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았지만 이기섭 04-05 12:41
한 때 같이 일했던 동료의 딸이 있었습니다. 조용하면서 처연했던 아기 때의 작은 얼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중학교를 다니다가 그만 급성백혈병으로 손 쓸 새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역시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또 다른 동료는 머리속 의문의 종양으로 투병 중에 있습니다. 몇 일전에 그 가족과 식사를 하면서 저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황사가 낀 뿌연 서해 바다처럼 짙은 회색빛 이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일을 했던 동료들이다 보니 예사롭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게 허용된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지인들의 소식 어머님의 급격한 노쇠함 자녀들의 성장 떠나가는 주위 사람들 늘어가는 흰 머리카락, 병원을 찾는 횟수 우리가 세상에 초대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세상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시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가족이지만,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사랑하고 있는데 헤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