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딩속 초록공간 ''옥상정원''이 뜬다
서울 도심 건물의 회색 옥상에도 초록 뜰과 연못이 있다.
바람에 실려 날아든 개망초 씨앗이 숨죽인 채 숨어 있다가 어느새 노란 꽃을 활짝 피워 냈다. 힘겹게 겨울잠을 자고 난 개구리는 깊지 않은 연못에 알을 낳았다. 어디서 왔는지 깍지벌레는 풀이파리를 실컷 갉아먹고 있다.
‘초록지붕’은 눈을 즐겁게 하거나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만이 아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쫓겨난 생명들이 삶을 다시 시작하는 공간이다.
# 유네스코회관 ‘작은 누리’
서울 중구 명동2가 유네스코회관 12층 옥상 190여평에 조성된 ‘작은 누리’. 이곳에서는 겨울을 이겨낸 봄꽃과 화려한 여름꽃, 소박한 가을꽃이 앞서거니뒤서거니 피고 진다. 2003년 4월 문을 열 당시 돌나물, 범부채, 억새, 칡 등 130종의 식물이 심어졌는데 2년 새 200여종으로 늘어났다. 개망초, 달맞이꽃, 괭이밥, 가죽나무 등이 흙속에 씨앗으로 숨어 있다 싹을 틔우거나 인근 남산 등에서 날아들어 새식구가 된 것이다.
30㎝ 깊이의 생태연못 주변에는 갯버들과 애기부들, 골풀 같은 습지식물이 자란다. 연못 주변은 사람 발길이 닿지 않도록 관리해 어른 키만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다. 2003년 풀어 놓은 개구리 녀석은 두 겨울을 나면서 환경에 제대로 적응했는지 올 봄에는 알까지 낳았다. 빌딩 옥상이 생태 숲으로 변하자 참새와 까치, 비둘기, 지빠귀가 날아들고 메뚜기와 잠자리, 벌 등 곤충 60여종도 찾아들었다. 작은 누리가 인근 중국대사관과 명동성당의 작은 숲, 덕수궁 등 도심 소공원, 남산에 사는 동식물들이 옮아 다니는 생태적 연결통로로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 서울시청 별관 ‘초록뜰’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3층 옥상 ‘초록뜰’은 서울시가 옥상녹화 사업으로 2000년 12월 조성한 정원이다. 작은 누리와 마찬가지로 처음 43종이던 식물이 지금은 개망초와 고들빼기, 꿀풀 등이 늘어 110종이 됐다. 지은 지 오래된 건물이라 경량형 옥상녹화가 적용돼 키가 큰 식물을 볼 수는 없다. 벌개미취 점나도나물(세라스티움) 등 초화류 식물과 종지나물 수호초 등 지피식물이 대부분이다. 씨앗으로 날아든 가죽나무 여섯 그루와 단풍나무, 자작나무 한그루씩이 어른 무릎 높이로 자라났다.
초록뜰에도 나비, 민달팽이, 진딧물, 꽃등에, 무당벌레, 노린재류가 용케 알고서 찾아왔다. 원추리는 진딧물 피해가 심해 구제해야 할 정도이고 독일붓꽃은 깍지벌레류가 몽땅 갉아먹어 버렸다. 여름철 작은 웅덩이에 물이 채워지면 소금쟁이도 나타난다.
시에서는 초록뜰 조성이 도시 열섬 현상 줄이기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1주일에 두 차례 온도를 잰다. 관찰 결과 식물이 많이 심어진 곳이 맨땅인 곳보다 여름에는 4도가량 시원하고 겨울에는 1도쯤 따뜻한 것으로 나타났다.
# 벧엘유치원 ‘창조의 뜰’
서울시의 ‘건축물 옥상녹화 사업’으로 2002년 12월 조성된 서울 성동구 행당동 벧엘유치원 옥상 ‘창조의 뜰’은 유치원생들에게 놀이동산이자 자연학습장이다. 아이들 안전을 위해 사방을 나무울타리로 치고 발 디딜 만한 공간을 모두 없앴다.
아이들은 매일 옥상에 올라가 자연과 벗이 된다. 시골에서처럼 놀게끔 싸리나무 터널과 숨을 곳이 마련돼 있고 물장난을 칠 수 있는 작은 연못도 있다. 인근 야산에서 날아든 메뚜기와 사마귀를 볼 수도 있다. 뜰 한쪽 텃밭에는 아이들이 심어 놓은 토마토, 상추, 봉숭아, 고구마, 감자, 열무, 딸기, 오이 따위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주말에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생태학습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교사 박태희(26·여)씨는 “새로 자라난 식물 이름을 지어 보거나 식물도감을 찾아보는데, 아이들이 재밌어해 교육 효과가 매우 좋다”고 말했다.
글 박희준, 그래픽 손동주 기자 july1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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