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코스모스펀드 01-03 11:17
이름: 남은벤치 2005/8/1(월) 홍어   어릴 적 아버지의 곁에는 늘 술추렴꾼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패기 넘치고, 겁날 것 없었던 아버지의 카리스마(?) 덕택에 정지간에서의 엄마는 항상 바쁘셨고 덩달아 우리는 이쪽 방 저쪽 방으로 몰려다니며 들어도 영양가 없는 어른들의 술주정이 생활의 한부분이 될 정도로. 제법 잘 나가던(한때) 아버지는 출장에서 돌아오시면 검은색의 백색전화통을 붙잡고 상대의 스케쥴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소집들을 시켰다. 안방 가득히 너구리 소굴처럼 담배연기와 왁자한 소음이 가득차면 정지간에서는 엄마의 도마소리가 들렸다. 탁! 타타~타타탁! 물렁뼈를 토막치는 불규칙한 강도의 칼소리는 듣지 않아도 홍어를 난도질하는 소리였다. 연탄아궁지 옆에는 홍어만의 항아리가 자리하고 있었고, 연탄구녕이라도 막으러 나갈라치면 발 썩는 듯한 홍어냄새에 고개가 절로 돌려졌었으니..... 내장은 내장대로, 살점은 살점대로, 버리는 것 없이 술상에 오르면 그 밤은 아버지들의 세상이었다. 지금처럼 그때도 정치인들이 안주였고, 퉁자속의 막걸리는 아무데서나 나뒹굴어졌다. 어른들이 홍어를 씹는동안 우리에게는 굴잔치가 벌어졌었다. 굴전...굴회...굴국....굴밥.....후훗 그 때의 아버지는 행복하였다. 남자로써 갖추어야 할 모든것을 손안에 쥐고 흔들었고, 다행히 운이란 놈도 아버지를 에워싸고 있었으니... 엄마가 도마채로 내어밀던 홍어 한절음을 먹어본 맛은 고역이었다. 토했는지 아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부러 썩혀서 먹는 어른들의 식성이 혐오스러웠던 기억도.... 몇달전 동네에 '홍탁'이라는 음식점이 생기고, 먼저 가서 맛을 본 이웃에 끌려 동행을 했다. 삼합과 밀주의 그 맛이란... 남편은 한토막의 홍어를 잘게 찢어서 입안에 밀어넣자마자 뱉어버리고, 도리질을 쳤다. 난 얇게 기술뽐내어 사시미를 뜬 홍어와 수육과 잘익은 김치를 싸서 탁배기와 함께 꼭꼭 넘겼다. 엄마의 정지간의 맛이 났고, 알싸한 홍어의 맛은 나를 잠시 거꾸로 돌려놓았다. 쏘는 매운맛에 눈물이 울컥거리는 것이 아니고, 그 시절의 행복한 가족의 기억에 울컥거렸다. 도마소리가 울리던 부엌 천장에서 흔들거리던 백열등의 기억도 그리웠다. 추렴꾼들의 연기로 노오랗게 쩔은 안방의 벽지도 그리웠다. 꾸역꾸역 한 접시를 다아...해치웠다. 제법 많은 양의 탁주와 함께. 남편은 경멸스럽게 코를 벌름거렸지만, 내가 먹은 것은 홍어 뿐만은 아닌 속 깊은 기억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어제 지인들과 음식점에 갔다가 홍탁삼합을 먹었다. 일행들은 무슨 맛으로 먹느냐며 고개를 내두르는 걸 주인에게 남은 걸 싸달래서 홍어를 가져왔다... 식당에서 가져온 홍어 한 접시를 컥컥~거리며 또 해치웠다. 옆에 앉은 아이들과 남편은 상밑에 내려놓고 먹으라며 구박을 해 댔지만, 오늘 먹은 홍어 역시 난 추억을 먹은 걸... 아버지가 보고 싶다. 너무 오래 전에 멀리 가신 아버지의 냄새가 냉장고 한 귀퉁이에 봉투로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