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철학의 문제(The Problems of Philosophy)’에도 닭 이야기가 나온다. 러셀은 “닭의 일생 동안 날마다 먹이를 주었던 농부가 결국에는 닭의 목을 비튼다(The man who has fed the chicken every day throughout its life at last wrings its neck instead)”고 했다. 모든 일이 늘 한결같으리라는 기대는 위험하다. 어떤 일이 아무리 오랫동안 되풀이되더라도 다음 번에도 확실히 같은 일이 일어나리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많은 관찰 결과와 경험적 증거가 쌓여도 이론과 예측이 잘못됐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검은 백조(black swan)’의 존재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오셀롯 씨가 평생 한 번도 검은 백조를 보지 못했고, 그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선조들이 몇 천 년 동안 그런 새를 본 적이 없다고 해도 ‘검은 백조는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무엇이 있다는 ‘증거가 없는 것(absence of proof)’과 무엇이 ‘없다는 증거(proof of absence)’가 있는 것은 다르다. (백조는 흰색 고니만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검은 백조는 처음부터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은 논외로 하자.)

검은 백조는 고대부터 인간의 상상 속에 나타났다. 로마의 풍자시인 주베날(Juvenal)은 ‘선한 사람은 검은 백조처럼 희귀하다(a good person is as rare as black swan)’고 했다.

18세기 말 호주의 이름 모를 작가가 그린 검은 백조

그래프에서 보듯이 어떤 사건의 확률분포가 정규분포라고 가정할 때 특정 사건이 평균(μ)에서 ±1σ 범위 안에 들 확률은 68% 남짓한 수준이다. 다시 말해 그 사건이 이 범위 밖에 나타날 확률은 32%에 조금 못 미친다. 그 사건이 하루 한 차례 나타난다면 대략 3일만에 한 번씩 이 범위 밖에 나타날 것이다. ±2σ로 범위를 넓히면 그 사건이 이 범위를 벗어나는 건 대략 3주에 한 번 꼴이 될 것이다. ±3σ 범위 밖에 나타나는 건 약 1년에 한 번 꼴로 나타나는 드문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 범위를 넓히면 특정 사건이 범위 밖에 나타날 가능성은 극히 미미해진다. 평균 ±4σ 범위 밖에 나타나는 사건(4σ사건) 43년에 한 번씩 발생한다. 카푸친 씨 평생에 한두 번 있는 매우 드문 일이다. ±5σ 범위 안에 들지 않는 사건은 4,778년마다 한 번 나타난다. 이쯤 되면 단군 이래 처음 있는 대사건이라 할 만하다. 6σ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보통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사건은 138만년에 한 번 꼴로 일어나므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25σ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도대체 얼마나 작을까? 특정일에 이런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소수점 아래 136번째까지 가는 작은 숫자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이 χ년 만에 한 번 꼴로 일어난다’고 말하려면 136자리나 되는 상상을 초월하는 큰 숫자가 필요하다. 정규분포라는 우주에서 이런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좋다.

하지만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될 게 있다. 아웃라이어의 가능성이 이토록 미미한 것은 어디까지나 정규분포를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정규분포보다 꼬리가 훨씬 뚱뚱하거나 길다면, 다시 말해 팻테일(fat tail)이나 롱테일(long tail) 확률분포라면 그 가능성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CFO가 25σ사건을 말한 것은 정규분포를 가정한 통계적 모델로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는 지나친 과장법을 썼다.)

앙리 루소의 '호랑이와 버팔로의 싸움'. 호랑이의 기습으로 버팔로가 익숙해져 있었던
일상의 안전은 갑자기 깨졌을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그 이론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드러났다. 그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금융경제학자들에 대한 격하운동도 거세졌다. 탈렙을 비롯해 비판세력의 선봉에 선 이들은 현대 포트폴리오이론(portfolio theory)을 적용한 투자기법들과 VAR(Value at Risk)를 비롯한 리스크관리 기법들이 오히려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를 키웠다고 공격했다.

하지만 그들도 카푸친 씨 같은 보통사람들이 블랙 스완의 충격을 피하려면(또는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속 시원한 대답을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은 다만 앞서 말한 ‘러셀의 치킨’ 같은 운명을 맞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똑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이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충격을 주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 되기도 한다. 복날 운명이 바뀌리라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닭들과 복날을 위해 닭을 기른 오셀롯 씨에게 그날의 사건이 같은 의미일 수는 없다.]

어차피 블랙 스완의 출현을 예견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면 그 사건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정확히 알아내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탈렙은 블랙 스완이 나타날 확률보다는 그 결과(충격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보라고 충고한다. 탈렙은 자신이 가진 자산(금융자산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시간과 열정을 비롯한 모든 자원) 대부분을 안전한 곳에 투자하고 전체 자산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을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성공하면 엄청난 성공이 될 수 있는) 블랙 스완에 공격적으로 베팅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카푸친 씨는 학과와 직업과 직장을 선택하고,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모험사업을 시작하고,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할 때 늘 나에게 찾아올 검은 백조는 어떤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검은 백조는 어떤 이들에게는 행운을,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재앙을 불러오는 새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