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니다.”

신대포는 의례히 이 한 마디로 모든 수속 절차를 생략했다. 주인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이 문간방으로 들어선 그는 마치 제 집에나 찾아든 것처럼 거리낌이 없다. 방석도 스스로 끌어다 앉고 담배도 권하기도 전에 내 것을 꺼내 피웠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은 세상 토막소식을 기관총처럼 쏟아 놓고는 오던 때와 마찬가지로

“갑니다.”

한 마디 던지고는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그렇게 끝날 때까지 길어야 십 분을 넘기는 법이 없었다. C읍의 명물치고는 별난 명물이었다.

물론 신대포가 본명은 아니다. 성이 신가라는 건 틀림없는데 그 본명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이렇게 이름 대신 대포란 달갑지 않은 꼬리가 붙은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읍내의 크고 작은 사건이나 소문은 신문이나 라디오보다 신대포의 입을 통하는 게 빨랐다. 그런데 그 입을 거쳤다 하면 몇 갑절로 펑튀기가 되었다. 응당 그러려니 하면서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도무지 펑튀기란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실감이 났다. 그만큼 입담도 좋으려니와 말할 때의 표정이나 태도가 명배우 뺨칠 정도로 진지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재간에 홀딱 넘어가기 십상이었다. 그러한 신대포의 펑튀기 단골이 된 것이 처음에는 귀찮기만 했으나 점차 귀찮다는 생각이 엷어져 갔다. 아니, 오히려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내가 신대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의 아들인 현이를 담임하면서부터이다. 현이란 녀석 역시 본명보다는 소대포란 별명으로 통했다. 부전자전이란 말은 정말 이들 부자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우선 멸치처럼 길쭉한 얼굴부터가 그랬지만 성격 또한 나무랄 데 없이 닮은꼴이었다.

C중학에 전근 오면서 맡은 담임 반에 소대포가 있었다. 부임 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에도 맨 처음 알게 된 것이 이 소대포녀석이었다. 그 알게 된 동기가 또 희한했다. 수업 시간에 한 녀석이 졸고 있었다. 그것도 여느 아이들처럼 꾸벅꾸벅이 아니라 고개는 까딱도 않고 눈만 가물가물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것이다. 웬만하면 눈도 감기고 고개도 떨어뜨릴 만한데 녀석은 까딱도 않는 것이다. 조는 기술 치고는 달인의 경지였다. 나는 하도 신기해서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니까 다른 애들이 킥킥 웃었다. 비로소 낌새를 알아챈 녀석의 다음 동작이 기발했다. 멀쩡한 옆 아이를 보고

“야, 졸지 마!”

하며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똥 묻은 개가 어쩐다더니 이건 숫제 겨도 묻지 않은 멀쩡한 개를 나무라는 격이었다. 밉지가 않아서 이름표를 보니 신 현이라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다음 쉬는 시간에 수학 선생한테 걸려 교무실로 끌려왔다. 이번에는 졸다가 걸린 게 아니었다.

“야 임마, 문제도 풀기 전에 꼬박꼬박 답을 말해 버리면 어떡하냐! 야, 늬가 선생이냐 선생여? 아주 내 대신 다 해 먹어라.”

알밤 몇 개 쥐어 박히고 현이녀석이 물러간 뒤에 들려준 수학 선생 설명이 재미있었다.

“저 녀석이 선생님 반이지요? 속깨나 썩일 거요. 보신 바와 같이 머리는 비상한데 말여요. 잘 나가다가도 심술이 나면 저렇게 앞질러서 콩닥콩닥 답을 불어 버리니 어디 김 빠져서 해 먹을 수가 있어야지요. 저 녀석이 신대포 아들인 소대포인데 신대포가 읍내 명물이라면 소대포는 우리 학교 명물이지요. 아무튼 머리가 너무 비상해서 탈이라구요. 잘 풀리면 몰라두 그렇지 않으면 천재적 골칫덩이로 자라날 거요.”

머리가 나빠서 속을 썩여 봤지만 너무 좋아서 속을 썩여 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미상불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소대포 녀석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안 가서 이 소대포가 일대 소동을 일으키고 말았다.

학생주임이 순시를 돌다가 화장실 문 위로 솔솔 피어오르는 연기를 발견했다. 그렇잖아도 무슨 핑계로든 신 학년 교내 풍기를 바로잡으려고 벼르고 있던 학생주임이

“이놈들아!”

