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실행 펀글 11-05 13:13
SK 김성근 감독을 두고 ‘변했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나 강인한 성격은 그대로지만. 예년에 비해 온화해졌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한 계산 속에 움직이는 그의 성격에 반감을 갖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많은 야구인들이 ‘부드러워졌다’고 입을 모은다. LG 감독시절이던 2002년까지도 강하고 날카로운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았다. 하지만 SK 사령탑으로 부임해 우승을 차지한 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변신했다는 의견이 많다. 정말 그럴까. 나 스스로도 ‘김성근이가 변했네’ 싶어. 나이를 먹은 것도 있지만. 이런저런 경험이 쌓이면서 스스로 진화한 것 같다. 선수단에 1년 내내 긴장의 끈을 조이라고 하면 무리가 따른다. 적당히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게 운동능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 듯. 선수들도 긴장의 끈을 조였다 풀었다 해야 시즌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예전에는 긴장을 주기만 했는데. 요즘은 풀어주기도 한다. 그 게 변한 부분이라면 변한 점이다. 나 스스로는 무지 변했다. 획기적인 변화랄까.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려면. 나는 그 두 배 이상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언제 어떤 변수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시즌 중에는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그래서 올 시즌 시작하기 전에 내방(문학구장 감독실) 화이트보드에 ‘유언실행’(有言實行)이라고 적었다. 예전에는 무언실행이었다. 말하지 않고 그냥 움직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비겁한 철학이지 않나 싶다. 무언실행은 자신과의 약속만 지키면 된다. 말 하지 않고 행동만 하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다른 사람이 내 의도를 모른다. 사람은 나약하다. 자기가 설정한 목표를 따라가다 힘에 부치면 그냥 주저 앉는다. 자기변명이 가능하다. 남들은 (내가 목표를 달성했는지 그렇지 않은지)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위안을 삼고 넘어가면 끝이다. ‘내가 사정이 이러니 이 정도면 됐다. 괜찮다’하고 넘어간다. 남들은 모른다. 말을 안했으니까. 하지만 입 밖으로 말을 내뱉으면(有言). 그건 사회와의 약속이 된다. 도저히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목표라도. 이미 뱉어놨으니 어떻게든 주워 담아야 한다. SK에 와서 처음으로 “시즌 몇 승 하겠다” “한 달에 몇 승 하겠다”고 말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하니까. 일종의 자기최면인 셈이다. ‘이만하면 됐다’ 싶다가도 사람들 시선 때문에라도 움직이게 된다. 그 걸 깨달았다. 선수들한테도 미팅 때 강조한다. 특히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어려운 일은 부드럽게. 부드러운 일은 깊게. 깊은 일은 즐겁게 하라”고 강조했다. 어려울수록 힘을 빼고. 여유있게 해야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몰랐다. 그래서 강조했는데. 이 것 때문에 변했다고 하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