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열 다섯 쯤 되었을 때 샘보리에서 남쪽으로 멀리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 정상에
이모의 아들과 함께 오른 적이 있습니다.
작은 수정이빨이 덮인 돌들이 널려 있었는데 그 기억을 큰 아들에게 말했더니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이번 추석에 큰 아들과 함께 그 산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다음지도 인공위성 사진으로 확인한 그 산마루를 넘어가는 소방도로를 따라
사륜구동 차로 올라 가는데, 이번 여름의 폭우로 산길 곳곳이 유실된 곳이 많았습니다.
산길을 낸 곳들 중 시멘트로 포장을 한 곳이 유독 산사태가 심했는데
자연적으로 풀과 나무들 그리고 야생잔디로 뒤덮인 산길은 끄떡이 없었습니다.
시멘트와 흙이 무슨 결속력이 있겠습니까?
흙이 풀과 나무뿌리와 얽혀 서로 부둥켜 안아야, 모진 풍우와 겨울한풍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침묵의 산에게 배웁니다.

산 길을 올라가는데 두 대의 차 중 차 하나가 산길모퉁이 물길 도랑에 빠져 꼼짝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깊은 산중에 어른과 아이들까지 포함한 세 가족의 사람들이, 추석에 고향에 내려왔다가
산길을 따라 숲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산림욕을 하러 가던 중 곤경에 처한 것입니다.

앞에서 끌던 차와 연결된 밧줄도 끊어져 있어서 속수무책인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차에서 내려 차량종류와 빠진 곳 그리고 도로상황을 살펴 보니 쉽게 차를 빼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먼저 제 차에 실려 있던 차량견인용 강철와이어와 휴대용 삽을 꺼냈습니다.
앞차와 뒷차를 연결한 후 차량바퀴 밑 흙을 경사가 완만하게 될 정도로 파낸 후
견인차와 뒷차의 운전자에게 적절한 신호를 보내 쉽게 꺼낼 수 있었습니다.

산속에서 도랑에 빠져 곤경에 처한 차량을 꺼내보기는 처음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몇 단계의 필수요소가 충족되어야 하였습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지만 위험에 대비하여 수년간 휴대한 강철와이어와 삽을 제가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산길이 도랑에 빠진 차의 운전자 기준 왼쪽으로 심하게 굽어 있어서 
견인강철줄을 조수석 아래쪽에 연결하여 견인차량을 넒은 원을 그리면서 끌었고,
세번째 흙에 깊게 묻힌 차량의 바퀴아래로 길게 흙을 파내어 쉽게 빠져나올 수 있게 한 점,
네번째 연결한 와이어가 끊어지지 않도록 견인줄이 팽팽해질 때까지
견인차량을 아주 천천히 이동시킨 그 다음에야 견인을 시작하여 끌어 낸 것입니다.
와이어가 느슨 한 상태에서 견인차가 급속하게 출발하면 뒷차바퀴가 흙속에 박혀있는 가운데
와이어에 순간에 큰 충격이 가해져 쉽게 끊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차에서 내려 상황을 살펴 볼 때 부터 진행될 모든 단계를 정돈할 수 있었는데,
차주 한 분이 강철선 와이어를 조수석이 아닌 운전석 아래 차체에 걸자고 하시는 바람에 
그 곳에 걸어 끌다가 오히려 차가 도랑쪽으로 앞바퀴까지 빠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조수석 쪽으로 걸어야 차가 도랑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말씀드린 후 일련의 필수과정 대로
진행시켜서 불과 10 분도 되지 않아 차량을 도랑 밖으로 빼낼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 중 한 아주머니께서는 제가 차 바퀴가 빠져나올 길을 내느라 삽질을 하는데
곁에서 우산끝으로 흙을 파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우산으로 흙을 얼마나 파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삽으로 파는 것으로 충분하니 그냥 옆에 계시면 됩니다."
"그래도 조금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제가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사업하시면 대성하실 것 같습니다."
그 가족분들의 산장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분들은 한 해에 수십 억원의 순익을
거두는 견실한 사업체의 소유가족들이었습니다.

 
옆에서 그 모든 것들을 지켜 본 아들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산사태로 길이 위험해서 산에 오를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저 분들이 굳이 그 분들의 산장에 가서 차 한잔 하고 가라고 하시니 들렸다가 가자.
참 오늘 깨달은 것 없니?"
"수정 캐는 것 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했어요. 정말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