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가족과 두물머리로 산책을 떠났습니다.
혹한에 얼어 붙은 남한강과 북한강 위로 눈이 차곡히 쌓이는 토요일 오후
늘 다니던 길이 아닌 농장 옆 길을 선택하여 걸었습니다.

"에잇, 개ㄸㅗㅇ이 왜 이렇게 많아요?"
유난히 관찰력이 예리한 큰 아들 녀석이 소리칩니다.
농장 옆 주택에서 개를 풀어서 기르는 모양입니다.
"개들도 장소를 정해 놓고 그 곳에서만 볼일을 본단다."
" 다음에는 자주 다닌 곳으로 가요. 이쪽 길은 안 좋아요."

그런데 근처에서 푸드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만히 보니 콩대를 쌓아 둔 더미를 덮은 비닐 속에 갇힌 비둘기가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고 있었습니다. 
쌓인 눈 때문에 먹이를 구하지 못한 비둘기가 콩 냄새를 맡고 콩대 더미 속으로 들어 갔다가
곤경에 처한 것입니다.
저는 진기한 풍경을 놓치지 않고 바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리고 집사람에게 카메라 촬영을 부탁하면서 비닐 속에서 비둘기를 꺼냈습니다.
아이들의 환호성 속에서 제가 비둘기를 감싸쥐고 있는데 비둘기의 심장이 터질듯이 뛰는 것이
가죽장갑을 낀 제 손바닥까지 크게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비둘기는 얼마나 놀라고 있을까?

"귀여워요. 집에 데리고 가서 키워요. 네?" 아이들이 말했습니다.
'안 돼. 집에 가지고 가면 곧 죽는다. 그냥 살려주어야 돼."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비둘기를 쥐었던 손을 폈지만 비둘기는 제 손바닥에서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막내에게 비둘기를 건넨 다음 그 애 손에서 날려보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자유를 얻어 하늘로 솟아 오르는 비둘기를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선택에서는 이전 길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만날 수 없는 것을 만나며 생각하지 못한 일도 일어납니다.

두물머리 옆 논 썰매장에서 신나게 썰매를 타면서 즐겁게 노는 아이도 있었지만
한 쪽에서는 입술이 깨져 피를 흘리면서 우는 아이도 있고, 연신 넘어지는 어른들도 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늘 다니는 길을 택했는데 막내 딸애가 들고 있던 한 짝 장갑도 거추장스러웠는지
등에는 카메라 가방을 메고 두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제게 건네 줍니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대상이라면 대신 짐을 지는 것도 즐거움으로 바뀝니다.

'그래, 커서도 감당하기 벅찬 일이 있거든 내게 맡기렴'



 

A New Irish Tune /Tol &T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