하고 덮친 것까지는 좋았는데 사이좋게 연기를 빨고 있던 세 녀석이 기절초풍해서 뛰쳐나온다는 것이 학생주임과 충돌하고 말았다. 그것도 가운데서 이놈 저놈 돌려가며 담배를 물려주던 소대포가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소대포의 이마와 학생주임의 주먹코가 일직선상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복도로 나가떨어진 주임선생의 주먹코가 피투성이가 되었다. 큰일이 났다. 담배를 피웠다는 사실보다도 선생을 피범벅으로 만들었다는 엄연한 현실은 교내의 일대 사건으로 비약했다.

그런데 죄를 진 녀석들이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문제는 학생주임이었다. 녀석들이 일부러 들이받았다는 것이다. 얼떨결에 들이받은 것과 일부러 들이받은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얼떨결이라면 정학 정도로 낙찰되겠지만 일부러라면 퇴학을 열 번 당하고도 남을 중죄다.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직원회가 열렸다. 학생주임 주장대로라면 제자의 폭행으로 코가 깨진 당사자의 위신이 말이 아니게 되고, 또 학교는 스승을 폭행한 제자를 배출했다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게 된다. 결국 ‘얼떨결’이라는 판결로 낙찰이 되어 세 녀석은 무기정학을 맞았다.

수학 선생의 예언은 적중했다. 나는 소대포 때문에 속깨나 썩이게 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나머지 두 녀석은 담임반이 아니었다. 그것도 동 학년이 아니라 한 해 선배인 3학년이었다. 여기서 녀석의 또 다른 진면목을 발견했다. 소대포의 교우 범위에는 상하가 없었다. 상급생이 되었건 하급생이 되었건 득이 된다고 생각되면 모두가 친구였다. 그게 눈에 거슬린 상급생 몇이 잡아다 족쳤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녀석은 건드리기만 해도 사람 죽인다고 소리소리 비명을 질러댔다. 으름장만 놓아도 사람 살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허풍도 이쯤 되면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 것이다. 결국 손을 든 것은 얻어맞은 소대포가 아니라 주먹을 휘두른 쪽이었다. 교내에서 그는 불가원 불가근의 위치를 굳혀 나갔다.

녀석은 정학에서 더욱 그 진가를 발휘했다. 정학을 맞은 일당 세 명은 집에서 근신해야 하는데도 뚱딴지같은 기지를 발휘하였다. 녀석들은 선생 사택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교장, 교감 사택이나 입김이 센 교사들 집만 골라 시키지도 않은 텃밭갈이도 하고 대청소도 했다. 내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에도 찾아와 알뜰하게 봉사활동을 해 주었다. 베갯머리 공사라던가, 정작 녀석들 구명운동은 사모님들로부터 일어났던 것이다.

신대포가 내 집을 찾아온 것은 녀석들 정학이 풀린 날 저녁이었다. 바람이 불면 휘청거릴 것 같은 깡마른 체구에 멸치 대가리같이 기다란 얼굴을 가진 사나이가 불쑥 찾아 왔다.

그는 건넌방에 안내되자

“현이 애비되는 사람입니다. 진작 찾아뵙는 게 도린데 말여요, 워낙 먹잘 것 없이 바쁘다 보니 헤·····”

하고 간지러운 웃음을 흘렸다. 인사를 하면서도 그의 눈동자는 방안 구석구석을 쉴 새 없이 더듬고 있었다. 꼭 뭘 찾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잠시도 눈동자를 고정시키지 못하는 게 그의 습성인 것 같았다.

“원 별 말씀을·······”

내가 담배를 권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 개비 빼어 물었다. 그리고 한다는 소리가 기가 막혔다. 응당 자식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알구 보면 선생이란 직업두 퍽 따분하겠어요.”

나는 어리둥절하고 말았다.

“네?”

“뻔한 월급만 가지구 먹구 살자니 말여요. ”

나는 더욱 어리둥절하고 말았다.

“월급 아니면 뭘 먹구 삽니까?”

“다른 관청이야 어디 월급으로 사나요? 알구 보면 월급은 푼돈이라구요. 위는 위대로 아래는 또 아래대로 다 먹을 구멍이 있게 마련이지요. 사업이라구 이름만 붙었다 하면 관청 끼지 않구는 안 되지요. 되는 일 하나도 없구 안 되는 일 하나도 없다는 말이 왜 생겼겠어요?”

신대포의 첫번 대화가 이렇게 엉뚱했으니 다음 대화라고 온전할 리 없다. 일주일쯤 지나자

“접니다.”

