분석과 전망을 해왔다면 믿어도 좋지만, 그런 실적이 없거나 엉터리 분석과 전망을 해왔다면 배척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손실만 계속 쌓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