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태풍 올가의 위성사진



매년 이맘때면 태풍이 한국을 방문합니다.너른 들의 익어가는 벼들에게 태풍은 몹시 부담스런 방문객입니다.추수를 앞둔 논의 벼들이 태풍에 힘없이 쓰러집니다.

그러한 벼들을 묶어 세우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발이 깊이 빠지는 논에서 발을 옮기기는 것 조차도 힘드는 일인데 몸을 굽혀 벼를 일으켜 세우려면 허리가 이만저만 아픈게 아닙니다.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모든 일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일으켜 세운 벼는 통풍이 잘 안되어 묶은 곳에 병충해가 창궐하기 쉽습니다. 결국 농약을 살포해야 하며 그 만큼 농산물은 오염될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벼의 생장에 장애가 발생하여 미질이 떨어지고 수확량도 감소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알곡이 여물 때 논의 물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 벼의 수확량이 감소하지만 오히려 도를 아는 농부는 배수관리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태풍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태풍이 오기전에 논 둘레 가장자리에 도랑을 만들어 논의 물빠짐이 원활하도록 하고 논의 물을 미리 빼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논에 물이 많을 경우 벼의 뿌리가 약해지고 논이 물렁해져서 조그만 바람이나 적은 강우량에도 벼의 무게 중심이 균형을 잃게되어 쉽게 쓰러지기 때문입니다.이맘때면 수확기의 소출을 늘리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논에 시비 (비료를 뿌리는 일)를  하는데 지혜로운 농부들은 태풍에 대비하여 논에 조금만 시비를 하고 벼의 성장을 세심히 조절합니다.벼의 뿌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이 진행되어 태풍에 쓰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태풍이 불어 벼가 쓰러지면 수확량이 급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그렇게되면 미질은 형편없이 떨어지고 가을 추수기에 비라도 올 경우 싹이 나기도 하고 심지어 썩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태풍에 대비하기보다는 많은 수확을 바라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오히려 논에 물을 대고 거름을 많이 주게됩니다. 너무 잘자란 벼는 태풍에 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쓰러지게 되고 결국 벼농사를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올해는 태풍에 무사할 것이라는 생각에 위험에 대비하기보다는 충분한 거름주기와 물 공급으로 수확을 최대로 늘리는 공격적인 영농방법을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니면  20 % 남짓한 수확감소를 부담하고 비교적 안전한 농사를 선택할 것인가?

70 - 80 % 로  족할 줄 아는 농부가 있다면 그는 마음을 비울 것입니다.그의 선택은 견실한 수확과 좋은 미질의 추수를 하는 것은 물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번거로운 일과 근심을 덜게 될 것입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들녘에는 지금 벼들이 누워있습니다.




                                         서던캘리포니아의 농업 위성사진



이동원-향수