하고 불쑥 나타나서는

“뭐니 뭐니 해두 정치만한 게 없어요. 줄만 잘 잡으면 권력이 생기구, 권력이 생기면 돈이 생기구. 돈을 쫓아댕기는 게 아니라 돈이 기를 쓰구 찾아 온다니까요.”

그리고선 비로소 자식에 대한 교육관을 털어 놓았다.

“현이란 놈 말입니다. 머리가 꽤 쓸 만할 겁니다. 안 해서 그렇지 하기로 작정하면 이런 시골학교에서 일등 하기는 식은 죽 먹기지요. 사법고시도 그렇구요. 주변에서는 장래 법관을 시키라고 권합니다만 그게 어디 정치만 합니까?”

과연 신대포란 공연히 붙은 별명이 아니었다.

“그래도 정치는 기복이 심해서········”

조금 걱정을 했더니 그는 되레 딱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여당해야지요. 대한민국 역사상 여당이 진 일은 한 번두 없었으니까요.”

그리고는 한동안 뜨음했다. 그렇다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신대포가 아니었다. 그는 무척 부지런했다. 부지런히 읍내를 누볐다. 그렇다고 무슨 일자리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경찰서에 번쩍 했는가 하면 금방 군청에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또 파출소나 읍사무소를 거쳐 장터 골목을 누볐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웬만하면 형님이요 친구였다. 그러니 얻어 듣는 정보가 많았다. 상당히 펑튀기된 것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정보를 제일 반기는 데가 경찰이나 정당 사무실이었다. 특히 여당 사무실은 신대포의 단골 중에도 단골이었다. 노래기로 회를 쳐 먹어도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을 그가 어디를 간들 끼니를 건너 뛰랴만 당 사무실은 요긴한 휴식처요, 끼니 보급소였다.

신대포가 또 훌쩍 들른 어느 날 현이를 생각해서 걱정을 좀 해 주었다.

“일정한 일자리를 잡으셔야 할 텐데요?”

신대포는 천하태평이었다.

“그까짓 푼돈 받어 봤자지요. 강태공두 세월을 낚았다잖어요? 다 때가 있는 법이라···· 그래두 이렇게 불알이 양장구치게 돌아댕기다 보면 그날 일당이 생긴다구요.”

기껏해야 형사들 끄나풀 노릇이나 해서 푼돈 얻어 쓰겠거니 여겼다. 얼마 전 그가 자랑삼아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동산리 이장이 인삼농사를 꽤 많이 했다. 그런데 제사가 든 날 밤에 몇 천 평이나 되는 인삼을 몽땅 도적맞았단다. 수사에 지친 형사들이 자문을 구했다. 물론 자문이니 하루 밤에 몇 천 평을 싹쓸이해 갔다느니 하는 것은 그 특유의 펑튀기였지만, 신대포는 어렵지 않게 문제를 풀었다. 이장 작은 아들이 놀음꾼 망나니라는 것, 제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범인은 쉽게 잡혔다.

장난삼아 물었다.

“어떻게 일당이 생겨요?”

신대포는 대수롭지 않게 털어 놓았다.

“장터 고깃간 하는 때때기 있지요? 성냔개비처럼 빼짝 마른 잔데요. 참, 선생님은 아직 모르실 테지만. 그 때때기가 간밤에 외박을 했다구 마누라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뒤지는 소리를 하더라구요. 초상집에서 밤새 고스톱했다구 멀쩡한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이 났다지 뭐요 글쎄. 어이구 등신. 그런데 그 마누라 체구가 어디 보통인가요? 때때기에 비하면 그야말로 왕땅개지요. 한 번 들었다 놓기만 해두 다리몽뎅이가 성하지 못할 만큼 장사지요. 내가 얼른 나서지 않았다면 때때기놈 골병 들구 남었을 거구먼요. 나는 다짜고짜 때때기 멸살을 잡구 어제 밤에 꿔 간 놀음돈 내놓으라구 했지요. 때때기 자식 눈치 하나는 빨라 가지구 얼른 삼만 원 꺼내 주면서 깜빡 했다나요. 이런 때 그냥 받으면 안 되지요.”

나는 기가 막혔다.

“그럼 어떻게 받나요?”

“야 임마, 오만 원이지 어째 삼만 원이냐구 욱박질렀지요.”

기가 막히다 못해 한숨이 나왔다.

“그래, 곱게 내 줍디까?”

“따지구 보면 구명지은인인데 별 수 있나요. 아야 소리 못하구 내 주데요.”

