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원도에서 있었던 세미나 주제가 ‘아빠의 애착 경험’이었는데, 제가 그간 임상경험을 갖고서 간단한 발표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요즘 소아청소년정신과 분야에서는 ‘자녀 양육에 미치는 아빠의 역할’이나 ‘아빠의 애착 경험’이 아주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클리닉을 처음 방문할 때나 심리검사 결과 설명 듣는 방문 시 아빠도 함께 오시는 경우에 아이가 어떤 진단이건 빨리 좋아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 현실에서는 여전히 아이에게 정서행동 문제가 발생하면 엄마들이 그 책임을 지나치게 떠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부모가 책임이 있다면 아빠도 똑같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대체로 엄마들은 아이와의 관계에서 거리 조절, 감정 조절을 못하는 것이 주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사실 아빠들의 무관심은 훨씬 큰 잘못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인지 아빠가 아이 상태에 대해서, 장단점을 포함해서 내 아이의 잠재능력과 적성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면 아빠 자신이 받는 (좋은 의미의) 충격의 정도가 크고 실제로 변화의 폭이 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서 아이들 문제 해결이 급진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록 말로 표현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아빠가 함께 와주시는 것에 대해서 매우 만족해하고 고맙게 여기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치료효과로 직결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또 한 가지는 바로 남편이 내 아이와 놀아주고 관심을 기울일 때 ‘엄마가 안정되는 효과(soothing effect)’입니다. 엄마 혼자서 아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부담도 크고 짜증도 많이 날 수 있지만, 아빠가 아이들과 놀아주고 학습도 어느 정도 봐 주고 하는 시도는 엄마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고, 이것은 이차적으로 엄마가 아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까지 유발합니다. 그래서 아빠가 노력할 때 아이가 받는 효과는 두 배, 혹은 이중으로 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dual effect).

 우리 부모들은 흔히 아이를 위해서 희생을 한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 아이를 위해서 시간을 할애하고 놀아주는 것은 실제로는 아빠 자신의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 년 전 옥스퍼드 대학에서 3세에서 6세 사이의 자녀가 아빠와 목욕을 같이 하는 경우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사회성과 성적이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습니다. 과연 아빠와 함께 하는 목욕이 왜 그런 효과가 있을까, 참으로 궁금한 부분입니다. 여기서 목욕이란 내 아이 발가락 사이를 씻기고 머리를 감겨주는 아빠라면 다른 부분에서도 매우 자상할 것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침 만 3세에서 6세 사이의 정상발달에서 발달과제가 사회성인 사실과 맞물려서 이 시기에 특히 효과가 큰 것입니다.

‘아기를 데리고 잘 때 밤에 울면 부모 중 누가 깨는가?’라는 주제로 예전에 제가 강연을 한 일이 있습니다. 가급적 아빠가 깨시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누가 깨어 돌봐주어도 상관없지만 사실 피곤해도 길게 보면 애착에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양방성(아이가 부모에게, 부모가 아이에게 느끼는 정서적 체험)’ 측면에서 볼 때 아빠 자신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일이 바빠서 아이와 시간을 못 갖는 것은 사실은 맞지 않습니다. 내 아이는 시간이 나면 놀아주는 대상이 아닙니다. 일이나 돈은 지금 어려워도 나중에 만회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중에 만회할 기회를 갖기 어려워집니다. 실제로 청소년기의 문제로 방문한 자녀 앞에서 아빠가 미안하다는 표현을 하지만 아이들은 냉소적이고 이미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경우도 많이 보게 됩니다.

 일전에 부도가 나서 세상을 하직하려고 마음먹었던 젊은 아빠가 찾아와서 저한테 놀이치료 기법을 배우러 오신 일이 있습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간 바빠서 못 돌본 애들과 놀이를 제대로 해보시겠다는 것이었지요. 그 아빠는 몇 달 후에 아이들과의 놀이 덕분에 사실은 자신의 우울증이 치료되었음을 고백하셨습니다. 내 아이란 그런 것입니다. 애들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중요한 목적이자 의미를 부여해주기도 하고, 사랑과 힘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 부모가 일방적으로 주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이상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면 비록 내 자식이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