그 아들에 그 아버지인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정학이 풀린 뒤 한동안 조용하더니 제 버릇 개 줄 리가 없다. 만우절에 학급을 몽땅 바꿔치기한 일이나 교직원용 화장실에 두꺼비를 여러 마리 풀어 놓은 배후에는 꼭 녀석이 있었다.

선거철이 다가오자 신대포의 발길이 뜨음해졌다. 귀찮기는 해도 심심풀이는 되었었는데 좀 궁금해지기 시작한 어느 날 저녁 불쑥 찾아 왔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안 남었잖어요? 메뚜기두 오뉴월이 한 철이라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 선거에 제가 왜 메뚜기가 되는지 이것 역시 특유의 펑튀기이겠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큰 비밀이나 되는 것처럼 바싹 다가앉아 고개를 길게 뺐다.

“대선이 됐건 총선이 됐건 나를 잡을라구 야단이지요. 지방선거는 더 그렇구요. 나를 잡느냐 못 잡느냐에 따라 당락이 뒤바뀔 수 있거든요. 그만큼 내 한 마디에 무더기표가 왔다 갔다 한다구요.”

원체 발도 넓고 아는 사람도 많지만 그의 말처럼 큰 영향력이 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튼 선거철만 되면 그는 아예 당 사무실에 붙어살았다.

“더두 말구 들두 말구 매일이 선거철만 같아라.”

이게 그의 철학이었다.

“참, 야당 선거운동하는 놈들 속을 모르겄다니깨요. 뻔히 질 걸 알면서 뭐 얻어 빨겠다구 저 야단이랴. 야당이 이겨 본 역사가 단 한 번이래두 있어야 말이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역대 대통령 하면 영남 출신이었다. 말하자면 영남은 맡아놓은 당상이고 호남은 두고두고 찬밥만 먹었다. 그런데 별나게도 지난 총선에서는 여소야대가 되었다. 표 찍다가 좀 철이 들었나 했더니 웬 걸, 영남 출신 의원들이 싹 쓸어 여당으로 차를 갈아타 버렸다. 인구수로 보더라도 영남은 호남의 배나 된다. 어느 세월에 후백제의 영광을 누릴 수 있으랴.

한동안 뜨음하더니 또 불쑥 나타났다.

“동네 사람들 관광 좀 시켜주느라구요. 시골 사람들 공짜라면 죽구 못 살지요. 그런 사람들 한 표하구 나 같은 사람 한 표하구 똑 같다니 참, 말두 안 되지요. 톡 까놓구 말해서 공짜 좋아하는 열 표 하구 내 한 표 안 바꾼다구요.”

이쯤 되면 허풍을 지나 과대망상증의 극치라 할만 했다.

한 번은 술이 거나해 가지고 찾아온 신대포가 호남 싹쓸이론을 들고 나왔다.

“전라도는 안 돼요. 무조건 싹쓸이해야 된다구요. 전라도에서 대통령이 나와 봐요. 나라 팔아먹구 남는다구요. 암, 남구 말구요.”

아무리 선거전략이라 해도 너무 한다 싶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런 억지 소리가 어디 있어요?”

“사기꾼이 젤 많은 데가 전라도라구요. 그러니 전라도가 권력을 잡아 봐요. 그 동안 굶주린 배때기 채우느라구 사기 칠 테니까.”

결국 경상도는 실컷 배를 채웠기 때문에 배가 불러 더는 못 먹어 청렴결백하리라는 이론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한 마디 했다.

“임진왜란 때 말이오. 경상도가 무혈점령 당했을 때 이순신 장군 밑에서 결사항쟁을 한 수군들이 전라도 출신이라는 거 알아요? 동학 농민혁명도 그렇고, 광주 시민항쟁도 전라도였다구요.”

그러자 신대포는 6.25를 들고 나왔다.

“마지막까지 버텼던 것은 경상도였다구요.”

그는 내친 김에 한 마디 더 했다.

“아무튼 충청도는 입이 열 개래두 할 말이 없지요. 오죽해야 멍청도라구 할까.”

대선이 임박해진 어느 날 신대포는 신이 나서 찾아 왔다. 이 날은 ‘접니다’ 하는 전주곡도 없었다.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댓바람에

“나두 인제 따라지 신세좀 면하게 됐어요. 시의원이 됐건 군의원이 됐건 뱃속에서부터 도장 찍구 나왔나요 뭐. 누구든 앉으면 임자구 따면 당상이지.”

술이 취해 헛소리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흥분만 했을 뿐 술기운은 전혀 없어 보였다.

“대통령 선거에 웬 지방선거요?”

“이번 대선에 이기면 말여요, 다음 지방선거 때 공천해 준다구 했어요. 선거 하나마나 여당이 이길 건

뻔할 거구, 여당에서 공천만 받으면 군 의원쯤 따 놓은 당상이지요.”

선거 잔치에 뭔가 잘못 먹었나 했다. 아무리 지방의원이라도 당의 공천을 따려면 돈이 이만저만 드는가 말이다. 돈이면 살 수 있는 것이 감투라 하지만 제 자식 학비도 변변히 대지 못하는 위인이 먹어도 한참 잘못 먹은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신대포는 얼른 내 말을 가로챘다.

“비싼 밥 먹구 무슨 헛소리냐 그 말이지요? 그렇지만 이번만은 헛소리가 아니라구요. 여기 출신 국회의원이 손수 내 어깨를 두드리며 장담했으니까요. 선거 때마다 내가 큰 공을 세운 것을 높이 평가한다나요 어쩐다나요.”

그러면서 마치 군 의원이 된 것처럼 어깨에 힘을 실었다.

“나두 지방의원 한 자리 하면 출세 길이 뚫리는 거지요. 그놈의 돈 때문에 괄시도 많이 받었지만, 쥐구녁이라구 볕 들지 말라는 법 있깐디? 그럭저럭 한 밑천 잡아서 줄만 잘 대면 군 의원쯤 되지 말란 법 없지요. 그 다음엔 국회의원이구요. 그게 내 평생 꿈이라구요.”

언제는 아들을 정치가로 만드는 게 꿈이라더니 이젠 자기 꿈을 둘러메고 나왔다. 그의 눈앞에는 금배지를 달고 세상을 내려다보는 자신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듯 꿈이라는 낱말에 힘이 넘쳤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근방에 소문난 허풍쟁이 신대포에 표를 찍어줄 것 같지 않아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내 속마음을 재빨리 알아차린 듯 신대포는 유권자 자질론을 들고 나왔다.

“나보구 신대포라구 비웃는 거 알구 있어요. 그렇지만 유권자라는 족속들 말입니다. 단순하다구 할까 어리숙하다구 할까, 일단 선거에 불이 붙으면 과거지사는 깡그리 잊어 먹는다구요. 더구나 당선만 돼 봐요, 애국자가 따로 없구 정의로운 대변인이 따로 없다구요. 권력 있는 곳에 돈은 모여들구 돈 있는 곳에 승리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게 되어 있어요. 정치의 묘미가 그런 데 있는 것이구, 일단 그 정치에 맛을 들이면 마약 중독은 저리 가라지요.”

나는 그냥 웃어넘길 수가 없어서 애꿎은 담배만 축냈다. 신대포의 계산대로라면 그의 앞길에는 천지개벽할 만한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 유일한 후계자인 소대포는 망각증이 심한 민족의 영도자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천지개벽은 엉뚱한 데서 일어났다. 만년불패인 여당이 대선에서 패배하고 만 것이다. 망각증이 심한 어리숙한 무리들이 큰일 날 일을 저지른 것이다. 어제까지의 역적이 충신으로 변하고 어제까지의 권좌가 하루아침에 박살이 났으니 과히 천지개벽이라 할만 했다. 천지개벽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곧바로 신대포의 머리 위에도 일어났다. 홧술이라고 밤 새워 들이킨 술 탓인지 아니면 오매불망하던 꿈이 박살나는 충격 때문이었는지 뇌졸증으로 쓰러진 신대포는 그의 허풍처럼 싱겁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소대포는 또 신대포의 유일한 후계자답게 일을 꾸미고 C읍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정학을 맞았을 때 찾아가 봉사활동을 해 준 몇몇 선생 집을 찾아가 돈을 뜯어 달아난 것이다. 봉사활동으로 따 놓은 점수도 있고 또, 선생님 심부름이란 말에 홀딱 넘어간 사모님들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돈을 내 주었다. 그것도 도에 지나치지 않게 오만 원이나 육만 원 정도를 불렀으니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물론 내 아내도 그 순진한 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렇게 여비를 장만한 소대포는 도시를 향해 날았다. 부친인 신대포의 한을 풀어 보려는 웅대한 꿈을 향한 날개짓이었는지, 아니면 수학 선생의 예언대로 천재적 골칫덩이로의 첫걸음이었는지 그것은 흐르는 세월만이 해답을 줄 것이다.

명물을 잃어버린 C읍의 하루가 꽤나 쓸쓸하게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